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례를 검색하다보면 ‘바늘과 실’같이 항상 붙어서 다니는 법률조항이나 범죄가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업무상과실치사상죄’와 ‘산업안전보건법위반죄’, 그리고 형법상 과실범의 공동정범(형법 제30조)과 경합범(형법 제37조)입니다. 그 이유는 업무상과실치사상죄는 널리 일반적으로 생명과 신체에 대한 안전의무를 저버렸기에 발생하는 범죄이고, 산업안전보건법위반죄는 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의 생명과 신체에 대한 사업주의 안전의무를 저버렸기에 발생하는 범죄로서 양죄는 별개인 것으로 보이지만, 그 실질은 사업주의 주의의무위반에 따른 과실범이기 때문에 형법상 경합범으로 처벌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대다수의 이 범죄들은 건설현장에서 발생하는데, 건설현장은 다단계 하도급공사체계라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현실에서 피해자는 건설일용근로자이기 때문에 도급사와 수급사의 각 사업주가 각각 처벌받게 됩니다.
○건설을 종합예술로 비유하기도 합니다. 다양한 공정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건설현장의 주의의무는 다양하게 존재합니다. 그 주의의무를 구체화한 것이 강학상 행정규칙으로 불리는 고용노동부 훈령인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산안규칙)’입니다. 재판실무에서 산안규칙은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합니다. 대법원(대법원 2022. 7. 14. 선고 2020도9188 판결)은 ‘구 산업안전보건법(2019. 1. 15. 법률 제16272호로 전부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구 산업안전보건법’이라고 한다)에서 정한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위반하였는지 여부는 구 산업안전보건법 및 구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2019. 12. 26. 고용노동부령 제272호로 전부 개정되기 전의 것)에 근거한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이하 ‘안전보건규칙’이라고 한다)의 개별 조항에서 정한 의무의 내용과 해당 산업현장의 특성 등을 토대로 산업안전보건법의 입법 목적, 관련 규정이 사업주에게 안전·보건조치를 부과한 구체적인 취지, 사업장의 규모와 해당 사업장에서 이루어지는 작업의 성격 및 이에 내재되어 있거나 합리적으로 예상되는 안전·보건상 위험의 내용, 산업재해의 발생 빈도, 안전·보건조치에 필요한 기술 수준 등을 구체적으로 살펴 규범 목적에 부합하도록 객관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라고 판시하는데, 과장해서 요약하면, 산안규칙이 만병통치약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산안법위반 사건은 산안법과 업무상과실치사상죄의 경합범으로 처벌이 됩니다. 그런데 형법은 자연인만을 처벌의 대상으로 보지만,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은 양벌규정으로 법인까지 형벌의 가능성을 확대합니다. 따라서 산안법위반 사건은 거의 예외가 없이 다수 범죄자와 경합범의 존재가 발생합니다. 경합범이란 1). 판결이 확정되지 아니한 수개의 죄, 2). 금고 이상의 형에 처한 판결이 확정된 죄와 그 판결확정전에 범한 죄를 의미합니다. 경합범제도를 규정한 것은 크게 피고인의 이익과 재판의 편의성이라는 두 가지 입법목적이 있는데, 전자의 목적이 더 큽니다. 피고인이 갑죄와 을죄, 병죄를 범하여 A, B, C법원에서 재판을 각각 받는다면 엄청난 고통이기 때문입니다.
○다음 서울북부지법의 사례(서울북부지법 2024. 9. 11. 선고 2023고단3217 판결)에서 형벌의 실제 사례를 봅니다. 피고인 甲 주식회사(주:산안법상 양벌규정)는 특정 초등학교로부터 ‘학교 교문 환경개선공사’를 발주받아 시공하는 사업주이고, 피고인 乙 주식회사는 그중 ‘정문, 후문 설치공사’를 피고인 甲 회사로부터 도급받아 시공하는 사업주인데(주:다단계 하도급구조), 피고인 甲 회사 소속 현장소장으로 산안법상 안전보건총괄책임자인 피고인 丙, 피고인 乙 회사 소속 현장소장으로 안전보건관리책임자인 피고인 丁, 위 설치공사의 굴착기 운전기사인 피고인 戊가 공동으로 정문 설치공사 현장에서 화물차 적재함에 적재된 철제 H빔을 피해자가 섬유로프로 묶어 굴착기 고리에 걸면 피고인 戊가 조정을 하여 이를 화물차에서 내리는 작업을 하던 중 섬유로프가 갑자기 풀리면서 H빔이 피해자의 머리 및 얼굴 부위로 떨어져 깔리게 함으로써 업무상의 과실로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함과 동시에 피고인 丙, 丁이 공모하여 근로자의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안전조치의무를 위반하여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하였다는 내용으로 기소된 사안에서, 피고인들 모두에게 유죄를 선고한 사례입니다.
○법원이 안전의무로 제시하는 대목은 ‘줄로 묶여 있는 H빔은 언제든지 풀려 떨어질 수 있는 위험성이 있고, 이를 들어 올리는 작업을 하는 피고인 戊로서는 H빔이 풀려 떨어지는 경우 주변 사람이 다치지 않도록 사람이 작업반경 밖에 있는지 확인하고 작업을 하였어야’ 한다는 부분입니다. 결국 H빔이라는 위험원(危險源)에 대하여 각 도급사업체 전부는 물론 안전보건관리자 전부가 안전의무 내지 안전조치의무를 진다는 의미입니다. 그리하여 전부에 대하여 경합범에 따른 유죄의 선고를 받았습니다. 소박한 시민의 눈높이로 풀이하자면, 건설공사로 돈을 버는 사람은 형사처벌의 위험도 아울러 감내하라는 것입니다.
