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노동조합과 단체협약

<산재유족특별채용조항이 담긴 단체협약의 유효성>

728x90
반응형

 

내가 중국집에서 자장면을 주문했는데, 누군가 갑자기 짬뽕으로 바꾼다면 크게 화를 내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이런 법이 어딨냐?’라는 항변을 중국집 사장에게 할 것입니다. 여기에서의 법이란 국회에서 제정한 법률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정당성의 근거로 소박하게 자유의사를 결정하는 근거 내지 원천으로서 법을 의미합니다. 내 의사(자장면)가 아닌 타인의 의사(짬뽕)로 내 의사를 변경한다는 것은 이성에 따른 합리적 결정이 보장되는 자본주의 경제질서에도 반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타인의 의사가 언제나 자기에게 불리한 것은 아닙니다. 위의 예에서 자장면의 영혼의 라이벌 짬뽕 정도니까 화를 내는 것인데, 만약에 자장면보다 훨씬 고가인 유산슬이나 난자완스 정도(물론 변경하는 타인이 비용을 지불하는 상황을 전제로 합니다)라면 못이기는 척하고 그냥 식사를 할 수도 있습니다. 법률의 영역에서도 그런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개별 근로자가 체결한 계약보다 그 근로자가 속한 노동조합이 체결한 단체협약의 내용이 더 유리할 수 있습니다. 실은 개별 근로계약에 비하여 별반 차이가 없다면 아무도 노조비를 내고 노조를 하려고 안할 것입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동조합법) 33조 제1항은 단체협약에 정한 근로조건 기타 근로자의 대우에 관한 기준에 위반하는 취업규칙 또는 근로계약의 부분은 무효로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체협약의 내용이 개별 근로계약이나 취업규칙보다 유리한 경우를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노조를 만들었더니 개별 근로계약상의 권리보호장치를 무력화하였다면, 노동조합은 근로자에게 악마가 사는 복마전으로 비난받을 것입니다. 노동조합은 연혁적으로도 개별 근로자보다 유리한 근로조건을 도출하는 과정에서 합법화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래서 노동조합은 개별 노조원들에게 환심을 사려고 선거철만 되면 정치인 뺨치는 선거전이 횡행합니다.

 

노조가 강하면 강할수록 사용자는 노조에게 퍼줘야 하고 양보를 해야 합니다. 사용자는 끌려가고 기업은 노조의 해방구가 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의문이 발생합니다. 단체협약의 통제장치는 과연 없는 것일까? 고용노동부가 근로감독을 통하여 함부로 단체협약에 손을 댈 수는 없습니다. 직접 당사자가 아니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단체협약의 효력을 존중하여야 하는 부서이기 때문입니다. 법원이 이쯤에서 등장해야 합니다. 실제로도 대법원은 민법 제103, 즉 반사회질서의 법률행위는 무효라는 법리를 기초로 단체협약을 통제합니다. 물론 단체협약이 노동조합과 사용자의 협상의 결과이기 때문에 효력을 부정하는 것은 대단히 신중합니다.

 

최근에 MZ세대를 중심으로 노동조합의 행태에 대한 강한 비판의 기류가 존재하는데, 그러한 와중에 업무상 재해로 인한 사망 등 일정한 사유가 발생하는 경우 조합원의 직계가족 등을 채용하기로 하는 내용의 단체협약, 즉 업무상 재해로 인해 조합원이 사망한 경우에 직계가족 등 1인을 특별채용하도록 규정한 이른바 산재 유족 특별채용 조항이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하는지 판단하는 기준에 대한 대법원 판례가 국민의 시선을 끌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대법원은 반사회질서의 법률행위는 아니라고 봤습니다. 그리고 대법원의 결론대로 이 정도를 가지고 반사회질서라고 낙인을 찍는 것은 과도하다고 봅니다.

 

노동조합은 기본적으로 노조원들의 권익을 옹호하려고 존재하는 단체인데, 1인의 특별채용으로 신판 음서제라고 비난하는 것은 과도한 비판이 아닌가 합니다. 대기업의 채용의 허들이 그렇게 높은 것도 아니고, 고학력자만이 지원하는 것도 아닙니다. 노동조합의 힘이 강력한 대기업 생산직의 고임금과 복지가 이제 대졸학력자들이 부러워하는 수준에 이르렀기에 이러한 비판이 생겨났던 것으로 보입니다.

 

<민법>
103(반사회질서의 법률행위)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한 사항을 내용으로 하는 법률행위는 무효로 한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33(기준의 효력) 단체협약에 정한 근로조건 기타 근로자의 대우에 관한 기준에 위반하는 취업규칙 또는 근로계약의 부분은 무효로 한다.
근로계약에 규정되지 아니한 사항 또는 제1항의 규정에 의하여 무효로 된 부분은 단체협약에 정한 기준에 의한다.


