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유게시판

<화랑과 충무>

728x90
반응형

화랑과 충무

 

위 말의 의미를 아는 사람은 틀림이 없이 아재인증입니다. 화랑과 충무는 1970년대 후반 이원화된 국가대표축구대표팀의 이름입니다. 1진이 화랑이고, 2진이 충무입니다. ‘백두산의 푸른 정기 이 땅을 수호하고로 시작하는 박정희 대통령의 나의 조국에 등장하기도 하는 바로 그 화랑에서 그 명칭이 유래했습니다. 역시 이순신 장군에 대한 각별한 숭상의식이 발현된 이름이 충무였습니다.

 

이름만 보고도 박정희 대통령의 축구사랑이 느껴질 수 있습니다. 이 화랑과 충무라는 국가대표축구팀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 대통령배국제축구대회, 일명 박스컵(Park's Cup)'축구대회입니다. 화랑과 충무는 박스컵만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지만, 박스컵대회에는 꼭 참석했습니다. 전두환 대통령의 축구사랑은 유명하지만, 그 원조는 당연히 박정희 대통령이었습니다. 혹자는 이 글이 축구 등 스포츠를 정치에 악용한 경우를 비난하는 의도로 썼다고 선입견을 가질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두 전직 대통령이 악용한 측면은 있습니다.

 

그러나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축구를 하지 않는 나라는 없고, 극빈국이 아닌 한 잔디구장이 없는 나라는 없습니다. 정치지도자가 축구 자체를 외면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독일에서는 도시계획을 할 때, 시청사 부지를 확보하고 그 다음에는 축구장 부지를 확보한다는 우스개소리가 있을 정도로 축구는 독일시민들의 일상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합니다. 그러나 손흥민 선수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영국사람들의 축구사랑도 엄청납니다. 스페인이나 이탈리아도 축구사랑이라면 둘째가 불쾌하다고 할 정도입니다. 축구야말로 만국공통의 언어입니다.

 

베트남의 영웅으로 등극한 박항서 감독이 바로 충무의 고정멤버였습니다. 반면에 허정무나 차범근 등은 화랑의 멤버였습니다. 삼국유사를 들먹이지 않아도 한국인의 DNA는 유희의 피가 화끈하게 흐르고 있습니다. 국가대표축구나 세계타이틀복싱, 그리고 올림픽 등의 주요 시합에서는 요즘 말하는 국뽕이 차고 넘쳤습니다. 홍수환의 신화가 타오르던 것은 바로 이 시기였습니다. 김일의 박치기로 온 국민이 웃고 울던 시기도 바로 이 시기였습니다. 양정모가 몬트리올에서 금메달을 따고 시청에서 카퍼레이드를 한 것도 바로 이 시기였습니다.

 

70년대는 고도성장기의 시기였지만, 아직 한국은 가난한 나라였습니다. 국제적 위상도 저개발국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국민들은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부족했습니다. 공중파방송국의 드라마와 신성일 등이 주연을 하는 영화, 그리고 스포츠가 볼거리와 즐길거리의 대다수였습니다. 해외여행은 꿈도 꾸기 어려운 시절이었습니다. 그리고 골프, 스키 등 레저스포츠도 먼 나라의 이야기였습니다.

 

요즘에는 올림픽의 금메달을 누가 땄는지 시민들은 관심이 거의 없습니다. 자기 아파트값이 얼마나 올랐는지, 어느 부동산이 유망하지에 관심이 집중됩니다. 물론 어느 주식이 오를까 하는 관심도 무시하지 못합니다. 과거처럼 스포츠에서 국민들이 희열을 느끼지 못합니다. 예전에는 승패에 목을 맸는데, 이제는 그 정도는 아닙니다. 금메달을 따지 못한 선수에게도 격려가 뜨겁습니다. 과거에는 상상도 못한 골프채널은 소리없이 꾸준한 시청자들을 확보합니다. 스포츠를 바라보는 시각이 많이 변했습니다.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