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학의 태두 성호 이익은 자신의 아호를 딴 ‘성호사설(星湖僿說)’에서 ‘전황(錢荒)’을 주장하였습니다. 전황이란 글자 그대로 돈에 의한 황폐화를 의미합니다. 이미 이익이 살던 조선후기는 대동법의 정착과 농지의 광작(廣作)으로 인한 화폐경제가 정착되어 백성들은 화폐가 없는 세상의 혼란을 인지한 상태이고, 당대의 석학인 이익 본인도 당연히 인지했을 것이 분명함에도 왜 그런 주장을 했는지 의문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화폐경제가 자산의 양극화를 초래하여 부의 집중을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K. 마르크스가 ‘자본(Das Kapital)’에서 자산가와 노동자 간에 부의 양극화를 강력히 비판한 것과 완전히 같은 논거입니다. 화폐경제는 자본주의를 심화시켜 경제를 발전시키지만, 자산양극화를 초래하는 것은 어쩌면 필연적인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자산의 양극화가 진행되면 자산을 소유한 사람들은 이미 돈의 위력(돈맛!)을 본 사람들이기에 ‘근로소득’보다는 ‘자본소득’에 치우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사업소득에 매진하는 사람들도 존재합니다. 다만, 사업이란 자기의 노동력을 담아야 하기에 광의의 근로소득에 가깝습니다. 이렇게 돈을 축적한 사람들은 굳이 힘든 일을 하지 않고 주식투자나 건물주가 되어 돈을 펑펑 쓰면서 목에 힘을 주는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여기에 주목하여 미국의 사회학자 베블렌은 ‘유한계급론(The Theory of the Leisure Class)’라는 저서를 서술하여 유한계급에 대한 통쾌하고 신랄하게 비판을 가하였습니다. 정통경제학자들이 한계효용론에 입각하여 이윤극대화와 합리적 수요·공급에 따른 최적의 소비를 지향한다는 경제학이론에 반기를 들면서 소비란 합리적인 측면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과시적 측면도 존재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베블렌의 이런 주장에 주목하여 제도경제학파의 선구자라고 불립니다.
○베블렌의 주장이 21세기 현재도 어느 정도 현실성이 있는 것이 ‘인스타감성’으로 표현되는 2030여성들의 소비과시를 보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인스타감성이란 인스타그램에 오마카세, 해외여행, 골프 등의 사진을 게재하면서 유한계급임을 과시하는 행태를 꼬집어서 말하는 것입니다. 이미 100년전 베블렌이 갈파한 인간의 속물근성이 재현되는 느낌이기도 합니다. 베블렌은 이렇게 당시 약탈과 기만으로 재산을 축적해서 사치와 방탕한 생활을 일삼던 미국의 부자들을 예리하게 비판했습니다. 그런데 속물근성도 인간의 본성 중의 하나입니다. 이미 2,500년 전에 장자가 증명했습니다. 문제는 허세만으로 이렇게 인스타감성을 구축할 수는 없고, 근로소득만으로도 인스타감성이 불가능하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주목한 것이 코인, 주식, 그리고 부동산입니다. 모두 자본소득에 해당합니다. 특히 건물주는 자본소득을 누리는 사람입니다. 최근 어린이들의 장래희망이 건물주라는 여론조사는 유한계급에 편입하려는 어린이들의 소망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제조업강국으로 명성을 쌓았던 미국이 1980년대 이후 글로벌 아웃소싱 전략으로 제조업의 비중이 낮아져도 오히려 욱일승천하는 기세를 보면, 자본소득의 위력이 대단합니다. 실은 화폐경제가 공고화된 현대경제에서 근로소득이 자본소득을 능가하는 경우 자체가 없습니다. 2030세대는 주식과 코인, 4050세대는 부동산에 올인하는 것이 한국의 현실임을 고려하면 근로소득을 창출하는 근로자의 가슴에는 ‘허탈’이라는 두 글자가 깊이 낙인이 새겨집니다. 자본소득의 추구는 실은 권고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니, 권고를 넘어 필수적인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그러나 자본소득은 함정이 있습니다. 자본주의경제에서 자본소득을 외면하는 것이 더 이상합니다만, 자본소득이란 이득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손실도 감내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본의 축적도 근로소득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이제 건물주의 문제로 돌아갑니다. 건물주의 수익이란 결국 임차인의 임차료가 기초입니다. 수익률이라는 것은 지속적인 임차수요와 임차료에 기반하며, 그 임차료에 기초하여 건물가치가 상승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공실인 건물인 경우에는 막대한 손해가 기다립니다. 갭투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식과 코인은 아예 원금손실의 위험도 상존합니다. 따라서 근로소득과 자본소득의 추구가 정답에 근접한다고 봅니다. 미래는 그 누구도 보장하지 않습니다. 그나마 돈이 있어야 자기의 미래가 보장될 수 있습니다. 각자도생의 시대에 근로소득과 자본소득의 균형이 필요합니다.
<장상환 교수, ‘소스타인 베블런-유한계급을 비판하다’ 중에서 베블런은 「유한계급론」에서 신흥 부호들의 행태를 야만시대의 지배층에 빗대 ‘유한계급’이라 부르고 조롱했다. 현대의 유한계급은 부의 축적만을 지상목표로 삼았고, 돈에 구애받지 않고서 소비하며, 일하지 않고도 살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음식, 장신구, 의복, 주택, 가구 등의 과시적 소비와 과시적 여가활동을 한다. 하인과 여성의 의복도 과시적인 대리 소비의 대상이 되고, 스포츠 역시 여가를 과시하는 표시가 된다. 그의 주장에서 ‘베블런 효과’라는 개념이 나왔다. 재화의 가격이 올라가면 소비가 줄어야 정상인데 명품 등 일부 사치재의 경우는 값이 비쌀수록 더 소비하는 비정상적 구매행태가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우월성을 드러내기 위한 부르주아 계급의 속물근성 때문이다. 베블런에 의하면 과시적 소비와 여가활동에 대한 집착은 계급적 대립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사회적 안정을 가져다주는 효과가 있다. 대중들 또한 유한계급의 과시적 소비와 여가를 우러러 보는 통념에 젖어들어 유한계급을 없애려 하는 대신 그들을 부러워하고 그 자리로 올라가려 한다는 것이다. |
'자유게시판'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구인배수와 고용증가율> (0) | 2025.02.11 |
---|---|
<빨간 날(공휴일), 그리고 대체빨간 날(대체공휴일)> (0) | 2025.02.06 |
<청년의 창업과 채용, 그리고 정년> (1) | 2025.01.29 |
<아디다스, 그리고 슬픈 르까프> (0) | 2025.01.25 |
6<로진스키 vs. 하야비치> (0) | 2025.0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