<형법> 제30조(공동정범) 2인 이상이 공동하여 죄를 범한 때에는 각자를 그 죄의 정범으로 처벌한다. 제37조(경합범) 판결이 확정되지 아니한 수개의 죄 또는 금고 이상의 형에 처한 판결이 확정된 죄와 그 판결확정전에 범한 죄를 경합범으로 한다. 제268조(업무상과실ㆍ중과실 치사상) 업무상과실 또는 중대한 과실로 사람을 사망이나 상해에 이르게 한 자는 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산업안전보건법> 제63조(도급인의 안전조치 및 보건조치) 도급인은 관계수급인 근로자가 도급인의 사업장에서 작업을 하는 경우에 자신의 근로자와 관계수급인 근로자의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하여 안전 및 보건 시설의 설치 등 필요한 안전조치 및 보건조치를 하여야 한다. 다만, 보호구 착용의 지시 등 관계수급인 근로자의 작업행동에 관한 직접적인 조치는 제외한다. 제167조(벌칙) ① 제38조제1항부터 제3항까지(제166조의2에서 준용하는 경우를 포함한다), 제39조제1항(제166조의2에서 준용하는 경우를 포함한다) 또는 제63조(제166조의2에서 준용하는 경우를 포함한다)를 위반하여 근로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대법원 판례> 구 산업안전보건법(2019. 1. 15. 법률 제16272호로 전부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구 산업안전보건법’이라고 한다)에서 정한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위반하였는지 여부는 구 산업안전보건법 및 구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2019. 12. 26. 고용노동부령 제272호로 전부 개정되기 전의 것)에 근거한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이하 ‘안전보건규칙’이라고 한다)의 개별 조항에서 정한 의무의 내용과 해당 산업현장의 특성 등을 토대로 산업안전보건법의 입법 목적, 관련 규정이 사업주에게 안전·보건조치를 부과한 구체적인 취지, 사업장의 규모와 해당 사업장에서 이루어지는 작업의 성격 및 이에 내재되어 있거나 합리적으로 예상되는 안전·보건상 위험의 내용, 산업재해의 발생 빈도, 안전·보건조치에 필요한 기술 수준 등을 구체적으로 살펴 규범 목적에 부합하도록 객관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나아가 해당 안전보건규칙과 관련한 일정한 조치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해당 산업현장의 구체적 실태에 비추어 예상 가능한 산업재해를 예방할 수 있을 정도의 실질적인 안전조치에 이르지 못할 경우에는 안전보건규칙을 준수하였다고 볼 수 없다. (대법원 2022. 7. 14. 선고 2020도9188 판결) <서울북부지법 판례> ① 피고인 乙 회사 측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부분과 관련하여, 같은 법 제38조 제2항에서 정한 안전조치의무는 근로자를 사용하여 사업을 행하는 사업주가 부담하여야 하는 재해방지의무로서 사업주와 근로자 사이에 실질적인 고용관계가 있는 경우에 그 의무불이행 자체로 같은 법 제167조 제1항, 제173조 위반죄가 성립하는바, 피고인 丁은 정문, 후문 설치공사에 관하여 피고인 乙 회사의 안전보건관리책임자로 선임되어 공사의 전반적인 작업과정을 감독하였고, 피해자는 그 설치작업을 담당하는 전문 인력이었던 점, 피고인 乙 회사 측이 작업일정과 내용을 정하여 도급인인 피고인 甲 회사 측에 알려주었던 점, 피고인 丁이 사고 현장에 계속 상주하면서 작업 전반에 관한 지휘⋅감독을 하고, 피해자의 작업시간을 관리한 점 등 제반 사정을 종합하면, 당시 피해자가 수행한 작업에 관하여 피고인 乙 회사와 피해자 사이에 실질적인 고용관계가 있었다고 봄이 타당하고, ② 굴착기 운전기사인 피고인 戊의 업무상과실치사 부분과 관련하여, 피고인 戊는 당시 피해자가 H빔에 가까이 있는 상황에서 H빔이 걸려있는 고리를 드는 작업을 수행하였는데, 줄로 묶여 있는 H빔은 언제든지 풀려 떨어질 수 있는 위험성이 있고, 이를 들어 올리는 작업을 하는 피고인 戊로서는 H빔이 풀려 떨어지는 경우 주변 사람이 다치지 않도록 사람이 작업반경 밖에 있는지 확인하고 작업을 하였어야 함에도 위와 같이 고리를 드는 작업을 수행하였던 점, 피고인 戊는 피해자의 지시에 따라 작업을 수행하였을 뿐이라고 주장하나, 굴착기를 직접 운전하여 조종하는 사람은 피고인 戊이므로 피해자의 지시에 따랐다고 하더라도 위와 같은 주의의무가 없다고 보기 어려운 점, 단지 이전에 피해자가 진행한 작업에서 사고가 없었다고 하여 피고인 戊에게 예견가능성이나 회피가능성이 없었다고 보기 어려운 점 등 제반 사정을 종합하면, 피고인 戊는 피해자가 작업반경 밖에 있는지 확인하고 작업을 하여 사고를 방지하여야 할 업무상 주의의무가 있음에도 이에 위반하여 작업을 하였고, 사고에 대한 예견가능성과 회피가능성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는 등의 이유로, 피고인들 모두에게 유죄를 선고한다. (서울북부지법 2024. 9. 11. 선고 2023고단3217 판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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