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올드보이들이 주로 기억을 할 것입니다만, 과거 1980년대까지는 대통령이 매년 연초에 ‘연두기자회견’이라는 것을 했습니다. 각 언론사에서 기자들이 순서대로 질문을(물론 사전에 대통령 비서실로부터 승인을 받은 질문으로 당시에는 ‘짜고 치는 고스톱 질문’이라고 비난을 받았습니다) 하고 대통령이 답변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신문사가 먼저 하고 방송사가 나중이었습니다. 신문기자들이 방송기자들에게 ‘너희들도 기자냐?’하고 ‘가오’를 잡던 시절이었습니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말처럼 ‘비서울대 출신’ 기자들은 ‘음메 기죽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신문기자로 행세하려면 ‘서울대’ 타이틀이 따라붙어야 했던 시절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서 질문의 순서가 방송기자부터 신문기자로 변경됐습니다. 언론의 위상이 역전되었다는 반증입니다. 물론 지금은 ‘연두기자회견’ 자체가 사라진 시대가 되었습니다만, 박근혜 정부까지 대통령에 대한 질문은 방송기자가 먼저, 신문기자는 나중이었습니다. 속칭 ‘끗발’이 방송사가 우선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이런 관행을 아예 없애고 무순위로 질문을 하는 관행을 만들었습니다. 이런 관행은 미국식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질문순서에 대한 관행과 무관하게 한국 언론사들 중에서 KBS가 규모는 물론 영향력이 가장 크다는 것은 아무도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입니다. KBS가 방송은 물론 언론에서도 한국을 대표한다는 것도 아무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실은 부인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 막강 그 자체인 KBS 양승동 전 사장에 대한 근로기준법위반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을 각 언론사는 대서특필을 했습니다. 그 죄목이 근로기준법위반 중 취업규칙의 불이익변경금지에 대한 벌칙규정을 규정한 근로기준법 제94조 및 제114조 제1호를 위반한 점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다음 <기사>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1심과 2심은 양 전 사장의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고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진실과미래위원회 운영 규정은 취업규칙에 해당하는 데도 노동자에게 불이익한 방향으로 내용을 변경하면서도 제대로 된 동의를 받지 않았다는 취지다.’라는 것으로 구체적인 죄목을 확인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다음 대법원 판결(대법원 1997. 8. 26. 선고 96다1726 판결)은 취업규칙상의 불이익변경금지를 망라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무척이나 유용한(!) 판결입니다. 이 판결을 비롯하여 대법원은 일관되게 불이익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전체적으로 보아 근로자에게 불리한 것으로’ 인정되면 불이익하다고 보았습니다. 외관상 명백하게 불이익한 경우에는 쟁점으로 다투어지지 않으나 일부는 불이익하고 다른 일부는 유리한 경우가 있을 수 있기에 종합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불이익하다고 인정되면 ‘집단적 동의’라는 방법으로 근로자들로부터 얻어야 비로소 ‘유효’라는 타이틀을 얻습니다.
○여기에서 불이익인가 여부에 대한 다툼이 있었으리라는 예측이 충분히 가능합니다. <기사>의 내용인 ‘양 전 사장 측은 "진실과미래위원회 운영 규정은 과거 정부의 언론 장악으로 공정성 침해가 발생한 상황에서 피해 회복과 재발 방지를 위한 목적으로 제정돼 사회 통념상 합리성이 있다"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심 재판부는 "'방송의 공정성과 독립성'이라는 개념은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종전 경영진이나 반대편을 탄압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위험성이 없지 않다"고 지적했다. 2심도 같은 판단을 유지했다.’라는 점을 음미해 보면, 양 전 사장은 과거 정부에서 행해졌던 이른바 ‘방송적폐청산’, 즉 ‘방송의 공정성과 독립성’을 위하여 ‘진실과미래위원회’를 설치를 위한 취업규칙의 개정을 한 것이 불이익한 것으로 대법원이 판단한 것으로 추론이 가능합니다.
