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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과 단체협약/노동조합의 운영

<‘장 발장’ 속의 미리엘 주교의 은촛대, 그리고 업무방해방조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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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서 법대로 하자!’는 주장에 대하여 싸늘한 반응을 보이는 분들이 많습니다. 한편에서는 원칙대로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분들이 있지만, 이러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원칙을 빙자하여 냉정하고 야박하게 타인을 대하는 행태에 대한 소박한 법감정이 발현된 것이리라 봅니다. 온정주의가 언제나 옳은 방법은 아니지만, 인간사회에서 사람 간에서 주고받는 따뜻한 인간미야말로 세상을 밝히는 등불입니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장 발장에서는 자베르 경감으로 상징이 되는 법치주의와 미리엘 주교로 상징이 되는 휴머니즘이 대립각으로 등장합니다. 물론 위고의 시각은 미리엘 주교의 휴머니즘입니다. 장 발장이 이역만리 한국에서도 뜨거운 호응을 얻고 무수히 많은 영화와 드라마, 그리고 뮤지컬화 된 것은 휴머니즘이라는 것은 시대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은촛대를 훔친 장 발장을 경찰에 고발하는 것은 법치주의에 충실하겠지만, 태연하게 은촛대를 장 발장에게 거저 주었다는 미리엘 주교의 거짓말은 위대한 휴머니즘 그 자체입니다. 오랜 세월 동안 무수히 많은 독자들이 미리엘 주교의 거짓말에 눈물을 흘리고 감동했습니다. 공자가 아버지를 관가에 고발한 자식을 꾸짖는 장면은 세월이 지났어도 감동의 여운을 남기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장 발장의 명장면에 필적하는 감동의 장면은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에도 등장합니다. 이념대결로 원수지간이 된 형제 염상진과 염상구는 생전에는 서로를 죽이려고 총구를 겨눴지만, 막상 형 염상진이 죽자 동생 염상구는 살아서야 빨갱이재 죽어서도 빨갱이냐!’고 하면서 형 염상진의 시신을 수습합니다. 법에도 눈물이 있다는 평범한 이치를 깨닫게 하는 감동의 순간입니다. 다음 대법원 판결에서도 법리속에 담긴 대법관의 휴머니즘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사안은 업무방해죄와 그 방조범에 대한 사안입니다. 정범은 철도노조 조합원 2인입니다. 이들은 한국철도공사의 순환전보방침에 반대하고자 높이 15m가량의 조명탑 중간 대기 장소에 올라가 이를 점거함으로써 한국철도공사로 하여금 위 조합원들의 안전을 위해 조명탑의 전원을 차단하게 하여 위력으로 한국철도공사의 야간 입환업무를 방해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동료조합원이자 이들의 방조범입니다. 이들은 위 조합원들의 농성을 지지하고자 조명탑 아래 천막을 설치하고, 지지집회를 개최하고, 음식물 등 물품을 제공하여 위 업무방해범행을 용이하게 함으로써 이를 방조하였다는 공소사실(업무방해방조)로 기소되었습니다. 업무방해를 행한 나쁜 놈들을 도와 준 행위이므로, 나쁜 놈들이자 방조범이라는 검찰의 기소는 얼핏 법치주의의 필연적 귀결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업무방해죄 자체가 입법적으로 노조의 업무를 탄압하려는 의도로 제정된 문제가 많은 법이라는 점(물론 헌법재판소에서는 지속적으로 합헌판결을 하였지만, 연혁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문제가 있다는 점 자체는 일관되게 인정하였습니다) 외에 동료 노조원이 굶어가면서 농성을 하는데 동참은 못하더라도 밥은 챙겨주는 행위 그 자체는 휴머니즘 내지 인도주의 차원에서 용인할 부분입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심정적이유으로만 판결할 수가 없습니다. 법리를 적용해야 합니다.

