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에 발생한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으로 ‘검은 돈’이라는 말이 대유행을 했습니다. 검은 돈(black money)이라는 말의 출처는 미국에서 나온 말이며, 이제는 영어사전에도 등재된 말입니다. 그런데 돈의 색깔이 검은 색일 수는 없고, 그 돈의 성격이 부정한 목적을 위한 돈이라거나 범죄를 위한 돈 또는 범죄로 인하여 취득한 돈이라는 의미입니다. 검은 돈을 방지하기 위한 자금세탁방지법(Anti-Money Laundering Laws) 역시 미국에서 제정된 실정법입니다. 이 법률은 달러기축통화체제와 결부하여 미국 외에서도 맹위를 떨치고 있습니다. 북한에게 고통을 안긴 BDA은행 사건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흔히들 ‘임금’이라고만 말하지만, 정확히는 돈이라는 현금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말하는 ‘임금채권’입니다. 근로기준법은 임금을 통상임금과 평균임금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복잡하게 구분하느냐, 는 비판이 뜨거웠지만, 근로기준법의 제정부터 이런 구분은 이어져 왔습니다.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각종 가산수당을 더한 임금이 평균임금이 되는데, 근로기준법은 추상적인 기준만을 제시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 추상적인 기준에 따라 수백억에서 수천억이 오고가는 상황이기에 당연히 송사가 이어집니다. 그래서 이러한 구분을 폐지하자는 주장이 오래전부터 이어졌지만, 그에 따른 혼란은 수백조에 이를 것이 분명하고 송사를 부르는 대혼란이 예측됩니다.
○그런데 법을 개정하지 않는다고 송사를 멈출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통상임금의 개념 자체를 변경하지 않더라도 그 범위를 달리 해석(대법원 2013. 12. 18. 선고 2012다89399 전원합의체 판결)하거나 개념 자체를 변경하는 것(대법원 2024. 12. 19. 선고 전원합의체 2023다302838 판결)만으로도 수백조의 송사가 벌어질 수 있습니다. 전자의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후자의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로 변경이 되었습니다. 전자로 인하여 수백건의 송사가 이어졌고, 후자 역시 수백건의 송사가 예상됩니다. 대법원은 ‘국민경제적 혼란’이라는 논거를 제시하였습니다. 그래서 본래 강행법규는 신의성실의 원칙을 배제하여 소급효를 긍정하는 것이 원칙임에 반하여 전자는 소급효를 배제하였고, 후자 역시 ‘변경된 새로운 법리는 법적 안정성과 신뢰보호를 고려하여 이 판결 선고일 이후의 통상임금 산정부터 적용하되, 다만 이 사건 및 이 판결 선고 시점에 이 판결이 변경하는 법리가 재판의 전제가 되어 통상임금 해당 여부가 다투어져 법원에 계속 중인 병행사건에는 구체적 사건의 권리구제를 목적으로 하는 사법의 본질상 새로운 법리를 소급 적용하여야 한다.’라고 판시하였습니다. 새로운 사건에는 후자가 적용된다는 것이기에, 무더기 송사를 예고하는 셈입니다.
○후자의 사안은 단순합니다. 일정 근무일수를 충족하여야만 지급하는 조건이 부가된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하는가, 여부가 쟁점이 된 사건입니다. 구체적으로 근로자인 원고들은 기준기간 내 15일 미만 근무한 경우 지급대상에서 제외하는 조건이 부가된 정기상여금(근무일수 조건부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된다고 주장하면서, 피고를 상대로 이를 통상임금에 넣어 재산정한 연장근로수당 등 차액을 청구한 것입니다. 위의 검은 돈 사례와 비교하면 시간이 흐름에 따라 돈의 성격이 변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임금의 성격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 후자 전원합의체 판결의 핵심논거입니다. 대법관이 정치하고 해박한 논리를 전개하기에 오히려 더 복잡하고 어려운 사안으로 오인하기 쉬운데, 내용 자체를 단순화하면 그리 어렵지만은 않습니다. 다만, 소정근로일수를 한계로 설정한 것을 유의하면 됩니다.
