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사에 있어서 1980년대는 그야말로 격동의 시대였다. 그러나 동시에 나이키를 필두로 한 스포츠브랜드의 혁명기이기도 했다. 지금은 올드보이 정도만 기억을 하겠지만, ‘새벽에 솟는 힘 다이나믹’이라는 cm으로 유명했던 제일합섬이 만든 ‘다이나믹’이라는 트레이닝복(일명 ‘츄리닝’)이나 ‘힘과 미의 스포츠 엑셀’이라는 구호의 ‘엑셀 스포츠’ 외에 변변한 국내 스포츠브랜드가 없었던 시기에 ‘나이키’가 혜성같이 국내에 등장하였다. 코오롱의 ‘헤드’라는 스포츠브랜드가 있기는 했지만, 그리 대중적이지는 않았다.
운동선수들은 당시에도 미즈노나 아식스, 그리고 아디다스 등 전문 스포츠브랜드용품을 쓰기는 했다. 그러나 생활스포츠라는 개념으로 등장한 나이키가 일상복, 일상신발 등의 영역에 등장하면서 스포츠브랜드가 국민들에게 확실히 자리잡는 계기가 되었다. 그 이전까지는 전문 스포츠브랜드용품은 전적으로 운동선수만 착용하였기 때문이다. 나이키를 필두로 ‘자랑스러운 한국인의 상표 프로스펙스’라는 구호로 프로스펙스가 등장하여 나름 나이키에 대적(!)을 하였다.
그러나 자랑스러운 한국인의 상표라고 광고는 했지만, 당시에도 외국인 운동선수가 프로스펙스를 착용하는 것을 본 기억이 거의 없다. 실은 프로스펙스는 국내용 스포츠브랜드라는 것이 당시의 냉정한 현실이었다. 그럼에도 국뽕의 위력인지 프로스펙스는 나름 나이키에 비비기는 했다. 당시에 프로스펙스나 나이키의 로고가 달린 신발을 신으면 부러움을 받을 정도로 이들의 인기는 엄청 뜨거웠다.
그러나 나름 반골기질이 있는 나는 이상하게 아식스가 끌렸다. 나이키가 갑이고 프로스펙스가 추격하는 그런 상황, 즉 양강구도가 나에게는 이상하게 매력적이지 않았다. 튀어보려는 욕구가 작용한 것은 아니지만, 묘하게도 아식스가 끌렸다. 일본제라는 원천적 거부감이 있기는 했지만, 푹신한 아식스 특유의 신발 밑창의 마력이 아식스에게 눈길을 돌리는 이유를 제공했다. 물론 당시에도 동양인의 넓은 발볼을 고려한 설계가 유용하다는 입소문이 널리 퍼졌다. 그러나 내가 아식스에 끌린 것은 왜 나이키 아니면 프로스펙스여야만 하는가 하는 반발감도 적지 않았다.
당시에도 이미 나이키가 대세였지만, 21세기에 와서 나이키는 아식스를 저 멀리에서 존재하고 있다. 요즘말로 넘사벽 수준이다. 미국을 석권하면 세계를 석권하기 마련인데, 미국에서 짱을 먹는 나이키는 라이벌 아디다스도 멀찌감치 떨어뜨렸다. 사실상 원탑의 자리라고 봐도 무방하다. 안그래도 아식스는 나이키에 훨씬 뒤쳐졌던 상황이었는데, 일본의 수출규제로 한국인의 미움을 더욱 받아서 존재감이 더욱 떨어졌다. 손흥민이 뛰는 프리미어리그에서 아식스 축구화는 찾기가 어렵다. K리그에서도 마찬가지다. 배구화 아니면 거의 존재감도 없다. 아식스 관계자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디자인도 나이키에 비하면 무척이나 조잡한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식스를 굳세게 신고 있다. 발볼이 넓은 동양인에 나름 특화한 설계, 젤이라는 밑창의 묘한 매력 등도 무시할 수 없지만, 이제는 나이키에 비하여 떨어진 위상만큼 가격도 떨어졌다는 점은 무엇보다도 큰 매력이다. 유사한 기능을 담은 운동화라도 아식스가 나이키에 비하여 1.5배 정도는 싸다. 최저가격을 기준으로 비교해 봐도 나이키가 훨씬 비싸다. 나이키의 나라 미국에서는 나이키를 생산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미국 브랜드라는 프리미엄까지 더하여 원탑브랜드 파워로 고가라인을 석권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나이키의 고가정책이 소비자에게 거만하다는 소심한 반발감을 갖고 있다.
지하철을 타면 승객들이 신고 있는 운동화의 대략 4~50%는 나이키다. 이미 나이키는 한국을 점령했다. 나도 나이키를 신어봤다. 기능이나 디자인은 확실히 월등하다. 그러나 내구성은 조악했다. 솔직히 아식스에 비하여 기능이 월등하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나이키가 애플의 아이폰처럼 브랜드빨로 고가정책을 고수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아식스를 좋아한다. 과거에 국내 한정으로 나이키에 도전했던 프로스펙스는 이제는 마이너 브랜드로 추락했다. 아식스에 더하여 프로스펙스도 추가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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