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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파견직

<고용의 의사표시를 명하는 가처분의 허용 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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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창영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

들어가며

구 파견근로자 보호등에 관한 법률(2006. 12. 21. 법률 제8076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파견법')은 제6조 제3항 본문에서 직접고용간주 규정을 두어 사용사업주가 파견기간 제한을 위반한 경우 곧바로 사용사업주와 파견근로자 사이에 직접고용관계 성립이 간주되도록 했다. 그런데 이후 개정된 현행 파견법은 직접고용간주 규정을 대체해 제6조의2 제1항에서 '사용사업주가 2년을 초과하여 계속적으로 파견근로자를 사용하는 경우 해당 파견근로자를 직접 고용하여야 한다'는 취지로 규정하고 있다(이하 '직접고용의무 규정').

따라서 개정된 파견법 하에서 파견기간 제한을 위반한 사용사업주는 직접고용의무 규정에 의하여 파견근로자를 직접 고용할 의무가 있으므로, 파견근로자는 사용사업주가 직접고용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하는 경우 사용사업주를 상대로 고용 의사표시를 갈음하는 판결을 구할 사법상 권리가 있고, 그 판결이 확정되면 사용사업주와 파견근로자 사이에 직접고용관계가 성립한다. 한편 고용 의사표시를 명하는 본안판결이 확정되기까지 장시간이 소요되므로, 근로자 보호를 위해서 고용의 의사표시를 명하는 가처분이 허용되는지 문제된다.
 
2. 의사의 진술을 명하는 가처분의 허용 여부
 
가. 문제의 소재

민사집행법 제263조는 "의사의 진술을 명하는 판결의 확정시에 의사표시가 있는 것으로 본다"고 규정해, 의사표시의 효력의 발생시점을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 위 규정으로 인해 의사표시를 명하는 판결에서는 가집행선고가 허용되지 않는다. 민사소송법 제213조도 재산권의 청구에 관한 판결의 경우 원칙적으로 가집행을 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위와 같은 규정에도 불구하고 본안판결의 확정 전에 본안판결의 확정과 사실상 동일한 효과가 인정되는 '의사표시를 명하는 가처분'(이하 '의사표시가처분')이 허용되는지 문제된다.
 
나. 독일의 논의

독일 민법 제885조, 제899조와 같이 명문으로 의사표시가처분이 허용된다고 규정하고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의사표시가처분(Einstweilige Verfügungen auf Abgabe einer Willenserklärung)'이 허용되는지 여부에 관해서는 아래와 같이 견해의 대립이 있다.
 
(1) 부정설
의사의 진술을 명하는 채무는 확정판결에 의해야 하고, 의사표시 가처분을 인정하게 되면 본안판결의 결과에 따라 법률관계가 유동적이 된다는 점을 들어 이와 같은 가처분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부정설은 소수설에 속한다.

함부르크 고등법원의 1990년 6월 20일 판결도 부정설에 속한다. 위 사건에서 채권자 GAL(Grün Alternative Liste) 함부르크 지부는 여성지부로 변경하기 위해 1990년 3월 28일 남성직원에게 근로계약의 해지를 통지했고, 직원이 해고에 동의하지 않자 채권자는 함부르크 지방법원에 채무자인 직원의 동의를 구하는 가처분을 신청했다. 지방법원은 변론을 거쳐 채무자의 동의를 명하는 가처분판결을 선고했다. 이에 채무자가 항소하자 함부르크 고등법원은 1990년 6월 20일 해고에 대한 동의를 명하는 가처분을 허용하게 되면 본안에서 채권자가 패소하는 경우 해고가 무효가 돼 근로자의 법적 지위를 유동적인 상태에 놓이게 하므로, 조건부 해고와 같은 결과를 가져오는 해고동의가처분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2) 보전가처분과 규정가처분에만 허용된다는 견해
가처분을 보전가처분, 규정가처분, 만족적 가처분으로 3분하고, 의사표시가처분은 다툼이 있는 청구권 보전을 위한 보전가처분과 계쟁법률관계를 잠정적으로 규정하기 위한 규정가처분에만 허용되며, 본안판결을 통하여 얻고자 하는 내용을 가처분에 의해 미리 얻게 되는 만족적 가처분에는 허용되지 않는다는 견해다.
 
