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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인간 하이타이’ 서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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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연휴에 ‘테스 형’ 나훈아가 전국을 강타했다. 조용필과 더불어 국내 가수의 정상으로 자리매김한 나훈아의 위력이 시청률에 그대로 반영됐다. 15년 만의 방송출연에도 불구하고 나훈아를 보려는 사람들의 열화같은 성원에 재방송까지 긴급편성이 되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슬며시 나훈아와 같은 신비전략(!)을 쓰는 서태지가 궁금했다,

나훈아는 추석연휴의 방송 이전에도 ‘노래방의 황제’였다. 전 국민의 애창가요 중에서 단연 나훈아가 원탑이었다. 그리고 방송횟수에서도 꾸준히 정상권이었다. 빌보드차트는 방송횟수와 음반판매량을 순위집계에 참조한다. 인기의 척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노래방애창순위도 중요하다. 전 국민과 소통하는 기준이자, 선호도의 살아있는 기준이기 때문이다.

이에 반하여 90년대 ‘10대들의 대통령’으로까지 불렸던 서태지는 조용해도 너무나 조용하다. 과거의 인기에 비하여 거의 잊혀진 수준으로 서태지는 전 국민에게 외면을 받고 있다. 나훈아보다 20년 후에 데뷔한 서태지의 추락(?)의 이유는 무엇일까? 

그 첫째 이유는 서태지 본인에게서 찾을 수 있다. 서태지는 뮤지션으로는 정상급이지만, 가수로는 정상급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작곡, 편곡, 연주에 이르기까지 서태지는 정상급의 능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서태지는 나훈아만큼의 노래실력은 없다. 락을 한다면서도 고음에 취약하고 음색의 다이나믹함이 없다. 노래에서 감정이 실려서 듣는 이에게 호소하는 능력도 부족하다. 기본적으로 서태지는 미성인데, 락을 추구하는 것은 맞지 않는 옷을 걸치는 것으로 봐야 한다.

둘째는 노래라는 본질적인 속성에 있다. 굳이 삼국유사를 들먹이지 않아도 한국인은 흥이 넘치는 민족이다. 음주가무가 한국인의 DNA에 뿌리박혀있다. 그 말은 한국인이 선호하는 노래란 한국인이 평상시에 부르거나 최소 흥얼거릴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 흥얼거림이 노래방에서 신명이라는 것으로 표출이 된다. 

가요라는 것의 속성은 실은 일종의 피드백작용이다. 가수가 열과 성을 다해서 전 국민에게 input을 하면, 팬들은 반복하여 노래를 듣고 즐기다가 노래방과 모임에서 그 노래를 output을 한다. 팬들은 노래를 부르면서 가수로 분하여 노래 속의 화자가 되어 슬픔과 기쁨, 그리고 사랑과 열정을 뿜어내는 일종의 모노드라마인 것이다. 당연히 가수는 자연스럽게 팬들의 가슴 속에 용해가 되는 것이다.

서태지가 불렀던 노래는 랩이 주종이다. 열성팬이 아니고서는 랩의 가사를 정확하게 암기하기 어렵다. 실은 따라부르기도 어렵다. 일반적으로 트로트곡은 생명력이 길다. 가장 큰 이유는 가사를 따라 부르기 쉽고, 그 가사를 암기하여 사후에 재생하기 쉽다는 점에 있다. 트로트곡이 크게 뜨면 가수는 ‘평생연금’을 챙긴다고 할 정도로 트로트곡은 친화도가 엄청나다. 그러나 서태지의 곡들은 반짝하는 인기는 불꽃이 튈 수 있어도 구들장의 열기처럼 오래가기는 어렵다. 

셋째로 꼽을 것은 서태지의 표절시비와 이것을 둘러싼 서태지의 태도다. 보는 이들의 시각에 따라 표절이다, 아니라는 논쟁이 격렬했지만, 서태지의 곡들은 완벽한 창작은 아니라는 점에는 아무런 이론이 없다. 듣는 사람에 따라서 표절로 보는 시각이 분명하게 존재함에도, ‘영향’, ‘레퍼런스’ 등의 구차한 서태지나 그 옹호자의 변명이 서태지안티를 키웠다. 동료가 작곡한 ‘청춘시대’의 표절이 있기는 했지만, 조용필의 자작곡은 대부분 표절시비 자체가 없다. 그리고 나훈아도 마찬가지다. 표절시비 자체가 반감을 크게 키운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노래란 정서적인 감흥으로 듣는 것이기에, 그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 즉 자기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무관심층이나 혐오층에게도 배려를 해야 지지층으로 변할 가능성이 있음에도 서태지는 국민정서에 반하는 변명을 해왔다. 서태지 히트곡의 대다수가 표절과 창작의 경계선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무척이나 슬픈 일이다. 당연히 반감을 키울 수밖에 없다. 원곡은 국내에서 거의 알려지지 않은 곡임에도 화려한 히트곡으로 옷을 입히고 완성도를 높인 서태지의 작곡 및 편곡, 그리고 눈이 부신 연주로 재탄생하게 만드는 능력은 서태지의 탁월한 역량이다. 서태지는 좀더 솔직했으면 더 많은 팬들을 만들었을 것이라는 안타까움이 있다.   

서태지는 한 시대를 대표하는 가수이자, 문화아이콘이었다. 서태지가 한국가요계의 질적 성장에 큰 계기를 만든 것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서태지가 너무 쉽게 잊혀지는 것은 대중문화 전체적으로도 큰 손해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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