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변하기 마련입니다. 1984년 ‘백구의 대제전’이라 불렸던 대통령배 남녀배구대회가 출범하였을 시절에는 여자배구는 약간 과장하자면 ‘구색 맞추기’정도로 인기가 취약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배구의 꽃은 강력한 스파이크입니다. 그러나 당시 여자배구에서는 오픈 스파이크가 약했고, 백어택도 없었습니다. 스파이크서브 역시 찾기 어려웠습니다. 이은경 선수가 후일 백어택을 최초로 시도할 정도로 공격이 약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장신의 여자배구 선수가 드문 시절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초창기부터 장윤창, 강두태, 이종경, 이상렬 등 강력한 스파이크를 자랑하는 남자선수들이 주목을 받았습니다. 당시 여자배구선수들에게는 정말로 미안한 말이지만, 그냥 남자배구선수들의 인기에 묻어가는 그냥 그런 수준이었습니다. 실제로 당시 기사를 검색해 봐도 남자 위주로 작성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당시에 활약했던 여자배구선수들의 이름도 가물거립니다.
그런데 당시 여자배구선수들 중에서 아직까지 또렷하게 기억나는 인물이 있으니, 바로 유애자입니다. 당시는 전두환 정부의 그 유명한 3S정책이 융성하던 시기였습니다. 씨름, 야구, 축구, 배구, 농구 등 프로 및 세미프로리그가 뜨거워지던 시절이었습니다. ‘백구의 대제전’이 출범하기 전 실업배구경기는 언제나 관중석이 텅 비었습니다. 전두환 정부는 비인기 종목인 배구를 활성화하려고 ‘백구의 대제전’의 출범 당시에 무료로 관중을 끌어모았습니다. 거기에 더하여 냉장고, TV 등의 경품까지 더했습니다.
유애자를 알게 된 계기는 1984년 ‘백구의 대제전’ 출범당시였습니다. 배구를 보러 가면 경품도 주는데 입장료도 없다는 소문을 듣고 별 생각이 없이 대전 충무체육관으로 갔습니다. 당시에는 여자부 먼저 하고, 남자부는 나중에 했습니다. 여자부는 솔직히 ‘깔짝거리는’ 경기탓에 별 볼 생각이 없었는데, 가다보니 여자부 경기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선수이기에 여자배구선수들이 성인남자보다 큰 선수도 제법 있었고, 실제로는 스파이크가 제법 강력했습니다.
당시 경기를 지배한 것은 다름이 아닌 유애자였습니다. 한일합섬 유니폼을 입은 유애자는 늘씬한 키에 훤한 얼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키가 큰 선수가 인물도 출중하기에, 유애자는 저절로 눈길을 끌었습니다. 당시 충무체육관은 본부석을 중심으로 타원형의 관중석이 있었는데, 저는 본부석의 옆좌석 쪽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요즘과 같이 술에 대하여 엄격하지는 않았습니다. 옆좌석에 술이 불콰한 동네 아재들이 우르르 모여서 소주와 오징어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 애자야! 시집가야재!
- 애자야! 올해만 하고 나한테 시집와라!
- 유애자 파이팅!
분명히 배구는 단체경기임에도 알딸딸하게 취한 아재들은 유애자만을 목놓아 부르고 있었습니다. 아마 유애자가 이 글을 일게 된다면 당시 아재들이 술 마시고 자신을 엉뚱하게(!) 응원했던 기억을 되살리면서 박장대소를 할 듯 합니다. 실제로도 아재들의 극성응원은 지치지도 않았습니다. 중간중간에 전경들이 말렸지만 막무가내였습니다. 당시에는 전경들이 프로야구, 프로축구의 경비를 섰습니다.
아무튼 아재들은 경기의 진행과 무관하게 유애자 노래(?)만을 불렀습니다. 그러다가 얼굴이 불그레했던 그 무리들의 하나가 벌떡 일어나더니,
- 애자야! 싸랑한다. 당장 결혼하자!
하면서 큰소리를 질렀습니다. 그 목소리가 너무 커서 주위의 사람들이 경기를 보다가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습니다. 그랬습니다. 여자는 이쁘면 무조건 남자의 시선을 받게 됩니다. 그것이 남자라는 동물의 본능입니다. 남자배구의 인기에 가려서 여자배구 자체가 인기는 그럭저럭이었어도 유애자의 인기는 뜨거웠습니다. 아마 유애자 본인이 이 글을 본다면, ‘라떼는 말이야. 내가 한미모 했거든!’하면서 뿌듯해 할 것입니다. 실제로도 유애자의 미모는 월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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