본문 바로가기

728x90
반응형

7080연예한담

<조용필의 이 노래 : ‘미지의 세계’> 조용필의 ‘위대한 탄생’의 베이시스트이자 가수, 그리고 겸업교수까지 했던 이태윤이 조용필에 대한 촌평을 했습니다. 그것은 ‘음악적 열정으로 뭉친 존경스러운 형님’입니다. 직장 동료로부터 존경한다는 말을 듣기가 쉬운 것이 아닌데,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 그렇게 말을 했을 정도로 조용필은 대단한 가수입니다. 조용필이 대단한 점이 너무나 많지만 그 중에서 뺄 수 없는 것이 다양한 음악적 실험입니다. 평생 한 장르를 섭렵하기도 어려운데 다양한 장르를 실험하고 음악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 성공한 조용필은 가수로서 그리고 작곡자로서 모두 성공한 인물입니다. 조용필이 성공한 분야 중의 하나가 록음악입니다. 지금도 가끔 라디오에서 나오는 ‘미지의 세계’는 발매당시에도 음악적 완성도가 높은 곡으로 명성이 높았습니다. 물.. 더보기
<봄 노래의 계보 : 백설희에서 장범준까지> 조선시대까지 선비라면 능히 詩, 賦, 頌, 策에 두루 능해야 한다는 가르침이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부(賦)의 대표는 대춘부(待春賦)가 될 정도로 봄은 단군 이래 시의 주된 소재였습니다. 역사소설의 대가인 고 월탄 박종화는 대춘부가 아예 장편소설의 제목이기도 했습니다. ‘쌀을 팔아 돈사야’라는 시구로 명망이 높은 신석정 시인도 ‘대춘부’라는 제목의 시를 썼습니다. 실은 유명 시인치고 봄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시를 쓰지 않은 시인이 과연 존재하는가라는 의문이 생길 정도로 봄은 시인의 영원한 노스탤지어입니다. 서양도 마찬가지입니다. 겨울에 움츠렸던 몸이 기지개를 켜는 봄은 희망을 불러일으키면서 시적 감흥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인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시인의 영감을 자극하는 것이 봄의 기운입니다. 굳이 밥 딜.. 더보기
<015b의 이 노래 : ‘수필과 자동차’> 일반인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1990년대에 들어와서 한국가요계에 주목할 만한 변화가 생겼습니다. 그것은 외국에서 한국가요를 표절하는 사건이 발생했다는 점입니다. 그 이전에는 한국은 표절공화국이었습니다. 드라마부터, 영화, 가요, 각종 TV프로그램, 도서, 그림, 거기에 법률과 판결문까지 한국은 외국문물의 표절공화국이 분명했습니다. 그러나 모방과 표절은 창작으로 가기 위한 성장통입니다. 1990년에도 물론 한국가요는 표절활동이 존재했지만, 질적 성장이 이루어지는 시기였습니다. 과거에는 트로트 일변도의 가요였지만, 작곡, 편곡, 나아가 연주에서 질적인 성장이 이루어졌습니다. IT강국답게 전자음향이 성장하였고, 클래식 악기나 소규모 오케스트라반주 등 고급스러운 진전도 있었습니다. ‘밤무대스러운’ 80년.. 더보기
<이선희의 이 노래 : ‘소녀의 기도’> 동양이든 서양이든 배우들에게 공통된 숙명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역배우가 청소년배우로, 그리고 청소년배우가 성인배우로 변신하는 것에는 커다란 난관이 있다는 점입니다. 인생살이에서도 성장통은 있기 마련이지만, 배우들이 이 관문을 극복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렵습니다. 아역배우로 날리던 배우가 청소년배우, 나아가 성인배우로 화려한 변신을 하지 못하고 스러져간 경우는 밤하늘의 별처럼 많습니다. 그 이유는 배우라는 구조적 특성에 기인합니다. 배우는 화면 속에서 이미지를 연출합니다. 배역 속에 녹아내린 연기를 통하여 관객에게 이미지를 연출하는 것입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요구하는 이미지를 창출하는데 최적의 조합을 이루는 배우를 찾는 것이 캐스팅인데, 감독의 역할 중 가장 중요한 것의 하나가 바로 이것입니다. 대본을 영.. 더보기
