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고인이 된 김영삼 전 대통령이 국정모토로 ‘세계화’를 제창한 적이 있었습니다. 세계화가 국정모토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국가정책으로 이어지려면 명확한 개념의 획정과 추진방향의 설정, 그리고 국가운영의 방향 등에 대한 로드맵과 청사진이 발표되어야 하는데, 세계화 개념의 출발부터 혼동이 있었습니다. 국제화를 뜻하는 영문, Globalization과 다른 어떤 단어를 선택하냐, 그리고 세계 각국에 어떻게 설명을 하냐부터 난관이 이어졌습니다. 이홍구 전 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세계화추진위원회’라는 기구도 설립했지만, 시작부터 헤매기 시작했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조잡하게 ‘Se-Gye-Hwa’라는 명칭으로 세계화를 세계 각국에 소개하였습니다. 세계화를 주창하면서도 외국인은 전혀 이해를 못하는 국적불명의 이상한 말이었습니다. 한국어의 영문표기 정도에 그칠 뿐이며, 세계화를 추진해야 하는 당위나 이유를 설명하기에도 부족했습니다. 당연히 용두사미가 되어서 세계화 개념 자체가 사라졌습니다. 국가정책이 웃음거리가 되면 국격이 훼손되고 세금을 낭비하기에 무척이나 곤란합니다. 그래서 당시 국회의원이던 고 김동길 박사가 ‘국제화를 쎄게 하면 세계화냐?’라고 조롱하기도 했습니다. 근본적으로 세계화가 문제인 이유는 기존 개념인 국제화 자체가 추상적인 단어이므로, 그 개념의 확장을 통하여 해결할 수 있음에도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서 국민적 혼란을 낳았기 때문입니다.
○과장해서 말하자면,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은 세계화의 해프닝과 무척이나 유사합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을 전제로 하며, 단지 그 형량만 상향조정한 것이 그 실체입니다. 중대재해 중 중대산업재해는 산안법상의 산업재해를 전제로 하되, 중한 재해만 별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중대재해처벌법 제2조 제2호). 입법기술상 산안법에 별도 조문으로 규정해도 무방합니다. 형벌체계상 중대재해는 과실범의 영역에 속합니다. 과실범은 의무위반범입니다. 그 의무는 산안법이 규정합니다. 중대재해를 판단하려면 필연적으로 산안법을 검토해야 하는 이상한 법률체계가 됩니다.
○대법원은 그 의무는 산안법과 ‘산업안전보건에 관한 규칙’을 토대로 찾아야 한다고 판시합니다. 결국 중대재해처벌법의 의무위반여부는 산안법상 안전ㆍ보건조치 의무위반을 위반하였냐 여부이고, 그 구체적인 판단은 안전보건규칙이 구체적으로 규정한 의무를 검토하여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대법원은 ‘해당 산업현장에서 동종의 산업재해가 이미 발생하였던 경우에는 사업주가 충분한 보완대책을 강구함으로써 산업재해의 재발 방지를 위해 안전보건규칙에서 정하는 각종 예방 조치를 성실히 이행하였는지 엄격하게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21. 9. 30. 선고 2020도3996 판결).’라고 판시하였는데, ‘엄격하게 판단하는 기준’은 산안법이나 중대재해처벌법이나 별반 다를 것이 없습니다. 추상적인 의무를 구체적으로 판단하는 기준을 법원이 임의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합니다. 구체적인 의무의 이행은 ‘말로만’ 해서는 부족합니다. 구체적이고 유형적인 결과로 이어져야 합니다. 그 결과란 막대한 돈이 드는 시설의 구축으로 이어집니다. 산안법은 그래서 제72조에 ‘건설공사 등의 산업안전보건관리비 계상 등’이라는 제목으로 각 기업에 대하여 돈을 써야 하는 의무를 법정하였고, 이를 받아 ‘건설업 산업안전보건관리비 계상 및 사용기준’이 제정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생각할 문제가 있습니다. 한국의 산업구조와 산업재해의 문제가 바로 그것입니다. 한국의 산업구조는 대기업과 하도급기업이라는 다단계구조입니다. 그리고 산업재해는 압도적으로 건설업과 제조업에서 발생합니다.
