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까지 선비라면 능히 詩, 賦, 頌, 策에 두루 능해야 한다는 가르침이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부(賦)의 대표는 대춘부(待春賦)가 될 정도로 봄은 단군 이래 시의 주된 소재였습니다. 역사소설의 대가인 고 월탄 박종화는 대춘부가 아예 장편소설의 제목이기도 했습니다. ‘쌀을 팔아 돈사야’라는 시구로 명망이 높은 신석정 시인도 ‘대춘부’라는 제목의 시를 썼습니다.
실은 유명 시인치고 봄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시를 쓰지 않은 시인이 과연 존재하는가라는 의문이 생길 정도로 봄은 시인의 영원한 노스탤지어입니다. 서양도 마찬가지입니다. 겨울에 움츠렸던 몸이 기지개를 켜는 봄은 희망을 불러일으키면서 시적 감흥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인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시인의 영감을 자극하는 것이 봄의 기운입니다. 굳이 밥 딜런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대중가요의 가사는 동시에 대중 시입니다. 대중과 끊임이 없이 교감하는 작사가는 봄에 대한 감흥을 대중에 전달하는 매개장치로 대중가요를 선택한 것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전영록은 이제 원로가수입니다. 그 전영록의 모친인 고 백설희 여사가 1953년에 발표한 ‘봄날은 간다’가 봄 노래의 시발점입니다. 당시에는 고 남인수, 고 현인 등의 주류 가수가 콧소리를 섞어가면서 부르는 것이 유행창법이었습니다. 고 백설희 여사도 콧소리를 섞어서 감정을 실어서 부른 이 노래는 봄 노래의 전형이었습니다. 전쟁의 상흥이 가신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점이었는지 애상의 정서가 무척이나 많이 녹아내린 곡인데, 곡 자체가 훌륭해서인지 장사익, 조용필, 나훈아 등 당대의 유명가수가 줄줄이 리메이크를 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IR2dymiMxX4
1970년대까지도 고 백설희 여사의 ‘봄날은 간다’가 꽤나 많이 사랑을 받았습니다만, 차츰 주도권이 박인희의 ‘봄이 오는 길’로 넘어갔습니다. 80년대 이후 출생자는 박인희라는 이름 자체가 생소할 것입니다. 그러나 70년대를 관통했던 통기타시대에 박인희의 존재감은 대단했습니다. 생수같이 맑고 청아한 목소리의 박인희는 화장기가 없는 맑은 얼굴과 어울리는 통기타 반주로 노래를 불러서 뜨거운 인기를 누렸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 인기에 걸맞지 않게 TV출연은 뜸했습니다. 아무튼 저는 박인희 버전의 봄노래인 ‘봄이 오는 길’을 제일 좋아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K1-xa4LAJh8
1980년대까지는 박인희가 나름대로 인기를 누렸지만, TV에 얼굴을 비치지 않는다는 핸디캡이 작용했는지 아니면 세월이 야속해서인지 박인희는 차츰 보이지도 않았고 들리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이정선의 ‘봄’이 봄노래 중에서 거의 독식을 했습니다. 90년대에 들어서 청아한 목소리의 양희은의 ‘하얀 목련’이 인기를 얻기도 했지만, 80년대를 관통한 인기는 아무래도 이정선의 ‘봄’입니다. 통기타 가수이기는 했지만, 허스키 보이스로 중후하면서도 안정감이 있는 목소리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GdB8ywEHDx8
장범준의 ‘벚꽃엔딩’에 이르러, ‘연금’이라는 언급이 나올 정도로 저작권료가 대폭 인상되었고 또한 현실화되어서 그 이전의 가수보다 월등하게 인기를 누리지는 않았지만, 장범준은 돈방석에 앉았습니다. 물론 장범준의 ‘벚꽃엔딩’이 시대를 대표하는 봄노래의 자격 역시 충분합니다. 그러나 ‘벚꽃엔딩’이라는 노래가 장범준의 낭랑하고 경쾌한 목소리, 거기에 더하여 담백한 연주가 빛이 나는 명곡이기는 하지만, 시대를 잘 타고 난 노래라는 점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그 이전의 노래도 차츰 시간이 흐르면서 인기가 지속적으로 하락했다는 역사적 사실도 장범준의 ‘벚꽃엔딩’에게도 적용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어느 노래가 봄노래의 대세가 될지 궁금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CV6Rv38gZbQ
'7080연예한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울의 달’, 그리고 홍진희> (0) | 2021.03.03 |
---|---|
<조용필의 이 노래 : ‘미지의 세계’> (0) | 2021.02.26 |
<015b의 이 노래 : ‘수필과 자동차’> (0) | 2021.02.04 |
<이선희의 이 노래 : ‘소녀의 기도’> (0) | 2021.02.04 |
<흑백TV시대의 소묘> (0) | 2021.02.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