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플라톤은 이상과 현실을 구분하여 사람들이 살아가는 현세에서 이상향을 그리려 했습니다. 물론 그 이후의 서양의 철인들은 그렇게 이상향을 그렸지만, 아무도 그 이상향을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이상은 현실과는 별개의 것이라는 확신이 일반화되었습니다. 물론 동양에서도 공자와 같이 군자가 도덕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덕치국가, 즉 법치국가가 아닌 사회를 이상향으로 제시했지만, 아무도 그러한 나라를 만들지 못했습니다.
○현대는 대다수가 법치국가입니다. 법률이란 현실을 규율하는 강력한 국가의 장치입니다. 그러나 현실을 규율한다는 법률과 실제로 사람들이 살아가는 현실은 전혀 별개의 것인 경우가 허다합니다. 대다수 국민들은 근로자입니다. 그리고 임금과 퇴직금을 받으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임금과 퇴직금을 받지 못하고 고통에 시달리는 국민도 존재합니다. 퇴직금의 부족한 면을 보완하려고 도입한 퇴직연금도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퇴직급여법)의 도입취지로 제시한 목적과는 달리 운용이 되기도 합니다.
○퇴직급여법 제2조 제6호는 퇴직급여를 퇴직연금과 퇴직금을 합한 것이라 규정하고, 제7호는 퇴직연금은 확정급여형(같은 제8호, 일명 ‘DB형 퇴직연금’), 확정기여형(같은 제9호, 일명 ‘DC형 퇴직연금’), 개인형(같은 제10호, 일명 ‘IRP')로 구성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퇴직급여법 제5조는 신규 설립되는 사업장은 이와 같은 퇴직연금제도를 의무적으로 도입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처벌조항이 없기에 실무상 고용노동청에서 단속을 하지 않습니다. 퇴직금체불과 관련한 진정이나 고소사건을 처리하는 실무는 법정퇴직금에서 퇴직연금의 납부액을 차감한 금액을 체불퇴직금으로 범죄인지를 하고 법원은 이를 유죄금액으로 판결을 합니다.
○여기에서 법률과 현실의 차이가 발생합니다. 퇴직급여법이라는 법률은 DB형의 경우에는 사용자가 매년 일정액을 적립금으로 납부를 하여야 하고, 사용자가 가입자의 연간 임금총액의 12분의 1 이상에 해당하는 부담금을 현금으로 가입자, 즉 근로자의 DC형 계정에 납입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만성적으로 자금압박에 시달리는 중소 영세사업주가 제때 납부금을 못내는 경우가 허다한 것이 현실입니다. 그 이전에 중소 영세사업주는 금융회사에 대출을 할 때, 울며 겨자를 먹는 심정으로 퇴직연금에 강제적으로 가입하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금융소비자보호법의 시행으로 시정이 될 지도 의문인 것이 현실입니다.
○‘꺽기’라 불리는 조건부 대출로 퇴직연금의 도입사업장에서 근무하는 근로자의 일부만 퇴직연금에 가입하거나 자신도 모르는 상태에서 퇴직연금이 도입되는 경우도 부지기수입니다. 이렇게 당초 도입취지와 달리 퇴직연금제도는 근로자 사회의 양극화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기사를 보면, 디폴트옵션이라는 것을 퇴직급여법에 도입을 시도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디폴트옵션은 한마지로 퇴직연금의 수익률을 높인다는 취지에서 도입된 제도입니다.
○디폴트란 default라는 영어를 말하며, 과학용어에서는 ‘기본 값’, 경제용어에서는 ‘국가부도’라는 의미로 쓰이는데(‘나무위키’ 해설 참조), 디폴트옵션이란 전자의 의미로, DC형 퇴직연금에서 퇴직연금 운용사업자가 계정주인 근로자의 별도의 지정이 없는 한 자유롭게 운용이 가능한 옵션을 말합니다. 쉽게 말하면, 퇴직연금으로 적립된 돈을 원금보장이 되지 않는 펀드와 같이 실적운용상품으로 운용을 가능하게 하는 옵션을 말합니다(디폴트옵션에 대한 ‘아주경제’의 해설 참조).