○반세기 이상 산업재해는 하도급기업에서 발생했습니다. 그러니까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처벌되는 대상은 대부분 하도급업체의 사업주였습니다. 하도급업체의 사업주는 가난한 사업주입니다. 대기업의 근로자보다 못한 사업주가 밤하늘의 별처럼 많습니다. 그래서 이어지는 문제는 다음 <기사>와 같이 중대재해처벌법의 대상을 상시근로자 50인 미만 사업장으로 확대하는 경우입니다. 당장 영업이윤을 확보하기도 어려운 영세 소규모 사업장에 막대한 돈이 드는 산업안전보건관리비를 계상할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영세사업장의 사업주를 구속하면 해당 사업장 자체가 문을 닫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세계 각국이 산재보험을 국영보험으로 편입하여 산재위험을 국가차원에서 수용하는 이유를 음미해봐야 합니다.
<기사> 정부가 '주 최대 69시간' 논란으로 역풍을 맞은 근로시간제 개편안을 보완하기 위해 대국민 설문조사를 실시한 가운데, 12일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에서 설문지 공개 여부가 쟁점이 됐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내년에 중대재해처벌법이 소규모 사업장까지 전면 시행되는 것에 대해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다"며 유보적 입장을 밝혔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469/0000764771?sid=102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2조(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뜻은 다음과 같다. 1. “중대재해”란 “중대산업재해”와 “중대시민재해”를 말한다. 2. “중대산업재해”란 「산업안전보건법」 제2조제1호에 따른 산업재해 중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결과를 야기한 재해를 말한다. 가.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 나. 동일한 사고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 발생 다. 동일한 유해요인으로 급성중독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직업성 질병자가 1년 이내에 3명 이상 발생 <부칙> 제1조(시행일) ① 이 법은 공포 후 1년이 경과한 날부터 시행한다. 다만, 이 법 시행 당시 개인사업자 또는 상시 근로자가 50명 미만인 사업 또는 사업장(건설업의 경우에는 공사금액 50억원 미만의 공사)에 대해서는 공포 후 3년이 경과한 날부터 시행한다. ② 제1항에도 불구하고 제16조는 공포한 날부터 시행한다. <산업안전보건법> 제72조(건설공사 등의 산업안전보건관리비 계상 등) ① 건설공사발주자가 도급계약을 체결하거나 건설공사의 시공을 주도하여 총괄ㆍ관리하는 자(건설공사발주자로부터 건설공사를 최초로 도급받은 수급인은 제외한다)가 건설공사 사업 계획을 수립할 때에는 고용노동부장관이 정하여 고시하는 바에 따라 산업재해 예방을 위하여 사용하는 비용(이하 "산업안전보건관리비"라 한다)을 도급금액 또는 사업비에 계상(計上)하여야 한다. <대법원 판례> 구 산업안전보건법(2019. 1. 15. 법률 제16272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구 산업안전보건법’이라 한다)에서 정한 안전ㆍ보건조치 의무를 위반하였는지 여부는 구 산업안전보건법 및 같은 법 시행규칙에 근거한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이하 ‘안전보건규칙’이라 한다)의 개별 조항에서 정한 의무의 내용과 해당 산업현장의 특성 등을 토대로 산업안전보건법의 입법 목적, 관련 규정이 사업주에게 안전ㆍ보건조치를 부과한 구체적인 취지, 사업장의 규모와 해당 사업장에서 이루어지는 작업의 성격 및 이에 내재되어 있거나 합리적으로 예상되는 안전ㆍ보건상 위험의 내용, 산업재해의 발생 빈도, 안전ㆍ보건조치에 필요한 기술 수준 등을 구체적으로 살펴 규범목적에 부합하도록 객관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나아가 해당 안전보건규칙과 관련한 일정한 조치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해당 산업현장의 구체적 실태에 비추어 예상 가능한 산업재해를 예방할 수 있을 정도의 실질적인 안전조치에 이르지 못할 경우에는 안전보건규칙을 준수하였다고 볼 수 없다. 특히 해당 산업현장에서 동종의 산업재해가 이미 발생하였던 경우에는 사업주가 충분한 보완대책을 강구함으로써 산업재해의 재발 방지를 위해 안전보건규칙에서 정하는 각종 예방 조치를 성실히 이행하였는지 엄격하게 판단하여야 한다. (대법원 2021. 9. 30. 선고 2020도3996 판결) |
'산재와 산업안전 > 산업안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근로자에 대한 사업주의 보호의무와 소비자의 요구 : 누가 피해자이고, 누가 가해자인가?> (2) | 2023.12.02 |
---|---|
<근로자의 작업중지권과 사용자의 징계권> (0) | 2023.11.11 |
<어느 방송국PD의 인터뷰 요청, 그리고 이에 대한 해답 : 감정노동자보호법> (0) | 2023.08.17 |
<어느 대형마트 카트관리 근로자의 사망, 그리고 법률적 쟁점> (0) | 2023.08.03 |
<고용노동부의 종합건설업체의 예방감독> (0) | 2023.06.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