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법의 영역 중에서 미아로 남은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이 노동형법의 문제입니다. 노동법의 전문가 중에서 노동형법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형법 전문가가 노동형법을 친절하게 정리하면 좋은데, 형법 전문가가 노동법을 연구하여 노동형법을 독자적으로 정리하는 것이 무척이나 고통스럽고 부담스럽기 때문에 대부분 시도조차 하지 않습니다. 거꾸로 노동법 전문가가 노동형법을 연구하는 것은 형법이론에 정통하여야 가능하기 때문에 난공불락의 영역이 되었습니다.
○좋든 싫든 노동형법은 시민생활 속에서 존재하는 영역이기에 차분하게 이해하고 검토하여야 하는 영역입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구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구 교원노조법)’상의 해직교원의 가입여부에 대한 신문기사는 꽤나 많은데, 일반 시민이 의문을 품을 법한 왜 해직교원의 가입인정이 범죄가 되는가에 대한 기사 자체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단지 진영논리에 따른 찬반론만이 가득합니다. 그러나 한국이 가입국으로 되어 있는 ILO(국제노동기구)는 노동조합의 가입범위를 넓게 설정하고 있습니다. 결사의 자유를 폭넓게 보장하는 것이기에, 그 범위를 좁힌 한국 노동조합법과 끊임이 없는 긴장관계에 놓여 있었습니다. 구 교원노조법의 노동형법의 문제는 실은 ILO규약과의 저촉을 포함하는 국제적인 문제였습니다.
○수출로 먹고 사는 한국이 한-EU FTA 협정을 체결하면서 결사의 자유를 포함하는 ILO협정 준수가 협정의 내용에 포함되었습니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EU는 한국의 노동조합법령체계의 개정을 압박했고, 마침내 2021년 노동조합관련법령이 개정되었습니다. 다음 대법원 판결은 이러한 배경을 이해하여야 쉽게 이해가 되는 판결입니다. 구 교원노조법은 ‘현직 교원’만 가입대상자로 한정했습니다(구 교원노조법 제2조). 현직 교원이 아닌 ‘해직 교원’을 노조원으로 두는 교원노조규약을 존치하는 노조대표자를 형사처벌조항도 존재했습니다. 그 반면에 신 교원노조법은 ‘교원으로 임용되어 근무하였던 사람으로서 노동조합 규약으로 정하는 사람(제4조의2 제2호)’까지 그 범위를 확장했습니다. ILO의 취지에 부합하도록 개정한 것입니다.
○본래 노동조합은 노동자가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결사의 자유의 영역입니다. 노동조합의 강력한 보호를 위하여 헌법상의 기본권과 실정법으로 규정한 것입니다. 따라서 법리로만 본다면 해고자를 노조규약에 가입대상에 두는 것은 노조의 자유입니다. 쉽게 말해서 해고자까지 노조원으로 두든 현직자만 두든 그것은 노조가 알아서 할 것이지 형벌로 다스릴 사안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 교원노조법은 해고자를 가입대상자로 인정하는 노조규약을 개정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처벌을 하였습니다. 헌법상 노동조합의 단결권에 반하는 위헌적인 내용입니다.
○그러는 와중에 구 교원노조법이 개정되어서 이제는 해고자도 교원노조에 가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구법시대에는 형벌로 규정된 상황이 재판도중에 형벌이 변경된 경우입니다. 형벌의 개정 중에서 가벌성을 폐지하는 규정 중에서 재판도중에 변경이 되는 규정은 필연적으로 형법의 적용시점에 대한 논쟁을 낳습니다. 행위당시에는 처벌이었다가 재판도중에 불벌조항으로 변경되었으니, 피고인은 형사소송법 제326조 제4호의 규정을 기대하면서 면소판결을 확신합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형법 제1조 제2항 및 형사소송법 제326조 제4호의 ‘법률의 변경’은 ‘법률변경의 동기’를 고려하여야 한다는 유명한 ‘동기설’로 일관합니다. 행위당시에는 죄가 되는 행위였는데, 운이 좋게도 시간이 흐르면서 불벌로 변경된 것에 불과하다는 암묵적 전제가 깔린 것입니다. 위 대법원의 사안은 그 중에서 재판도중에 형벌조항이 폐지된 경우입니다. 그러나 대법원의 동기설은 형법학자들 상당수가 비난을 합니다. 동기설은 법률변경의 동기가 법률이념의 변화인지 사실관계의 변화인지에 관한 명백한 구별기준을 제시하지 못해 법적 안정성을 해하게 됩니다. 법관의 자의를 막으려고 죄형법정주의가 도입됐는데, 법관의 시각에 따라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황당한 상황이 연출되기 때문입니다.
