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야 그냥 웃어버릴 만한 규제이겠지만, 박정희 정부 시절에는 ‘국산품 애용’, ‘외래어 사용규제’와 같은 이상한 규제가 있었다. 그래서 양담배나 양주는 유통에 제한이 있었고, ‘바니걸스’는 ‘토끼소녀’라 불러야 했다. 물론 장발금지나 미니스커트금지와 같이 이상한 규제도 있었다. 그래서 박정희 정부 시절에만 반짝 쓰인 ‘간이복’이라는 것이 있었다. 물론 지금은 사어가 된 말이지만, 캐쥬얼웨어라는 의미로 당시에 쓰인 말이다.
1980년에 나는 5학년 이었다. 1980년은 한국현대사의 격동기이기도 했지만, 나에게는 사춘기라는 것을 느꼈던 시기였다. 우리 반의 반장은 얼굴도 예쁘고 옷도 잘 입었던 여학생이었다. 그 반장 여학생이 입었던 베이지색 점퍼를 잊지 못한다. 대부분의 남학생들이 입었던 칙칙하던 점퍼와는 달리 디자인이 산뜻했다. 그 점퍼의 가슴에 새겨진 요트 모양의 로고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나중에서야 그 점퍼가 삼성물산이 만든 ‘위크엔드’라는 것을 알았다.
오! 즐거운 위크엔드~ 위크엔드!
당시의 위크엔드cm송을 기억하는 분은 이 리듬을 기억하리라. 워낙에 수려한 인물이기에 옷걸이도 좋았던 반장이 입던 위크엔드 점퍼가 근 40년이 지난 아직도 선명하다. 그리고 반장은 위크엔드 청바지도 입었는데, 당시의 ‘시장표’ 청바지와는 옷의 때깔이 달랐다. 나중에 TV를 보다가 위크엔드CM 속에서 문제의 요크로고를 확인하고는 반장이 입었던 옷이 위크엔드임을 알았다.
당시에 위크엔드 의류는 요즘 말하는 금수저 아이들이 주로 입었다. 확실히 당시에도 옷의 맵시가 월등했다. 7~80년대 대다수의 가정에서는 당시에도 무척이나 고가였던 위크엔드 의류는 부담이 되었다. 어린 마음에도 cm 속의 영상처럼 비싼 위크엔드 의류를 입고 똇목을 타거나 장작을 패고 모닥불을 쬐는 것은 영 어색했다. 그러나 당시cm은 위크엔드 브랜드의 간이복을 입고 주말을 즐겨라는 메시지를 내보냈다.
전두환 정부의 교복자율화 이후 패션브랜드는 날개를 달았다. 예전과 같이 부자집 아이들이 아니라도 중산층 이상의 아이들은 삼성물산의 의류사업부인 ss패션이 만든 ‘챌린저’나 ‘빼빼로네’, 그리고 ‘불란서 칼라진’이라는 cm송이 인상적이었던 ‘뉴망’을 입고 다녔다. 없는 살림에도 엄마는 나를 위하여 ‘챌린저’ 옷을 사주셨다. 그리 잘 어울리지 않아도 알 수 없는 그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아무튼 ‘위크엔드’는 80년대 중반에 ‘위크엔드 스포츠’로 확장을 한다. 삼성라이온즈 선수들은 위크엔드 유니폼과 신발, 그리고 팔목 보호대를 착용했다. 무엇보다도 이미키의 ‘이상의 날개’를 배경음악으로 쓴 위크엔드 스포츠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당시에도 나이키가 대세였지만, 나름 위크엔드도 스포츠패션으로 먹어줬다.
초등학교 상급학년부터 사춘기를 함께 한 브랜드였기에, 그리고 은근히 흠모했던 여학생 반장이 입었던 브랜드였기에, 50이 넘은 이 나이에도 위크엔드가 마냥 그립기만 하다. 사람은 나이를 먹으면 철이 들어야 하는데, 나는 철이 안드는 어른인가 보다.
'자유게시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간 하이타이’ 서태지> (1) | 2020.10.17 |
---|---|
<고용보험 지원사업과 일자리의 창출> (0) | 2020.10.13 |
<박종팔 애증사> (0) | 2020.10.09 |
<아식스에 대한 애증> (0) | 2020.10.09 |
<김종인과 노동법의 개정가능성> (0) | 2020.10.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