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살다보면 유명인의 생각이 본인과 유사하거나 일치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시인 겸 소설가로 명성이 높은 장정일이, 2004년 보수정당인 한나라당의 공천심사위원으로 동향의 선배 소설가 이문열이 맡게 되자, 일상에서 거의 쓰지 않는 ‘강담사(講談師)’라는 말을 동원하여 맹비난했던 경우가 바로 그런 경우였습니다. 고전에 해박한 이문열이라면 동양에서 정치의 근간이란 ‘함포고복(含哺鼓腹)’임을 모를 리가 없는데, 백면서생에 불과한 이문열이 민생정책이나 지속적 성장, 그리고 성장동력의 창출을 위한 신산업육성 등 당시 한나라당이 주창했던 정책과는 전혀 무관한 사람이 왜 공천을 심사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소설가’로는 최고지만, ‘정책’으로는 문외한인 이문열입니다. 그냥 보수가 모토인 유명 소설가라는 타이틀로 벼슬자리를 거저 먹은 것이라는 장정일의 지적이 맞습니다.
장정일은 이때 ‘문학권력’이라는 신조어를 내세웠습니다. 문학의 양대 장르가 소설과 시인데, 소설은 본질적으로 거짓말(황석영)이며 시는 상상(poet는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이라는 관용적인 비유)입니다. 문학은 인문학의 근간이고 문화인프라의 초석이기는 하지만, 직접적으로 제조업체의 생산성을 높이거나 GDP의 수치를 높이는 기능을 하지는 못합니다. 뛰어난 문인은 재주가 우월한 사람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개인 차원의 영역이고 공동체의 부를 증진하거나 생산의 효율성을 높이지는 못합니다. 문학의 기능, 그리고 문인의 역량이 과대포장되었다는 장정일의 지적은 오랜 기간 소설에 중독되었던 제가 품었던 생각과 거의 일치했습니다.
‘햄버거에 대한 명상’이라는 세련되고 감각적인 장정일의 시를 접하면서 생겼던 그에 대한 호감지수가 새롭게 폭발했던 순간이었습니다. ‘뉴밀레니엄’이라 불렸던 2000년을 전후하여 장정일은 문학계를 맹폭했습니다. ‘내게 거짓말을 해봐’, ‘아담이 눈뜰 때’ 등 일련의 소설이 대중의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고, 그 인기에 힘입어 영화화까지 되었습니다. ‘세기말’이라는 신조어와 더불어 난무했던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알듯말듯한 정체불명의 언어와 상승작용을 하여 장정일은 일약 문화아이콘으로 등극했습니다. 그러나 승승장구하던 장정일의 기세는 음란성이라는 법률의 잣대에 의하여 좌절이 되었습니다. 문학작품을 음란성이라는 법률의 잣대로 검증하는 것이 무리라는 논쟁을 낳은 ‘내게 거짓말을 해봐’로 그는 결국 영어의 몸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인생은 아이러니를 품고 있으며, 반전이라는 카드도 숨어 있습니다. ‘문학권력’을 강력하게 비판한 장정일이었지만, 역설적으로 그는 구속을 전후하여 저절로 ‘문학권력’이 되었습니다. 중졸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침전된 독서량이 묻어나는 그의 고급진 어휘에서 풍기는 체화된 지식의 나열은 타고난 그의 언어감각을 더욱 부각시켰습니다. 그리고 ‘이문열 시대’를 넘어 ‘장정일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가 생겼습니다. 다작을 하면서도 정제된 퀄리티가 유지되는 장정일의 괴력은 그를 문학계의 블루칩으로 만들어줬습니다. 기성세대의 집필방법을 탈피하는 독특한 글쓰기로 그는 문학계의 새로운 아젠다로 등극했습니다.
그러나 괴물과 싸우는 자는 괴물이 된다는 니체의 뼈아픈 지적처럼, 그는 새로운 실험정신을 포기하고 작가들이 돈벌이로 그렇게나 갈구한다는 ‘삼국지’를 집필하게 되면서 그의 왕성한 창작정신은 쇠퇴하였습니다. 문학권력의 대명사로 이문열을 지목하면서도 이문열의 상업주의가 극성인 ‘삼국지’를 따라 ‘삼국지’를 집필하는 아이러니를 썼습니다. ‘삼국지’의 집필은 돈과 작가정신을 맞바꾸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삼국지’는 대충 원작자인 나관중을 팔면서 기성의 ‘삼국지’를 적당히 짜깁기를 하더라도 표절시비가 없으며, 작가의 이름에 따라 인세가 보장되는 효자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더하여 ‘독서일기’를 통하여 헝그리정신으로 무장한 실험작가가 아닌 편안한 평론가로 변신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장정일의 멋은 도발적인 문체와 감각적인 언어가 빛나는 필치로 이루어진 소설입니다. 굴곡진 그의 인생이 소설의 진정성과 깊이를 느끼게 했는데, 그의 오랜 침잠이 무척이나 아쉽습니다. 장정일의 침잠과 맞물리면서 우리 문학계는 오랜 수렁에 빠졌습니다. 특히나 스마트폰의 대중화로 이제 문학은 장롱에 갇힌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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