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겸 제작자로 유명한 명계남은 광고회사 출신이라는 이색경력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는 스스로를 ‘광고쟁이’ 출신이라고 말을 하곤 합니다. 그는 광고회사에서 근무할 때 <조선일보>의 힘을 체감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되도록 무리해서라도 <조선일보>에 광고를 게재하려고 노력했다고 술회합니다. 명계남이 말한 ‘무리’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타공인 ‘1등 신문’ <조선일보>에 1980년대 초반에 광고국 직원으로 입사한 어느 올드보이는 ‘무리’는 물론 광고시장 변화의 추이를 구체화합니다.
- 내가 입사했던 8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급행료’라는 것이 있었지. 그 시절은 <조선일보>가 절대강자이던 시절이야. 지면광고란이 몇 달전부터 만땅이었지. 그래서 광고게재일을 앞당기려고 기를 쓰고 ‘급행료’를 내곤 했지. 근데 요즘에는 천하의 <조선일보>도 ‘마감떨이’를 하더라고. ‘마감떨이’가 뭐냐고? 광고게재 마감시간에 빈 광고란을 채우려고 광고주에게 전화해서 할인해 주는 거야. <조선일보>가 이런 능욕도 당하는 세상이야!
업계에 30년 이상 종사했던 사람의 말인지라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이렇게 <조선일보>로 상징이 되는 종이신문의 추락과 종편, 케이블tv, 유튜브, 틱톡, 그리고 인터넷의 활성화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습니다. <조선일보>가 극강의 위력을 발휘하던 시대는 아날로그의 시대였습니다. 입시생들은 <조선일보>의 사설과 칼럼을 열독했고, 베껴쓰기까지 했습니다. 주옥같은 명문이 넘쳤던 칼럼들인지라 칼럼니스트 쟁탈전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조선일보>에 실린 어느 칼럼 때문에 고 노태우 전 대통령은 비서관을 휴일에 ‘집합’시키기도 했습니다. 이렇게나 종이신문의 위력이 막강했던 시절과 칼럼니스트가 괴력을 발휘한 시대는 정확히 일치했습니다.
세월이 무심하게 흘렀습니다. 아마도 지금 조잡한 제 글을 읽는 분들 중에서 <조선일보>의 1면 기사의 제목이나 광고를 기억하는 분들이 거의 없을 것입니다. <조선일보>는 이제 ‘원탑(one top)’의 자리에서 ‘그중의 하나(one of them)’로 네이버에서 읽는 신문으로 격하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칼럼도 거의 읽지 않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내용 자체도 노땅스럽지만, 고사의 장황한 인용이나 현학적인 지식을 나열한 뒤 비로소 쓰고 싶은 이야기를 전하는 구태의연한 칼럼의 전개방식에 2030세대들은 눈을 돌리는 시대입니다. 실은 틱톡과 유튜브 쇼츠에 익숙한 이들이 칼럼에 맛을 들이는 것 자체가 이례적입니다.
S급 칼럼니스트 중에서 송호근 교수가 있습니다. 개인적인 감상이겠지만, 저는 ‘송호근 칼럼’을 볼 때마다 송호근 교수를 달리 생각합니다. 사회과학을 전공한 교수가 이렇게나 작가나 시인의 기를 확 죽이는 유려한 필치와 감성이 녹아든 명문을 적어내도 되는가, 하는 감상이 절로 튀어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102030세대들 중에서 송호근 칼럼에 열광하는 친구들의 거의 없습니다. 송호근 칼럼에 열광하는 이들은 ‘노땅세대’가 대부분입니다. 그처럼 대단한 송호근 칼럼은 102030세대들에게는 거의 소구력이 없습니다. 대신 102030세대들이 열광하는 것은 ‘세줄 요약’입니다.
그들은 간단하고 명료한 의사전달에 익숙한 세대들이기 때문입니다. 틱톡, 인스타그램, 그리고 유튜브쇼츠로 세상을 이해하는 세대들이기에, 아날로그 감성이 묻어나는 칼럼은 그 자체가 ‘짜증유발자’입니다. 혹자는 문해력, 난독증, 독서량 부족 등을 들면서 이들을 나무랄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도 각종 커뮤니티에서 자조적인 내용이 넘쳐납니다. 그러나 말입니다! 디지털시대가 되고 AI시대가 본격화하는 마당에 아날로그 감성이 충만한 칼럼읽기를 강요하기는 어렵습니다. ‘세줄 요약’은 이런 시대를 맞아 그들이 나름 선택한 세상살이의 하나입니다. 그리고 넘쳐나는 정보의 홍수시대의 방어기제이기도 합니다. 마냥 비난하는 것은 의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송호근 칼럼으로 대표되는 지성인의 아날로그 감성은 비록 메이저에서 마이너로 강등이 되었어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믿는 것은 인간의 감성회로 자체는 아날로그라는 근원적 한계 때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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