○대법원은 후자의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하여, 전자의 전원합의체 판결이 통상임금의 요건으로 인정한 ‘고정성’을 통상임금의 개념적 징표에서 제외하고 근무일수 조건부 임금에 관하여 소정근로일수 이내로 정해진 근무일수 조건인 경우에는 그러한 조건이 부가되어 있다는 사정만으로 그 임금의 통상임금성이 부정되지 않고, 반면 소정근로일수를 초과하는 근무일수 조건부 임금은 소정근로를 넘는 추가 근로의 대가이므로 통상임금이 아니라는 새로운 판단 기준을 제시하였습니다. 이와 달리 ‘고정성’을 통상임금의 개념적 징표로 삼아 근무일수 조건부 임금의 통상임금 해당 여부를 판단한 종전 판례를 변경하였습니다. 새로운 법리가 이 사건 및 병행사건이 아닌 한 이 판결 선고일 이후의 통상임금 산정부터 적용된다고 판시한 것은 이미 설명하였습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가. 통상임금에 관한 법리 근로기준법 시행령 제6조 제1항은 통상임금을 “근로자에게 정기적이고 일률적으로 소정근로 또는 총 근로에 대하여 지급하기로 정한 시간급 금액, 일급 금액, 주급 금액, 월급 금액 또는 도급 금액”이라고 규정한다. 법령의 정의와 취지에 충실하게 통상임금 개념을 해석하면, 통상임금은 소정근로의 대가로서 정기적, 일률적으로 지급하기로 정한 임금을 말한다. 근로자가 소정근로를 온전하게 제공하면 그 대가로서 정기적, 일률적으로 지급하도록 정해진 임금은 그에 부가된 조건의 존부나 성취 가능성과 관계없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 어떤 임금에 일정 근무일수를 충족하여야만 지급한다는 조건(이하 ‘근무일수 조건’이라 한다)이 부가되어 있더라도, 그와 같은 조건이 소정근로를 온전하게 제공하는 근로자라면 충족할 조건, 즉 소정근로일수 이내로 정해진 근무일수 조건인 경우에는 그러한 조건이 부가되어 있다는 사정만으로 그 임금의 통상임금성이 부정되지 않는다. 설령 근로자의 실제 근무일수가 소정근로일수에 미치지 못하여 근로자가 근무일수 조건부 임금을 지급받지 못하더라도, 그 임금이 소정근로 대가성, 정기성, 일률성을 갖추고 있는 한 이를 통상임금에 산입하여 연장․야간․휴일근로(이하 ‘연장근로 등’이라 한다)에 대한 법정수당을 산정하여야 한다. 통상임금은 실제 근무일수나 실제 수령한 임금에 관계없이 소정근로의 가치를 반영하여 정한 기준임금이기 때문이다. 반면 소정근로일수를 초과하는 근무일수 조건부 임금은 소정근로를 제공하였다고 하여 지급되는 것이 아니고 소정근로를 넘는 추가 근로의 대가이므로 통상임금이 아니다. 구체적인 논거는 다음과 같다. 1) 대법원 2013. 12. 18. 선고 2012다89399 전원합의체 판결(이하 ‘2013년 전원합의체 판결’이라 한다)은 ‘조건의 충족 여부와 관계없이 임금의 지급 여부나 지급액이 사전에 확정될 것’을 의미하는 고정성을 통상임금의 개념적 징표로 제시하고, 그에 따라 근무일수 조건부 임금은 ‘일정 근무일수의 충족’이라는 조건의 성취 여부가 불확실하므로 고정성이 부정된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의미의 고정성 개념은 통상임금에 관한 정의규정인 근로기준법 시행령 제6조 제1항을 비롯한 근로관계법령 어디에도 근거가 없다. 고정성 개념은 통상임금의 범위를 법령상 근거 없이 축소시킨다. 이로써 연장근로 등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 이루어지지 못하게 되어 연장근로 등을 억제하려는 근로기준법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게 된다. 또한 고정성을 통상임금의 개념적 징표로 삼으면 근로관계 당사자가 어떤 임금에 근무일수 조건과 같은 지급조건을 부가하여 쉽게 그 임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할 수 있도록 허용함으로써 통상임금의 강행성을 잠탈할 위험도 초래된다. 