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등 앱을 통한 회원가입이나 인터넷 커뮤니티의 회원가입 등 각종 가입절차에서 엄청나게 짜증이 나는 것이 ‘약관’에 동의하냐고 묻는 대목입니다. 그 엄청나게 긴 약관을 인내심을 갖고 가입하다가 약관에 대한 불만이 폭발합니다. 약관에 대한 불만은 보험에 가입하는 경우에도, 그리고 대출을 받는 경우에도 폭발합니다. 그러나 약관이 바퀴벌레처럼 짜증이 나는 존재라면 금융감독원에서 방치할 리가 없습니다.
○약관이 이렇게 강제되는 것은 소비자의 보호를 위한 것입니다. 당연히 근거 법률이 있습니다.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약관법)’이 바로 그것입니다. 약관법은 ‘“약관”이란 그 명칭이나 형태 또는 범위에 상관없이 계약의 한쪽 당사자가 여러 명의 상대방과 계약을 체결하기 위하여 일정한 형식으로 미리 마련한 계약의 내용을 말한다.’라고 그 개념을 법정하였습니다. 여기에서 ‘한쪽 당사자’는 대부분 기업 등 사회적 강자이고, ‘여러 명의 상대방’은 주로 소비자 등 사회적 약자입니다. 위에서 본 경우에 모두 기업이나 은행 등 사회적 강자가 미리 마련한 계약의 형식이 바로 약관입니다.
○다음 <기사>에 등장하는 생명보험회사가 미리 작성한 명예퇴직약정서도 바로 약관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기업은 근로자를 채용할 경우에 동일한 양식의 근로계약서 샘플을 이용합니다. 약관법에 따르면 이 근로계약서 샘플도 당연히 약관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약관법 제30조 제1항은 ‘근로기준법’의 적용 사례에서는 약관법 자체를 배제하는 조항을 두고 있습니다. 기업이 인력을 채용하는 경우에 신입이나 경력직 또는 관리직 등 다양한 분야의 채용을 약관으로 획일화하기 어렵고, 근로기준법상의 규제를 기업이 약관이라는 이름으로 회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법원은 이를 주목하여 명예퇴직약정 자체는 약관에 해당한다고 볼 여지가 있으나, 약관법 제30조 제1항의 규정에 따라 배제된다고 판결하였습니다(그러나 행간의 의미로는 해당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실정법의 해석에 충실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경업금지약정’입니다. 경업금지약정은 글자 그대로 경쟁업체에서 근무하거나 창업하는 것을 금지하는 약정입니다. 경업금지약정은 두 가지 상반된 시각이 존재합니다. 첫째는 ‘배운 것이 도둑질’이라는 근로자의 시각과 ‘배은망덕’이라는 사용자의 시각이 바로 그것입니다.
○사용자의 시각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채용해 달라고 애걸복걸하던 근로자를 인심을 써서 채용했고, 이런저런 기술, 영업노하우 등을 배우고 난 후에, 바로 코앞에서 동종의 영업을 하는 근로자에게 배신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근로자의 시각은 전혀 다릅니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떼놈이 챙긴다는 말처럼 엉성한 기술 하나 가르쳐주고 자기는 베짱이처럼 나를 부려서 돈을 버니 배가 아프다, 그리 대단한 기술도 아니기에 까짓거 나도 차리겠다. 대충 이런 시각이 근로자의 머리에 담겨 있습니다.
○대법원(대법원 2010. 3. 11. 선고 2009다82244 판결)은 당연히 양자의 시각을 절충한 판결을 내렸습니다. ‘사용자와 근로자 사이에 경업금지약정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그와 같은 약정이 헌법상 보장된 근로자의 직업선택의 자유와 근로권 등을 과도하게 제한하거나 자유로운 경쟁을 지나치게 제한하는 경우에는 민법 제103조에 정한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하는 법률행위로서 무효라고 보아야 하며’라고 판시하여 경업금지약정 자체는 유효하다고 봤습니다. 그런데 과도한 경우, 즉 근로자의 직업의 자유, 근로권 등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경우에는 민법 제103조에 반하여 무효라고 본 것입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추상적인 법리의 전개는 공허합니다. 대법원은 ‘근로자의 직업의 자유, 근로권 등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경우’의 구체적인 판단기준으로 ‘보호할 가치 있는 사용자의 이익, 근로자의 퇴직 전 지위, 경업 제한의 기간·지역 및 대상 직종, 근로자에 대한 대가의 제공 유무, 근로자의 퇴직 경위, 공공의 이익 및 기타 사정 등’을 들었습니다. 다양한 요소를 검토하라고 하였지만, 결론은 MZ세대들이 좋아하는 ‘진리의 케바케’입니다. 그런데 대법원의 이러한 결론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사용자의 보호가치 있는 이익은 당해 업종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기사> 퇴직 후 일정 기간 취업을 제한하는 경업금지약정과 이를 위반했을 경우 손해배상을 약속한 확약서에는 약관법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확약서가 퇴직에 관한 내용이더라도 약관법 적용 제외 대상인 '근로기준법 분야에 속하는 계약'에 해당해 약관법 규제를 받지 않는다는 판단이다. 