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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울림의 이 노래 :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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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그렇듯이 첫 번째라는 것은 돈 주고 살 수도 없는 명예입니다. 지금은 폐지되었지만, 1977년 제1회 대학가요제의 대상은 그룹사운드산울림나 어떡해입니다. 당시 방송 자막을 보면, ‘나 어떻해로 표기되어 있으나, 당시의 표기법으로도 나 어떡해가 맞다고 알고 있습니다. 아무튼 나 어떡해는 당시로서는 세계 팝음악에서 이미 한물 간 싸이키델릭 록곡이었지만, 당시도 지금도 한국에서 제대로 된 싸이키델릭 록은 전무한 상황입니다.

 

지금은 록그룹이나 그룹사운드라는 말 자체가 거의 쓰이지 않지만, 당시에는 대학가요제 등 각종 가요제에서 그룹사운드는 일정 부분을 차지하였습니다. 70년대 통기타의 바람과 더불어 록그룹이나 그룹사운드는 그 시대 젊은이들의 특권과도 같았습니다. 그룹사운드에서 가장 주목을 받는 것이 전자기타인데, 당시의 젊은이들은 기타리스트의 현란한 연주에 열광을 하였습니다.

 

지미 핸드릭스, 에릭 클랩튼, 마크 노플러, 리치 블랙모어 등 록그룹의 현란한 기타리스트 외에도 기타연주를 예술에서 마술의 경지까지 올린 잉베이 말름스틴 등 기타리스트를 넘어 선 기타아티스트의 연주실력을 두고 누가 우월한가를 두고 팬들이 격한 언쟁까지 벌일 지경이었습니다. 그 시대에 기타에 매료된 젊은이들이 후일 대학가요제 등 각종 가요제의 문을 두드린 것은 당연지사였습니다. 송골매나 백두산, 그리고 시나위 등의 멤버들은 록그룹의 열망으로 취미로 기타를 배우다가 가수의 길로 들어선 멤버들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yodXsojRrqI

 

그런데 록그룹이나 그룹사운드의 활약은 2천년 전후까지만 절정을 보이다가 최근에는 거의 활약이 보이지 않습니다. 현란한 기타리스트의 반주가 뒷받침된 노래만이 노래는 아닌데, 이들이 대중가요를 과잉대표하는 것에 대한 반발이 생겼습니다. 마치 일급요리사의 요리만이 요리의 전부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노래방에서 나오는 약간 조잡한 반주로도 조용필은 만족하고 노래를 부르는 것이 21세기 현재의 모습인 것을 보면, 이러한 풍조는 확실히 현대의 시대정신과도 부합합니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아예 컴퓨터반주이고, 빌보드차트를 휘감은 BTS도 컴퓨터반주입니다. 대중은 음악이 좋으면 듣는 것이지 반드시 현란한 연주만을 고집하지는 않습니다. 노래방의 열풍은 한편으로는 반주가 조잡하더라도 대중은 충분히 수용한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시절 전자기타로 분위기를 띄우면 젊은이들은 뜨거운 피를 발산했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실은 산울림과 같은 록그룹은 한국 록그룹의 역사이자 자존심입니다. 트로트로 일관한 뽕짝음악이 흐르던 캬바레와 별개로 록음악의 리듬에 맞춰서 당시 젊은이들은 나이트클럽에서 몸을 흔들었습니다. 나이트클럽은 젊은이의 특권과도 같았습니다.

 

나 어떡해를 작사, 작곡한 김창훈은 리더 김창완의 동생으로, 막내 김창익과 더불어 한국 록그룹의 역사인 산울림을 결성하여 그나마 많지 않은 한국 록그룹의 역사를 썼습니다. ‘청춘나 어떡해와 마찬가지로 싸이키델릭 록입니다. 잔잔한 김창완의 목소리로 지나가는 청춘을 그리는데, 역설적으로 그 울림이 큽니다. 청춘이 지나가면 무척이나 서글프지만, 마치 노인이 담담하게 인생을 관조하듯 청춘을 그리는 것이 무척이나 인상적입니다.

 

산울림이 한국 가요사의 기념적인 그룹인 것은 바로 이러한 위치에 기인합니다. ‘청춘은 음유시인이 읊조리듯 부르는 가사가 뛰어납니다. 함축하는 의미가 가요를 넘어 서정시의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적어도 한국가요에서 밥 딜런급으로 가사의 빼어남을 꼽자면 산울림의 노래들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일상생활에서 발견하는 생의 의미를 독특한 언어로 치환한 산울림의 가사들은 그 자체가 시어입니다. ‘산울림이 부른 노래들의 가사는 그 이전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을 정도로 개성만점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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