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코 <기사>를 보다가 서울대 앞 녹두거리와 대학동(구 신림동)의 자영업자에 대한 내용이기에 끝까지 눌러참고 봤습니다. 무척이나 낯이 익은 곳이기에, 댓글도 마저 봤습니다. 딱 6개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댓글은 전체 구독자의 생각을 대변할 수 있을 정도로 대표성이 있습니다. 댓글을 통한 자영업의 위기에 대한 시민의 생각을 알아봅니다.
1. 별로 공감이 안되는 기획 기사입니다. 80년대 ‘몰래영업’하며 월 순수익이 1000만원을 벌었으면, 웬만한 그당시 의사 변호사를 능가하는 순수익입니다. 잘 벌릴때 돈 관리 안하다가 지금 와서 투덜대면 뭐하나요? 제대로 관리만 했으면 건물 몇 채도 가지고 있을 수 있었을텐데요. 그리고 아직까지 우리나라엔 이분과는 달리 제대로 돈 한번 벌어보지 못하고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는 분들이 정말 많습니다. 특히 지금 청년세대는 훨씬 암울하죠.
→저도 휘가로에서 가끔 생맥주를 마셨습니다. 당시 서울대생들 사이에서 녹두거리 상점의 사장님들은 원룸, 하숙집 등을 병행하면서 빌딩을 사고 고시원을 사들이면서 거액을 번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위수지역의 상인과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과거 대학가 상권은 황금상권이었으며, 지방이라고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대다수의 시민은 80년대는 물론 90년대에도 월수 1,000만원은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금주 분위기, 저출산고령화, 고시생의 급감 등 다양한 원인이 자영업자의 위기를 초래했습니다. 최저시급이 올라도 구인난에 시달리는 맛집 등이 있는 것을 보면, 자영업자의 위기가 전적으로 최저임금이 원인은 아닌 듯합니다.
2. 함부로 댓글다는 사람들도 본인이나 자식이 자영업자 되어보면 저 입장 알게 된다. 노동자만 보호하고 자영업자는 보호받지 못하면 안된다.
→헌법에 중소기업보호정책이 존재하며, 중소기업청이 독립외청으로 승격이 되었다가 이제는 중소기업벤처부라는 독립 정부부처가 되었으며, 수장은 국무위원입니다. 정부의 교체와 무관하게 중소기업정책은 일관되게 유지되고 있습니다. 다만, 근로자 보호는 형벌을 통한 강력한 것임에 반하여, 사업주 보호는 각종 정책자금, 세제 및 금융지원에 치우쳐 있을 뿐입니다. 세계 각국에서도 사업주에 대한 형벌은 존재해도 근로자에 대한 직접적인 형벌의 부과는 거의 없습니다. 보호방법이 다르다고 자영업자를 외면하는 것은 아닙니다.
3. 알바편이라고 느낄 께 아니라, 세상이 바뀌고 있는데 그걸 남탓만 하면 될까.. 알바 쓰고도 돈 벌수 있는 구조로 만들던가 아니면 알바 안 쓰고 할 방법을 찾거나.
→알바를 쓰지 않는 1인 매장이나 무인매장이 지속적으로 증가합니다. 그리고 가족매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최저임금의 인상은 자영업자에게 금전적 부담이 되기에, 사업주도 생존을 모색합니다.
4. 말은 바로 하셔야죠 "코로나" 때문이 아니고 감염 예방에 아무 의미도 없었던 "거리두기"와 "백신 강제 접종" 때문이었다고
→코로나19가 문제였다면, 지금은 개선이 되어야 정상입니다. 전 세계에 불황의 파고가 밀려오는 것은 코로나19로 인하여 각국이 경쟁적으로 통화량을 폭발시킨 후유증입니다. 엄청나게 풀린 돈이 물가상승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5. 뒷주머니에 100만원 꽂고 다니고 한달1000만원 우습게 벌었는데 지금은 최저시급 수준이라고? 그렇게 감없이 대개딸 했던겨?
→그 시절은 고객이 많았고, 부어라 마셔라, 하는 분위기에 술집 등 자영업자의 매상이 오른 것입니다. 대학생과 고시생, 그리고 직장인이 우글거리면서 돈을 모은 것입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시장의 상황이 급변한 까닭에 불황이 찾아온 것입니다.
6. 쉴 수 있게 해주신 문죄인씨에게 감사하시오.
→이런 정치병자는 어느 댓글에나 있습니다. 문재인이 아닌 윤석열 시대라고 하여 저출산과 고령화에 따른 수요자의 급감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자칭 보수의 성지인 대구에서도 자영업이 호황은 아닙니다. 호황이나 불황은 대통령이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대통령탓만 해서는 본인의 무지를 드러내는 것에 불과합니다.
<기사> 1987년 문을 연 녹두거리 터줏대감 휘가로 김태수(62)씨는 “수익이 최저 임금 수준”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세태의 변화로 대학생 단체 모임이 점점 줄어들더니 올해는 개업 후 처음으로 9월 2학기 개강 모임이 잡히지 않았다. 1980~90년대 심야 영업금지 시절 몰래 영업하면서 월수 1000만원을 쉽게 찍던 때가 꿈인 듯 아련하다. 당시 자정 이후에도 술을 먹을 수 있는 곳으로 일반 호프는 방배동, 막걸리나 소주는 녹두거리, 가라오케는 화곡동이 정평이 나 있었다. 녹두거리에는 자정이 넘으면 외부인들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뜯기기도 많이 뜯겼지. 파출소에 돈을 안 주면 의경이 가게 앞에 진을 치고 있었어. 그래도 한 달에 1000만원은 쉽게 벌었지. 뒷주머니에 늘 현금으로 100만원 정도는 꽂고 다녔어. " 물론 그게 공짜는 아니었다. 그는 365일 동안 연중무휴로 열심히 살았다. 명절에도 쉬지 않았고, 부모님 돌아가셨을 때 5일씩 딱 두 번만 쉬었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5/0003387665?sid=1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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