○좀 더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과거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친 정권 인사로 구성되어 정권과 야합한 방송활동을 행한 KBS경영진의 전횡을 조사하기 위한 ‘진실과미래위원회’의 구성 및 활동을 위한 취업규칙의 개정은 불이익변경이라는 의미입니다. 대법원의 시각은 정치구도는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져 있기에, 방송활동도 특정 정파의 시각에 따라 그 정당성이 달라질 수 있다는 취지로 읽혀집니다. 동일한 사실도 특정 정파의 시각에 따라 달리 해석되어지는 것은 불행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의 냉정한 현실이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같은 사실을 정반대로 해석하는 것은 한국의 중대한 질병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대한 KBS의 보도자료를 주목해야 합니다. <기사>에서는 ‘KBS는 이날 대법원 판결에 대해 "근로기준법상 절차를 거치지 않은 문제에 대한 판단일 뿐 진실과미래위원회 규정 전체의 유효성이나 위원회 활동의 부정은 아니다"며 "판결의 의미가 확대 해석돼 국민 신뢰를 회복하고 방송의 공정성·독립성을 확립하고자 한 그간의 노력이 훼손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밝혔다.’라고 서술되어 있습니다. 역사적 사실은 고정되어 있습니다. ‘진실과미래위원회’만이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진실과미래위원회’의 활동에 따라 밝힌 일련의 사실 자체가 무효인 것은 아닙니다. 역사적 사실은 단 하나로 고정되어 있습니다. 무효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또한 취업규칙에 반한다고 하여 그 활동 자체를 당연히 무효로 보는 것도 논리의 비약입니다. 대법원은 위 판결에서 ‘기득이익이 침해되는 기존 근로자에 대하여는 종전의 취업규칙이 적용될 따름’이라고 하였다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KBS는 물론 모든 기업은 종전 경영진의 비위를 조사할 권한이 있습니다. ‘진실과미래위원회’라는 새로운 기구를 통하지 않고 기존의 조직으로도 얼마든지 조사를 할 권한 자체는 있습니다. 따라서 ‘진실과미래위원회’가 밝힌 과거 경영진의 비위사실이 허위라고 단정하기도 어렵습니다. 향후 민·형사소송에서 이 부분이 쟁점이 될 것입니다.
<기사> 한국방송공사(KBS) '진실과미래위원회' 운영 규정을 제정하면서 구성원들의 동의를 받지 않은 혐의로 기소된 양승동 전 사장의 벌금형이 확정됐다. 대법원 2부(주심 조재연 대법관)는 14일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를 받은 양 전 사장의 상고를 기각하고 300만원의 벌금형을 확정했다.양 전 사장은 2018년 KBS 정상화를 위해 만든 진실과미래위원회 운영 규정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구성원들의 동의를 충분히 구하지 않은 혐의를 받았다. 보수 성향의 KBS 공영노조는 사측이 직원에게 불리한 징계 사항을 해당 규정에 포함하고, 과거 보도를 조사해 보복성으로 징계했다며 고용노동부에 고발했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13505882?sid=102 <대법원 판례> [1] 취업규칙의 일부인 퇴직금 규정의 개정이 근로자들에게 유리한지 불리한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하여는 퇴직금 지급률의 변화와 함께 그와 대가관계나 연계성이 있는 기초임금의 변화도 고려하여 종합적으로 판단하여야 하지만, 그 판단의 기준 시점은 퇴직금 규정의 개정이 이루어진 시점이며, 그 종합 판단의 결과, 일부 근로자에게는 유리하고 일부 근로자에게는 불리하여 근로자 상호간에 유·불리에 따른 이익이 충돌되는 경우에는 전체적으로 보아 근로자에게 불리한 것으로 취급하여 종전의 급여규정의 적용을 받고 있던 근로자들의 집단적 의사결정 방법에 의한 동의를 필요로 한다. [2] 사용자가 근로자들에게 불리하게 취업규칙을 변경함에 있어서 근로자들의 집단적 의사결정 방법에 의한 동의를 얻지 아니하였다고 하더라도, 취업규칙의 작성, 변경권이 사용자에게 있는 이상 현행의 법규적 효력을 가진 취업규칙은 변경된 취업규칙이고 다만 기득이익이 침해되는 기존 근로자에 대하여는 종전의 취업규칙이 적용될 따름이다. [3] 취업규칙의 개정이 그 개정 당시에는 근로자들에게 불리하였어도 그 후의 사정 변경에 의하여 기존 근로자들의 기득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게 된 경우에는 그 개정에 대한 근로자들의 동의가 없었더라도 기존의 근로자들에게 적용될 취업규칙은 개정된 취업규칙이다. [4] 회사가 보수 규정에서 새로운 수당을 지급하도록 규정함과 동시에 퇴직금 규정을 개정하여 새로 지급되는 그 수당을 퇴직금 산정의 기초임금에서 제외시킨 경우에는 퇴직금 규정의 개정을 전후하여 퇴직금의 액수에 변동이 있는 것이 아니어서 기존의 근로자들의 기득의 권리나 이익을 박탈하는 것이 아니므로 그와 같은 개정은 근로자에게 불리한 개정이라고 할 수 없다. (대법원 1997. 8. 26. 선고 96다1726 판결) <근로기준법> 제94조(규칙의 작성, 변경 절차) ① 사용자는 취업규칙의 작성 또는 변경에 관하여 해당 사업 또는 사업장에 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있는 경우에는 그 노동조합, 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없는 경우에는 근로자의 과반수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다만,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는 경우에는 그 동의를 받아야 한다. ② 사용자는 제93조에 따라 취업규칙을 신고할 때에는 제1항의 의견을 적은 서면을 첨부하여야 한다. 제114조(벌칙)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1. 제6조, 제16조, 제17조, 제20조, 제21조, 제22조제2항, 제47조, 제53조제4항 단서, 제67조제1항ㆍ제3항, 제70조제3항, 제73조, 제74조제6항, 제77조, 제94조, 제95조, 제100조 및 제103조를 위반한 자 2. 제96조제2항에 따른 명령을 위반한 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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