통상임금은 법적 개념이자 강행적 개념이므로, 원칙적으로 법령의 정의와 취지에 충실하면서도 당사자가 이를 임의로 변경할 수 없도록 해석하여야 한다. 2) 통상임금의 본질은 근로자가 소정근로시간에 제공하기로 정한 근로의 가치를 평가한 기준임금이라는 데에 있으므로, 실근로와 무관하게 소정근로 그 자체의 가치를 온전하게 반영하여야 한다. 통상임금은 가상의 도구개념이고 그 개념이 전제하는 근로자는 ‘소정근로를 온전하게 제공하는 근로자’이다. 근로자와 사용자가 ‘1주일에 40시간의 소정근로를 제공하면 그 대가로 100만 원을 지급하겠다’고 미리 정하였다면 당사자가 40시간의 소정근로 가치를 반영하여 미리 정한 금액은 ‘100만 원’이다. 이 금액은 정기성과 일률성을 갖추는 한 통상임금으로 평가된다. 이처럼 통상임금에는 ‘근로자가 미리 정해진 소정근로를 온전하게 제공할 것’이라는 전제가 당연히 깔려있다. 물론 ‘소정근로의 온전한 제공’이라는 전제가 현실에서 늘 성취되는 것은 아니다. 근로자가 개인 사정상 1주일에 30시간의 실근로만 제공할 수도 있다. 비위행위로 징계를 받아 감봉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통상임금은 근로자와 사용자가 미리 정한 ‘40시간의 소정근로 제공’이 온전하게 이루어지는 상황을 전제로 산정하여야 하고, 또 그렇게 하면 충분하다. 사후적으로 30시간의 실근로만 제공하였다는 사정은 통상임금이 아니라 실제 임금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뿐이다. 3) 통상임금이 연장근로수당과 같은 법정수당 산정을 위한 도구개념인 점을 고려하면 ‘사전적 산정 가능성’이 확보되어야 한다는 요청도 중요하게 고려하여야 한다. 즉, 통상임금 판단 기준은 명확하고 예측가능성이 있는 것이어야 한다. 종전 판례가 ‘조건의 성취 여부가 불확실하면 고정성이 결여되어 통상임금이 아니라는 법리’를 선언한 것도 외견상 명확하고 적용하기 쉬운 기준을 제시하려는 방향성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고정성 개념은 앞서 보았듯이 법령 부합성, 강행성, 소정근로 가치 반영성 등과 같은 요청을 충족하지 못하여 통상임금의 개념적 징표로 삼을 수 없다. 기존 고정성 개념의 핵심을 이루는 ‘사전 확정성’은 애당초 완벽하게 달성할 수 없는 지표이기도 하다. 장차 무노동, 징계, 퇴직 등의 사유가 발생하여 임금 전부 또는 일부의 지급을 좌절시키는 상황이 발생할지는 그 누구도 미리 완벽하게 확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통상임금의 사전적 산정 가능성은 사전에 확정될 수 없는 장래의 요소를 배제하고 ‘소정근로의 온전한 제공’이라는 전제적 개념에 충실함으로써 달성될 수 있다. 따라서 조건으로 부여된 근무일수가 소정근로일수 이내인 경우에는, 조건의 성취 가능성과 통상임금성을 결부시키지 않고 근로자가 소정근로일수를 모두 근무한다는 전제에서 통상임금 해당 여부를 판단하면 된다. 4) ‘소정근로를 온전하게 제공하는 근로자’가 해당 사업장의 통상적인 모습의 근로자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을 수 있다. 업종, 근로자의 근무실태, 시기 등에 따라서는 소정근로를 제공하지 못하는 근로자가 상당수 발생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급조건이 붙은 임금의 통상임금성을 근로자들의 구체적인 근무실태를 고려하여 ‘해당 사업장의 근로자가 통상적으로 충족할 수 있는 조건인지’를 기준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 통상임금 판단 기준은 다종다양한 임금 유형에 정합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조건의 통상적인 성취 가능성’을 판단 기준으로 삼으면, 가령 재직조건부 임금과 같은 경우에는 ‘근로자가 사업장에 재직하는 것이 통상적이고 퇴직은 예외적인 사건에 불과하다’는 논리로 통상임금성을 판단하는 것이 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근무일수 조건부 임금의 경우에는 어느 정도가 ‘조건의 통상적인 성취 가능성’이 인정되는 근무일수인지를 밝히는 것이 쉽지 않다. 