○여기에서 법과 현실의 차이, 그리고 이상과 현실의 차이가 발생합니다. 대다수 근로자들은 퇴직을 할 때, 퇴직금 상당액을 기대합니다. 그런데 원금의 손실이 발생한 상태에서 퇴직을 한다면, 항상 그렇듯이 사용자를 원망하고 대통령을 원망하며, 나아가 퇴직연금 운용사업자를 원망할 것입니다. 돈에 대한 집착은 본능적인데, 근로자의 퇴직금에 대한 집착은 거의 근로자의 생명과 같다고 보아야 합니다. 사용자와는 ‘쿨하게’ 바이바이를 할 수 있어도, 돈과 ‘쿨하게’ 바이바이를 할 수 있는 근로자는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대다수의 DC형 퇴직연금은 원리금보장형태로 운용이 됩니다.
1. 컴퓨터용어 영어의 'Default value' 에서 유래한 말로, 별도 설정을 하지 않은 '초기값', 즉 '기본 설정값'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게임 주인공의 디폴트 네임.컴퓨터 공학 관련자들은 실생활에서도 이 용어를 쓰는 경향이 종종 있다. 디폴트를 기본적, 밑바탕이라는 뜻으로 사용한다. 2. 경제용어 국가규모의 채무불이행을 말한다. 공/사채나 은행융자 등에 대한 원리금 지급을 아예 못 하게 되는 것. 즉, 부도라고 보면 된다. 공/사채나 은행융자는 원리금 지급일이 정해져 있어서 원리금 지급일이 되었는데 빚을 못 갚게 된 것. 보통 '디폴트'라고 하면 개인/단체의 채무불이행보다는 국가의 채무불이행을 말한다. 국가 막장 테크의 단계 중 하나. 모라토리움과 비교되기도 하는데, 쉽게 말해 모라토리움이 "지금 돈 없으니 나중에 갚을게"라는 선언이면, 디폴트는 "나 돈없어 아 몰라 배째"라고 선언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물론 둘 다 신용도 하락 측면에선 도긴개긴이지만 디폴트가 더 최악이긴 하다. - 영어 default에 대한 ‘나무위키’의 해설 중에서- 디폴트 옵션이 도입되면 금융 지식이 부족하거나 이직이 잦은 근로자는 상대적으로 손실 위험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퇴직금 인출 시기에 수익률이 나쁘면 원금마저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은행과 보험업계 등에서 시장 변동성에 대비해 디폴트 옵션에 원리금보장형 상품을 넣어야 한다고 주장한다.현재 국회에서는 디폴트 옵션 도입을 뼈대로 하는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개정안 3개가 논의 중이다. 여당에선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운용 대상을 실적배당형 상품으로 제한한 반면 야당 안은 원리금보장형 상품을 포함하고 있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20&aid=0003367351 퇴직연금의 '쥐꼬리' 수익률이 해결해야 할 과제로 떠오르면서 금융투자 업계에서 '디폴트옵션'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디폴트옵션 도입이 퇴직연금의 낮은 수익률을 해결하는 데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하는데 용어가 낯설고 생소해서 이해가 쉽지 않습니다. 디폴트옵션의 정확한 정의가 무엇이고, 도입하면 뭐가 좋은 지, 도입하는 데 걸림돌은 무엇인지 알려주세요. Q. 디폴트옵션이 정확히 뭔가요? A. 디폴트옵션은 일종의 '자동 투자제도'로, 개인책임형(DC형) 퇴직연금 가입자가 운용 지시를 따로 하지 않아도 금융회사가 적립금을 알아서 굴려주는 제도입니다. 연금 운용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부족한 일반 직장인들이 특별히 의사 표시를 하지 않아도 전문적으로 자금을 운용하는 금융투자 회사가 미리 합의한 조건(정해진 프로그램)에 따라 자동으로 적립금을 운용해주는 것입니다. 