 

대법원은 농성자들에게 제공한 음식물 등은 생존을 위해 요구되는 것인 점 등의 사정을 들어 피고인들의 행위가 전체적으로 보아 조명탑 점거에 일부 도움이 된 측면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행위의 태양과 빈도, 경위, 장소적 특성 등에 비추어 농성자들의 업무방해범죄 실현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행위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방조죄에서 요구하는 인과관계를 부정하여, 이와 달리 공소사실을 모두 유죄로 인정한 원심을 파기·환송하였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의 법리에 부족한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협의의 공범으로 불리는 교사범과 방조범에 있어서의 이중의 고의, 즉 정범의 고의와 공범의 고의가 동시에 존재하여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은 점입니다. 음식물 등의 제공은 휴머니즘의 발현이기에, 전쟁포로에게도 음식을 제공하여야 한다는 것이 제네바협약의 정신입니다.

 

검사의 공소사실은 1). 회사 인사 방침에 대한 의견을 표현하는 집회의 개최 등과 2). 농성자들에게 음식물 등의 제공행위가 있는데, 전자는 최근 대법원 판결이 노조활동과 관련한 업무방해죄 적용의 전향적인 경향은 표현의 자유를 중시한 결과입니다. 따라서 유죄판결의 사유로 인정하기 어렵습니다. 문제는 음식물 등의 제공행위입니다. 최근 캣맘 등의 폐해가 문제가 되지만, 행인은 물론 짐승에게도 음식물 등의 제공행위는 법률적으로 판단할 사안 자체가 아닙니다. 휴머니즘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형법>
32(종범) 타인의 범죄를 방조한 자는 종범으로 처벌한다.
종범의 형은 정범의 형보다 감경한다.
314(업무방해) 313조의 방법 또는 위력으로써 사람의 업무를 방해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컴퓨터등 정보처리장치 또는 전자기록등 특수매체기록을 손괴하거나 정보처리장치에 허위의 정보 또는 부정한 명령을 입력하거나 기타 방법으로 정보처리에 장애를 발생하게 하여 사람의 업무를 방해한 자도 제1항의 형과 같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37(쟁의행위의 기본원칙) 쟁의행위는 그 목적ㆍ방법 및 절차에 있어서 법령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되어서는 아니된다.
조합원은 노동조합에 의하여 주도되지 아니한 쟁의행위를 하여서는 아니된다.
노동조합은 사용자의 점유를 배제하여 조업을 방해하는 형태로 쟁의행위를 해서는 아니 된다.
형법 제32조 제1항은 타인의 범죄를 방조한 자는 종범으로 처벌한다.”라고 정하고 있다. 방조란 정범의 구체적인 범행준비나 범행사실을 알고 그 실행행위를 가능ㆍ촉진ㆍ용이하게 하는 지원행위 또는 정범의 범죄행위가 종료하기 전에 정범에 의한 법익 침해를 강화ㆍ증대시키는 행위로서, 정범의 범죄 실현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행위를 말한다. 방조범은 정범에 종속하여 성립하는 범죄이므로 방조행위와 정범의 범죄 실현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필요하다. 방조범이 성립하려면 방조행위가 정범의 범죄 실현과 밀접한 관련이 있고 정범으로 하여금 구체적 위험을 실현시키거나 범죄 결과를 발생시킬 기회를 높이는 등으로 정범의 범죄 실현에 현실적인 기여를 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정범의 범죄 실현과 밀접한 관련이 없는 행위를 도와준 데 지나지 않는 경우에는 방조범이 성립하지 않는다.
쟁의행위가 업무방해죄에 해당하는 경우 제3자가 그러한 정을 알면서 쟁의행위의 실행을 용이하게 한 경우에는 업무방해방조죄가 성립할 수 있다. 다만 헌법 제33조 제1항이 규정하고 있는 노동3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는 근로자나 노동조합이 노동3권을 행사할 때 제3자의 조력을 폭넓게 받을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고, 나아가 근로자나 노동조합에 조력하는 제3자도 헌법 제21조에 따른 표현의 자유나 헌법 제10조에 내재된 일반적 행동의 자유를 가지고 있으므로, 위법한 쟁의행위에 대한 조력행위가 업무방해방조에 해당하는지 판단할 때는 헌법이 보장하는 위와 같은 기본권이 위축되지 않도록 업무방해방조죄의 성립 범위를 신중하게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21. 9. 9. 선고 201719025 전원합의체 판결, 대법원 2021. 9. 16. 선고 201512632 판결 등 참조).
(대법원 2023. 6. 29. 선고 20179835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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