이는 통상성에 대한 관점, 사업장의 특성과 관행, 근로자들의 근로 행태 등 다양한 변수의 영향 아래 판단할 수밖에 없다. ‘소정근로일수 중 며칠을 실근로하는 것이 통상적인지’의 판단이 불명확하기 때문에 결국 개별 사안마다 해당 사업장의 근무일수 조건 충족률 통계를 따져 사후적으로 통상성을 가늠할 수밖에 없게 되어 통상임금의 사전적 산정 가능성이 심각하게 훼손된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통상임금 판단의 명확성과 예측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소정근로의 온전한 제공’을 전제로 통상임금 여부를 판단함이 타당하다. 5) 근무일수 조건부 임금을 지급하는 사업장 중에서는 휴가를 사용한 날을 근무일수에 포함시켜 조건 충족 여부를 판단하는 곳이 있고, 실제 근무한 날만을 근무일수에 산입하는 이른바 ‘실근무일수 조건부 임금’을 둔 곳도 있다. 후자의 경우 예를 들면 소정근로일수 전부를 실제 근무할 것을 조건으로 지급하는 임금은 휴가를 사용하지 않은 채 소정근로일수를 개근할 것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소정근로를 초과하는 추가적인 조건이 부가되어 있다고 볼 여지가 전혀 없지는 않다. 그러나 휴가의 발생과 사용이 사업장이나 근로자별로 개별적, 유동적인 상황에서 근로자가 며칠의 휴가를 사용하고 나머지 소정근로일을 개근하는 것이 ‘소정근로의 온전한 제공’에 해당하는지를 명확히 제시하기 어렵다. 이를 근로자들의 근무실태 현황을 참고하는 등의 방법으로 산출해 낼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순간 통상임금 판단이 ‘실근로’와 연계됨으로써 통상임금의 사전적 산정 가능성을 현저히 떨어뜨린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실근무일수 조건부 임금도 휴가의 발생이나 실제 사용 여부를 고려하지 않고 조건으로 부여된 근무일수가 소정근로일수를 초과하는지에 따라 통상임금성을 일괄적으로 판단함이 타당하다. 6) 한편 소정근로일수는 근로기준법이 정한 범위 내에서 기본적으로 근로관계 당사자가 자유롭게 정할 수 있는 것이지만, 오로지 어떤 근무일수 조건부 임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할 의도로 근무실태와 동떨어진 소정근로일수를 정하는 경우와 같이 통상임금의 강행성을 잠탈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그러한 합의의 효력이 부정될 수 있다. 나. 판례의 변경 및 새로운 법리의 효력 범위 2013년 전원합의체 판결 중 고정성을 통상임금의 개념적 징표로 삼아 근무일수 조건부 임금의 통상임금 해당 여부를 판단한 부분과 그와 같은 취지의 종전 판결들은 이 판결의 견해와 배치되는 범위 내에서 모두 변경하기로 한다. 위와 같이 변경된 새로운 법리는 법적 안정성과 신뢰보호를 고려하여 이 판결 선고일 이후의 통상임금 산정부터 적용하되, 다만 이 사건 및 이 판결 선고 시점에 이 판결이 변경하는 법리가 재판의 전제가 되어 통상임금 해당 여부가 다투어져 법원에 계속 중인 병행사건에는 구체적 사건의 권리구제를 목적으로 하는 사법의 본질상 새로운 법리를 소급 적용하여야 한다. (대법원 2024. 12. 19. 선고 전원합의체 2023다302838 판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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