<대법원 판례>
[1] [다수의견] 단체협약이 민법 제103의 적용대상에서 제외될 수는 없으므로 단체협약의 내용이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배된다면 그 법률적 효력은 배제되어야 한다. 다만 단체협약이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배되는지를 판단할 때에는 단체협약이 헌법이 직접 보장하는 기본권인 단체교섭권의 행사에 따른 것이자 헌법이 제도적으로 보장한 노사의 협약자치의 결과물이라는 점 및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 의해 이행이 특별히 강제되는 점 등을 고려하여 법원의 후견적 개입에 보다 신중할 필요가 있다.
헌법 제15가 정하는 직업선택의 자유헌법 제23조 제1이 정하는 재산권 등에 기초하여 사용자는 어떠한 근로자를 어떠한 기준과 방법에 의하여 채용할 것인지를 자유롭게 결정할 자유가 있다. 다만 사용자는 스스로 이러한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것이므로, 노동조합과 사이에 근로자 채용에 관하여 임의로 단체교섭을 진행하여 단체협약을 체결할 수 있고, 그 내용이 강행법규나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이상 단체협약으로서의 효력이 인정된다.
사용자가 노동조합과의 단체교섭에 따라 업무상 재해로 인한 사망 등 일정한 사유가 발생하는 경우 조합원의 직계가족 등을 채용하기로 하는 내용의 단체협약을 체결하였다면, 그와 같은 단체협약이 사용자의 채용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정도에 이르거나 채용 기회의 공정성을 현저히 해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 이러한 단체협약이 사용자의 채용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정도에 이르거나 채용 기회의 공정성을 현저히 해하는 결과를 초래하는지는 단체협약을 체결한 이유나 경위, 그와 같은 단체협약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과 수단의 적합성, 채용대상자가 갖추어야 할 요건의 유무와 내용, 사업장 내 동종 취업규칙 유무, 단체협약의 유지 기간과 준수 여부, 단체협약이 규정한 채용의 형태와 단체협약에 따라 채용되는 근로자의 수 등을 통해 알 수 있는 사용자의 일반 채용에 미치는 영향과 구직희망자들에 미치는 불이익 정도 등 여러 사정을 종합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대법관 이기택, 대법관 민유숙의 반대의견] 노사가 업무상 재해로 사망한 근로자의 가족을 보호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해 두는 것은 권장할 일이지만 그러한 대책은 실질적으로 공평하며 법질서에 맞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한 대책이 유족과 같은 입장에서 절실하게 직장을 구하는 구직희망자를 희생하거나, 사망 근로자 중 일부의 유족만 보호하고 다른 유족은 보호에서 제외하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기업의 필요성이나 업무능력과 무관한 채용기준을 채택하기로 노사가 합의하였고 그러한 기준이 기업의 규모와 근로자 수, 해당 기업의 일반적인 채용방식, 특정한 목적 달성을 위한 채용기준의 적합성, 관련 법령의 규정, 채용 기회의 공정에 대한 사회적 인식 등에 비추어 볼 때 해당 기업에 대한 구직희망자들이나 다른 조합원을 합리적 이유 없이 차별하는 것이어서 공정한 채용에 관한 정의관념과 법질서를 벗어난 경우에는 민법 제103가 정하는 사회질서에 위반되는 법률행위로 평가할 수 있다.
[2] 갑 주식회사 등이 노동조합과 체결한 각 단체협약에서 업무상 재해로 인해 조합원이 사망한 경우에 직계가족 등 1인을 특별채용하도록 규정한 이른바 산재 유족 특별채용 조항 민법 제103에 의하여 무효인지 문제 된 사안에서, 업무상 재해에 대해 어떤 내용이나 수준의 보상을 할 것인지의 문제는 그 자체로 중요한 근로조건에 해당하고, 갑 회사 등과 노동조합은 이해관계에 따라 산재 유족 특별채용 조항이 포함된 단체협약을 체결한 것으로 보이는 점, 산재 유족 특별채용 조항은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여 실질적 공정을 달성하는 데 기여한다고 평가할 수 있고, 보상과 보호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유효적절한 수단이라고 할 수 있는 점, 갑 회사 등이 산재 유족 특별채용 조항에 합의한 것은 채용의 자유를 적극적으로 행사한 결과인데, 법원이 이를 무효라고 선언한다면 갑 회사 등의 채용의 자유를 부당하게 제한하는 결과가 될 수 있는 점, 갑 회사 등의 사업장에서는 노사가 오랜 기간 산재 유족 특별채용 조항의 유효성은 물론이고 그 효용성에 대해서도 의견을 같이하여 이를 이행해 왔다고 보이므로 채용의 자유가 과도하게 제한된다고 평가하기 더욱 어려운 점, 산재 유족 특별채용 조항으로 인하여 갑 회사 등이 다른 근로자를 채용할 자유가 크게 제한된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구직희망자들의 현실적인 불이익이 크다고 볼 수도 없는 점, 협약자치의 관점에서도 산재 유족 특별채용 조항을 유효하게 보아야 함이 분명한 점을 종합하면, 산재 유족 특별채용 조항이 갑 회사 등의 채용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정도에 이르거나 채용 기회의 공정성을 현저히 해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고 볼 특별한 사정을 인정하기 어려우므로,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되어 무효라고 볼 수 없는데도, 이와 달리 본 원심판단에 법리오해의 잘못이 있다고 한 사례.
(대법원 2020. 8. 27. 선고 2016248998 전원합의체 판결)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