○동기설을 취한 대법원의 판결 중에서 영업시간제한의 해제를 사실관계의 변화에 기한 것으로 본 것이 있습니다(대법원 2000. 6. 9. 선고, 2000도764 판결). 그러나 영업시간의 제한은 본래 국민의 기본권의 영역인 영업의 자유를 질서유지차원에서 제한한 것이므로, 영업시간의 제한의 해제란 국민의 영업의 자유권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것에 대한 반성적 고려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것입니다. 아무튼 구 교원노조법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은 당연한 귀결입니다.
<구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 제2조 이 법에서 "교원"이란 「초·중등교육법」 제19조제1항에서 규정하고 있는 교원을 말한다. 다만, 해고된 사람으로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82조제1항에 따라 노동위원회에 부당노동행위의 구제신청을 한 사람은 「노동위원회법」 제2조에 따른 중앙노동위원회(이하 "중앙노동위원회"라 한다)의 재심판정이 있을 때까지 교원으로 본다. <신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 제4조의2(가입 범위)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있는 사람의 범위는 다음 각 호와 같다. 1. 교원 2. 교원으로 임용되어 근무하였던 사람으로서 노동조합 규약으로 정하는 사람 <형법> 제1조(범죄의 성립과 처벌) ① 범죄의 성립과 처벌은 행위 시의 법률에 따른다. ② 범죄 후 법률이 변경되어 그 행위가 범죄를 구성하지 아니하게 되거나 형이 구법보다 가벼워진 경우에는 신법에 따른다. ③ 재판이 확정된 후 법률이 변경되어 그 행위가 범죄를 구성하지 아니하게 된 경우에는 형의 집행을 면제한다. <형사소송법> 제326조(면소의 판결) 다음 경우에는 판결로써 면소의 선고를 하여야 한다. 1. 확정판결이 있은 때 2. 사면이 있은 때 3. 공소의 시효가 완성되었을 때 4. 범죄 후의 법령개폐로 형이 폐지되었을 때 <대법원 판례> 교원 노동조합인 피고인 갑 노동조합의 대표자 피고인 을이, 해직 교원에게 조합원 자격을 인정하는 피고인 갑 노동조합 규약이 구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2020. 6. 9. 법률 제17430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구 교원노조법’이라고 한다) 제2조에 위반된다는 이유로 고용노동부장관으로부터 시정명령을 받고도 이를 이행하지 아니하였다는 구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2020. 6. 9. 법률 제17432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구 노동조합법’이라고 한다) 위반의 공소사실이 제1심 및 원심에서 유죄로 인정되었는데, 원심판결 선고 후 구 교원노조법이 2021. 1. 5. 법률 제17861호로 개정되면서 제2조 단서가 삭제되고 제4조의2가 신설됨으로써 종전까지 금지하던 해직 교원의 교원 노동조합 가입을 허용하는 것으로 법령이 변경된 사안에서, 구 노동조합법 제93조 제2호 위반죄의 보호법익과 구성요건, 시정명령의 경위와 근거 법령, 구 교원노조법 개정의 경위와 내용 등을 종합하면, 구 교원노조법 개정은 법령상 해직 교원의 교원 노동조합 가입을 허용하지 아니한 종전의 조치가 부당하였다는 법률이념의 변천에 따른 것으로서, 해직 교원에게 조합원 자격을 인정하는 교원 노동조합의 규약에 대하여 시정을 명하거나 그 시정명령 위반행위를 범죄로 인정하고 처벌한 것 역시 부당하였다는 반성적 고려를 전제하고 있다고 봄이 타당하므로, 피고인들의 시정명령 위반행위는 형법 제1조 제2항의 ‘범죄 후 법령의 변경에 의하여 그 행위가 범죄를 구성하지 아니한 때’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피고인들에 대한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제1심판결 및 원심판결을 모두 파기하고 직접 면소판결을 한 사례. (대법원 2021. 12. 30. 선고 2017도15175 판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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