퇴직연금에 디폴트옵션을 도입하면 사업자가 가입자의 투자 성향에 맞는 포트폴리오를 적용해 연금 자산을 알아서 운용해 줍니다. https://www.ajunews.com/view/20190812170636926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제2조(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뜻은 다음과 같다. 중략 6. “퇴직급여제도”란 확정급여형퇴직연금제도, 확정기여형퇴직연금제도 및 제8조에 따른 퇴직금제도를 말한다. 7. “퇴직연금제도”란 확정급여형퇴직연금제도, 확정기여형퇴직연금제도 및 개인형퇴직연금제도를 말한다. 8. “확정급여형퇴직연금제도”란 근로자가 받을 급여의 수준이 사전에 결정되어 있는 퇴직연금제도를 말한다. 9. “확정기여형퇴직연금제도”란 급여의 지급을 위하여 사용자가 부담하여야 할 부담금의 수준이 사전에 결정되어 있는 퇴직연금제도를 말한다. 10. “개인형퇴직연금제도”란 가입자의 선택에 따라 가입자가 납입한 일시금이나 사용자 또는 가입자가 납입한 부담금을 적립ㆍ운용하기 위하여 설정한 퇴직연금제도로서 급여의 수준이나 부담금의 수준이 확정되지 아니한 퇴직연금제도를 말한다. 11. “가입자”란 퇴직연금제도에 가입한 사람을 말한다. 12. “적립금”이란 가입자의 퇴직 등 지급사유가 발생할 때에 급여를 지급하기 위하여 사용자 또는 가입자가 납입한 부담금으로 적립된 자금을 말한다. 제4조(퇴직급여제도의 설정) ① 사용자는 퇴직하는 근로자에게 급여를 지급하기 위하여 퇴직급여제도 중 하나 이상의 제도를 설정하여야 한다. 다만, 계속근로기간이 1년 미만인 근로자, 4주간을 평균하여 1주간의 소정근로시간이 15시간 미만인 근로자에 대하여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② 제1항에 따라 퇴직급여제도를 설정하는 경우에 하나의 사업에서 급여 및 부담금 산정방법의 적용 등에 관하여 차등을 두어서는 아니 된다. ③ 사용자가 퇴직급여제도를 설정하거나 설정된 퇴직급여제도를 다른 종류의 퇴직급여제도로 변경하려는 경우에는 근로자의 과반수가 가입한 노동조합이 있는 경우에는 그 노동조합, 근로자의 과반수가 가입한 노동조합이 없는 경우에는 근로자 과반수(이하 “근로자대표”라 한다)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④ 사용자가 제3항에 따라 설정되거나 변경된 퇴직급여제도의 내용을 변경하려는 경우에는 근로자대표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다만,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려는 경우에는 근로자대표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제5조(새로 성립된 사업의 퇴직급여제도) 법률 제10967호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전부개정법률 시행일 이후 새로 성립(합병ㆍ분할된 경우는 제외한다)된 사업의 사용자는 근로자대표의 의견을 들어 사업의 성립 후 1년 이내에 확정급여형퇴직연금제도나 확정기여형퇴직연금제도를 설정하여야 한다. |
○돈에 대한 본능적 집착, 그리고 잘 되면 내탓이고 안 되면 대통령탓이 고질적인 한국풍토에서 디폴트옵션을 도입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무엇보다도 퇴직연금의 본래적인 운용은 공공기관, 대기업, 그리고 견실한 중소기업 위주인데, 법정퇴직금도 제대로 못 받거나, 그리고 자신이 퇴직연금에 가입된 사실 자체를 잘 모르는 운전자금이 풍족하지 않은 영세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근로자의 상대적 박탈감이 양극화의 냉정한 현실을 보여줄 우려가 있습니다. 디폴트옵션의 도입 자체는 충분히 수긍이 가나, 부작용도 안고 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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