경업금지약정 무효화 소송 등 유사 분쟁이 이어질 가능성을 대법원이 사전에 차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5일 <노동법률> 취재에 따르면 대법원 제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신한라이프생명보험 주식회사에서 퇴직한 근로자 A 씨와 B 씨가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확약서 무효 확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서울고등법원에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이 사건 확약서는 약관에 해당한다고 볼 여지는 있지만 희망퇴직의 유효성 여부와 조건 등이 문제가 될 경우에는 근로기준법에 의해 그 유효성이 판단될 것이므로 약관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판단했다. https://www.worklaw.co.kr/view/view.asp?in_cate=117&bi_pidx=34550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 제2조(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1. “약관”이란 그 명칭이나 형태 또는 범위에 상관없이 계약의 한쪽 당사자가 여러 명의 상대방과 계약을 체결하기 위하여 일정한 형식으로 미리 마련한 계약의 내용을 말한다. 2. “사업자”란 계약의 한쪽 당사자로서 상대 당사자에게 약관을 계약의 내용으로 할 것을 제안하는 자를 말한다. 3. “고객”이란 계약의 한쪽 당사자로서 사업자로부터 약관을 계약의 내용으로 할 것을 제안받은 자를 말한다. 제30조(적용 범위) ① 약관이 「상법」 제3편, 「근로기준법」 또는 그 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비영리사업의 분야에 속하는 계약에 관한 것일 경우에는 이 법을 적용하지 아니한다. ② 특정한 거래 분야의 약관에 대하여 다른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 법에 따른다. <대법원 판례> [1] 사용자와 근로자 사이에 경업금지약정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그와 같은 약정이 헌법상 보장된 근로자의 직업선택의 자유와 근로권 등을 과도하게 제한하거나 자유로운 경쟁을 지나치게 제한하는 경우에는 민법 제103조에 정한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하는 법률행위로서 무효라고 보아야 하며, 이와 같은 경업금지약정의 유효성에 관한 판단은 보호할 가치 있는 사용자의 이익, 근로자의 퇴직 전 지위, 경업 제한의 기간·지역 및 대상 직종, 근로자에 대한 대가의 제공 유무, 근로자의 퇴직 경위, 공공의 이익 및 기타 사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하고, 여기에서 말하는 ‘보호할 가치 있는 사용자의 이익’이라 함은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2호에 정한 ‘영업비밀’뿐만 아니라 그 정도에 이르지 아니하였더라도 당해 사용자만이 가지고 있는 지식 또는 정보로서 근로자와 이를 제3자에게 누설하지 않기로 약정한 것이거나 고객관계나 영업상의 신용의 유지도 이에 해당한다. [2] 근로자 갑이 을 회사를 퇴사한 후 그와 경쟁관계에 있는 중개무역회사를 설립·운영하자 을 회사 측이 경업금지약정 위반을 이유로 하여 갑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안에서, 갑이 고용기간 중에 습득한 기술상 또는 경영상의 정보 등을 사용하여 영업을 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정보는 이미 동종업계 전반에 어느 정도 알려져 있었던 것으로, 설령 일부 구체적인 내용이 알려지지 않은 정보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를 입수하는데 그다지 많은 비용과 노력을 요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이고, 을 회사가 다른 업체의 진입을 막고 거래를 독점할 권리가 있었던 것은 아니며 그러한 거래처와의 신뢰관계는 무역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습득되는 측면이 강하므로 경업금지약정에 의해 보호할 가치가 있는 이익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거나 그 보호가치가 상대적으로 적은 경우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고, 경업금지약정이 갑의 이러한 영업행위까지 금지하는 것으로 해석된다면 근로자인 갑의 직업선택의 자유와 근로권 등을 과도하게 제한하거나 자유로운 경쟁을 지나치게 제한하는 경우에 해당되어 민법 제103조에 정한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하는 법률행위로서 무효라고 할 것이므로, 경업금지약정이 유효함을 전제로 하는 손해배상청구는 이유 없다. (대법원 2010. 3. 11. 선고 2009다82244 판결) |
○보험회사의 영업양식은 생명보험이나 손해보험 모두 대동소이한 것이 현실입니다. 한때 외국계 보험회사의 양식을 국내 보험회사가 벤치마팅한 적이 있었지만, 그 후에는 외국계 보험회사라 하여 영업양식은 대동소이합니다. 현실에서도 특별히 경업금지로 약정할만한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원심에서 근로자의 손을 들었습니다. 다만, 원심은 약관법상 불공정약관이기에 근로자가 제기한 확약서가 무효라고 본 반면에, 대법원은 약관법 자체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본 차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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