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가 행위를 규정한다는 유명한 K. Marx의 언명이 있습니다. 법관도 그 언명에 해당합니다. 법관은 성문법과 불문법 중에서 성문법을 우선하여 적용합니다. 불문법은 추상적인 법조문의 해석이나 원리를 이해하는 수준에서 인정하지 실정법상의 구체적인 권리를 인정하는 것에는 극히 인색합니다. 불문법상의 권리는 그 요건, 효과, 행사기간 등 권리를 현실에서 인정하는 것에서 파생하는 문제가 많기 때문입니다. 법관이 이렇게 무리해서 인정할 필요가 없기에 대충 부정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립니다. 법관이라는 직업이 사람 자체를 보수적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법관이 불문법상의 권리를 인정한 것은 손에 꼽을 정도인데, 구체적으로, 법인격부인론에 의한 청구인용판결, 사정변경의 원칙에 의한 해제권, 소멸시효남용론에 의한 권리의 인정 등이 그 사례입니다. 그런데 노동법의 영역에서는 주목할 만한 불문법상의 권리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갱신기대권입니다. 대법원이 판례이론으로 형성한 갱신기대권이론은 일종의 불문법상의 권리로 고양이 되었습니다. 근로자보호가 강력하게 필여한 계약직 근로자의 권리보호를 위한 대법원의 해석론의 결과입니다.
○대법원은 ‘당해 근로관계를 둘러싼 여러 사정을 종합하여 볼 때 근로계약 당사자 사이에 일정한 요건이 충족되면 근로계약이 갱신된다는 신뢰관계가 형성되어 있어 근로자에게 근로계약이 갱신될 수 있으리라는 정당한 기대권이 인정되는 경우에는, 사용자가 이를 위반하여 부당하게 근로계약의 갱신을 거절하는 것은 부당해고와 마찬가지로 아무런 효력이 없고, 이 경우 기간만료 후의 근로관계는 종전의 근로계약이 갱신된 것과 동일하다(대법원 2011. 4. 14. 선고 2007두1729 판결).’고 판시하여 극히 예외적인 사안의 경우에는 근로자보호를 이유로 갱신기대권을 인정하였습니다. 법원이 일반적으로 사법체계에서 갱신기대권을 인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법원은 노동법의 특수성을 인정하면서도 원칙은 민법이나 상법과 같은 사법의 원리로 근로계약법체계를 이해합니다. 그리하여 근로계약서상 계약기간 자동 연장 조항의 해석이 문제된 사건(대법원 2022. 2. 10. 선고 2020다279951 판결)에서 법률행위의 해석에 대한 기존의 해석론(대법원 1996. 7. 30. 선고 95다29130 판결 등)을 반복하면서 자동연장조항의 축소해석론을 부정하였습니다.
○대법원의 논거를 단순화하여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원심은 종전 근로기간을 A, 갱신기간을 B라 하면, 양자는 동등한 조건이라는 전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갱신을 하는 것은 종전과 동일한 조건이기에 갱신을 하는 것이지 상황이 변경되어서 전후 A와 B의 상태가 다르다면 갱신이 거부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하여 부당해고를 인정하였어도 갱신을 전제로 갱신기간에 대한 원상회복을 부정하여 원고의 갱신기간에 대한 임금상당액의 청구를 기각하였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기존의 법률행위의 축소해석론의 엄격한 해석에 대한 법리(문언의 객관적인 의미와 다르게 해석함으로써 당사자 사이의 법률관계에 중대한 영향을 초래하는 경우에는 그 문언의 내용을 더욱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대법원 2008. 11. 13. 선고 2008다46531 판결 등 참조))를 전개하면서 원심을 파기환송하였습니다.
기간을 정하여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의 경우 그 기간이 만료됨으로써 근로자로서의 신분관계는 당연히 종료되고 근로계약을 갱신하지 못하면 갱신 거절의 의사표시가 없어도 당연 퇴직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근로계약, 취업규칙, 단체협약 등에서 기간만료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요건이 충족되면 당해 근로계약이 갱신된다는 취지의 규정을 두고 있거나, 그러한 규정이 없더라도 근로계약의 내용과 근로계약이 이루어지게 된 동기 및 경위, 계약 갱신의 기준 등 갱신에 관한 요건이나 절차의 설정 여부 및 그 실태, 근로자가 수행하는 업무의 내용 등 당해 근로관계를 둘러싼 여러 사정을 종합하여 볼 때 근로계약 당사자 사이에 일정한 요건이 충족되면 근로계약이 갱신된다는 신뢰관계가 형성되어 있어 근로자에게 근로계약이 갱신될 수 있으리라는 정당한 기대권이 인정되는 경우에는, 사용자가 이를 위반하여 부당하게 근로계약의 갱신을 거절하는 것은 부당해고와 마찬가지로 아무런 효력이 없고, 이 경우 기간만료 후의 근로관계는 종전의 근로계약이 갱신된 것과 동일하다. (대법원 2011. 4. 14. 선고 2007두1729 판결) 계약당사자 사이에 어떠한 계약내용을 처분문서인 서면으로 작성한 경우에 문언의 의미가 명확하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문언대로 의사표시의 존재와 내용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그 문언의 의미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 경우에는 문언의 내용, 계약이 이루어지게 된 동기와 경위, 당사자가 계약으로 달성하려고 하는 목적과 진정한 의사, 거래의 관행 등을 종합적으로 고찰하여 논리와 경험의 법칙, 그리고 사회일반의 상식과 거래의 통념에 따라 계약내용을 합리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대법원 1996. 7. 30. 선고 95다29130 판결 등 참조). 특히 문언의 객관적인 의미와 다르게 해석함으로써 당사자 사이의 법률관계에 중대한 영향을 초래하는 경우에는 그 문언의 내용을 더욱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대법원 2008. 11. 13. 선고 2008다46531 판결 등 참조). (대법원 2022. 2. 10. 선고 2020다279951 판결) |
○말하자면, 대법원은 원심이 원고의 부당해고에 관한 주장을 받아들이면서도, 이 사건 조항은 원고가 근로계약상 정해진 근로를 정상적으로 제공할 수 있음을 전제로 적용되는 규정인데 원고가 그러한 전제를 충족하지 못하였으므로 위 근로계약이 자동 갱신되지 않았다고 보아, 원고의 청구 중 계약기간 만료일 이후의 기간에 대한 부분은 기각한 판단에 대하여 문언의 의미에 반하는 축소해석금지라는 기존의 대법원의 법리로 부정한 것입니다. 갱신을 규정한 근로계약서의 문언적 의미를 중시한 것입니다. 그 이전에 근로계약법은 민법의 해석론에 입각한다는 점을 명확히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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