<흑백TV시대의 소묘> -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 - 그래, 대한국민 만세다! 위 대화가 누구의 것인지 아는 사람은 아재 및 아짐 인증입니다. 이 대화를 흑백TV로 실시간 본 사람은 당연히도 아재 및 아짐 인증입니다. 요즘 TV시청료 문제가 무척이나 뜨겁습니다. 그러나 위에서 인증한 아재 및 아짐은 지금부터 불과 40여년 전만 하더라도 흑백TV의 시대였고, 그나마 흑백TV가 없는 가정이 무수히 많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테레비’라는 일본식 말로 보통 사람들로부터 불리던 흑백TV는 전 국민의 친구이자 동반자였습니다. 예전에 ‘idiot box'라 서양 일부 인텔리가 했던 말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여 당시에도 TV를 ’바보상자‘라 부르고, 연예인을 저질이라 부르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단칸방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더보기
<‘야, 곰례야’ 감상기> 예나 지금이나 지방푸대접은 변함이 없지만, 특히 1970년대에 지방을 살았던 사람은 방송에 있어서도 푸대접을 단단히 받았습니다. 지방방송국의 자체방송이라는 이유로 방송국의 서울본사에서 하는 방송을 뎅강 잘라서 조잡한 자체방송을 해서 지방민초들의 울화통에 단단히 불을 질었습니다. 한술 더 뜨는 것은 서울시민들의 시청률을 50% 넘게 사로잡는다는 TBC의 전파를 전혀 구경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만화영화부터, 쇼·오락, 드라마, 나아가 외화까지 서울에서는 TBC의 세상이었지만, 지방은 그냥 그림의 떡이었습니다. 유투브의 힘으로 과거 TBC의 인기드라마였던 ‘야, 곰례야’를 마침내 40년만에 보게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유투브만세!’입니다. 전설의 미녀 정윤희를 만나게 되어 감개가 절로 무량하였습니다. 지금.. 더보기
<고향사람 신승훈> 1990년! 사람의 수명은 수십 년입니다. 그러나 그 수십 년의 세월에서 영영 잊을 수 없는 해가 있기 마련입니다. 신승훈에게는 1990년은 잊을 수 없는 한해입니다. 저에게도 그해는 잊을 수 없는 한해입니다. 물론 신승훈은 저를 모르지만, 저는 신승훈의 다이나믹한 변신과정을 우연히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단지 고향사람이라는 이유로! 1990년에 신승훈은 무작정 상경을 하여 갖은 고생을 겪으면서 ‘미소속에 비친 그대’라는 앨범을 내게 됩니다. 신승훈은 앨범을 내기 전에는 충남대 경영학과를 다녔던 평범한 학생이자 호프집 등에서 통기타를 치면서 가수의 꿈을 키우는 무명가수이기도 했습니다. 신승훈을 알게 된 것은 대전의 ‘나사호프’라는 호프집이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 더보기
<송골매의 이 노래 : ‘난 정말 모르겠네’> 친한 친구끼리 동업을 하거나 동거를 하는 경우에 잘 되는 경우보다 안 되는 경우가 월등하게 많습니다. 아무리 친해도 남은 남이고, 자신의 생각이나 가치관과 합치되는 경우보다 마찰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인이 되면 자신의 주관을 고수하는 경향이 강하며, 수정하는 경우가 드물다는 경험적 사실도 무시하기 어렵습니다. 이것은 록그룹의 경우에도 적용됩니다. 동양이든 서양이든 록그룹의 멤버 간에 갈등을 일으켜서 맴버들의 이합집산이 있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가수들의 음악적 견해는 가수들의 생명과 같은 가치를 지녔기에, 쉽게 수정하기 어렵습니다. 거기에 더하여 멤버들의 인생관 내지 인생철학은 제각각일 수밖에 없기에 갈등의 촉발은 어쩌면 필연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레드 제플린이나 퀸과 같은 전설적인 .. 더보기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