(3) 부수적 의무에만 허용된다는 견해
의사표시가 부수적 의무에 관한 것이라면 그러한 가처분이 허용되지만, 인터넷 도메인 양도에 관한 동의를 구하는 가처분과 같이 주된 의무에 관한 가처분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견해이다.
 
(4) 전면적 긍정설
의사의 진술을 명하는 가처분은 임시의 지위를 정하기 위한 가처분의 일종으로서 일반적으로 허용된다는 견해이다.
쾰른 고등법원 1995년 12월 7일 판결은 전면적 긍정설에 속한다. 위 사건에서 채무자는 채권자와 함께 아파트․사무실 단지의 건설ㆍ관리를 목적으로 하는 조합을 설립하고 '투자조합 P'라고 표시하였다. 그 후 채무자는 채권자에 의해 조합에서 탈퇴됐고,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에는 위 탈퇴의 효력에 관해 분쟁이 있었다. P가 건설사업 수행을 위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서는 추가대출이 필요했고, 만약 자금조달을 하지 못하면 상당한 손해가 예상됐다. 추가대출을 위해서는 토지등기부에 100만 마르크 이상의 저당채무(토지채무)를 등기할 필요가 있었고, 등기를 위해서는 채무자의 승낙이 필요했다. 채권자는 등기에 필요한 서류를 모두 공증 받은 후 채무자에게 저당채무의 설정등기에 관한 승낙을 요청했으나 채무자는 승낙을 거절했다. 이에 채권자는 쾰른 지방법원에 채무자를 상대로 채무자의 승낙을 명하는 가처분을 신청했고, 지방법원은 변론을 거치지 않고 결정으로 채권자의 신청을 인용했다. 채무자가 이에 대하여 항소를 제기하였으나, 쾰른 고등법원은 "채권자가 피보전권리의 신속한 이행에 급박하게 의존하는 경우에는 의사표시를 명하는 가처분이 허용되고, 이러한 가처분신청을 기각하는 것은 법적 보호를 거절하는 것과 동일하다"는 이유로 채무자의 항소를 기각했다.
 
다. 우리나라의 논의
 
(1) 학설
의사의 진술을 명하는 가처분은 단행가처분의 일종으로 허용된다는 견해, 의사표시를 명하는 가처분이 허용되지만 보전의 필요성에 대하여 극히 신중하게 판단하여야 한다는 견해 등이 긍정설의 입장이다. 이에 대하여 가처분에 의해 의사표시를 명해도 이를 강제하는 방법이 없고, 의사표시가 된 것으로 의제하는 규정이 없는 이상 가처분은 실효성이 없기 때문에, 의사표시청구권의 피보전권리 적격이라는 면에서 보아도, 의사표시를 구하는 가처분의 필요성이라는 점에서 보아도 의사표시를 명하는 가처분신청을 인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부정설의 입장이다.
 
(2) 판례
종전에는 부정설이 다수의 실무례였으나, 최근에는 긍정설을 취하는 재판례가 다수 등장하고 있다.
 
① 예금인출동의가처분 : 건설회사인 채권자가 공사대금을 지급받지 못해 자금사정이 크게 악화되어 운영에 심각한 차질을 겪고 있는데, 은행은 공동예금명의자 중 1인(채무자)이 예금인출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는 이유로 채권자의 예금지급요구에 응하지 않자, 채권자는 예금인출에 동의하지 않는 공동시행자를 상대로 예금인출동의가처분을 구했다. 법원은 "공동시행자들은 공사대금을 지급받기 위한 채권자의 인출요청서 작성에 의한 예금인출 요구에 채무자는 동의할 의무가 있다. 채권자는 위 공사대금을 지급받지 못해 자금사정이 크게 악화되어 운영에 심각한 차질을 겪고 있는 사실이 인정되므로 보전의 필요성도 있다"는 이유로 "채무자는 예금인출요청서에 의한 예금계좌에 예치된 예금의 인출에 동의하여야 한다"는 내용으로 가처분명령을 발령했다.
 
② 토지사용승낙가처분 : 채권자는 사업부지(모두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따른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된 토지들이다) 지상에 대형판매시설을 신축하려고 하는 부동산개발회사이고, 채무자는 사업부지 일부에 관한 지분소유권자이다. 채권자는 채무자에게 개발행위에 필요한 요건 중 하나인 토지사용 승낙의 의사표시를 구하는 가처분을 신청했다.

법원은 채무자는 채권자가 관악구청장에게 이 사건 토지부분에 관한 개발행위허가 신청을 함에 있어 토지사용 승낙의 의사표시를 할 의무가 있으므로, 이 사건 신청은 그 피보전권리에 관한 소명이 있다고 봤다. 또한 법원은 사후 채권자가 채무자를 상대로 한 본안소송에서 승소하는 등으로 용지 확보 요건을 갖춘 후 다시 개발행위허가 신청을 하더라도 위 개정 도시계획조례 등이 적용됨에 따라 개발행위허가를 받지 못하거나 현재보다 훨씬 불리한 조건 하에서 개발행위허가를 받게 될 개연성이 상당하므로, 채무자에 대하여 가처분으로 토지사용승낙의 의사표시를 명할 보전의 필요성도 소명된다는 이유로 토지사용승낙의 의사표시를 명하는 가처분을 발령하였다.
 
③ 그 밖의 재판례 : 만족적 가처분의 일종인 의사의 진술을 명하는 가처분을 다른 만족적 가처분과 구분해 그 허용 여부를 정할 필요성은 없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의사의 진술을 명하는 가처분이 허용될 수 있다고 판시한 결정도 등장했다.
 
3. 고용을 명하는 가처분은 허용된다
 
가. 검토
 
(1) 본안판결을 통해 얻고자 하는 내용과 현실적으로 전적으로 동일한 내용의 권리관계를 잠정적으로 형성하는 만족적 가처분이 허용됨을 긍정하는 이상, 민사집행법 제263조는 의사표시가처분을 부정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
 
(2) 의사표시가처분은 만족적 가처분의 일종으로, 만족적 가처분의 경우에는 본안판결 전에 채권자의 권리가 종국적으로 만족을 얻는 것과 동일한 결과에 이르게 되는 반면, 채무자로서는 본안소송을 통해 다퉈 볼 기회를 가져보기도 전에 그러한 결과에 이르게 된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보전의 필요성에 관해 통상의 보전처분보다 높은 정도의 소명이 요구되므로, 채무자에게 반드시 부당한 것은 아니다.
 
(3) 제3자에게 의사표시가처분을 알릴 방법이 없다는 것은 본안에서 의사표시를 명하는 판결도 동일하므로, 이를 이유로 가처분을 부정하는 타당하지 않다. 오히려 의사표시가처분을 긍정함으로써 의사의 진술을 의제하게 되면 채권자가 후속 법률행위를 할 수 있으므로, 채권자의 잠정적인 권리보호의 실효성을 제고할 수 있다.
 
(4) 임시의 지위를 정하기 위한 가처분은 임의적 변론 또는 쌍방 심문을 거치는 것이 원칙이므로, 채무자의 절차적 권리가 부당하게 침해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헌법상 재판청구권의 실효성을 보장하기 위해 제정된 간이구제절차로써 가처분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법치국가의 원리와 사법보장(司法保障)의 정신에 부합한다.
 
나. 결론
 
따라서 현행 파견법 하에서 파견기간 제한을 위반한 사용사업주는 직접고용의무 규정에 의해 파견근로자를 직접 고용할 의무가 있으므로, 파견근로자는 사용사업주가 직접고용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하는 경우 사용사업주를 상대로 본안판결이 확정되기 전에 고용의 의사표시를 명하는 가처분을 발령받아 신속하게 권리구제를 받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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