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해 한용운은 생전에 ‘님의 침묵’이라는 시집을 딱 1권 냈습니다. 물론 후손이나 후학들이 유작을 낸 경우는 있지만, 한용운 본인이 발간한 것은 ‘님의 침묵’밖에 없습니다. 바로 그 ‘님의 침묵’의 위력은 엄청나서 발간한 지 근 100년이 지난 지금도 각급 학교에 실려 있습니다. 한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내면서 한용운이라는 이름 석자를 모르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그의 대표작 ‘님의 침묵’이라는 엄청난 시를 모르기도 어렵습니다. 그래서인지 연시(戀詩) 형식의 ‘님의 침묵’에서 ‘님’이 단순히 연인을 뜻하는 것이 아님을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중의적 표현에 비유와 상징이 탁월하기에 ‘님의 침묵’은 시대를 넘은 명시의 반열에 오른 것입니다.
○이렇게 시의 매력은 간결한 함축적 언어에 담긴 비유와 상징에 있습니다. 생전에 신경림 시인은 교과서에 실린 본인이 지은 시가 전혀 다른 의미로 각종 참고서에 실린 것을 보고 놀랐다는 말을 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추상적인 언어가 위력을 발휘하는 공간은 딱 문학의 영역에 한정됩니다. 일상에서, 그리고 법률의 영역에서 이렇게 비유와 상징이 작동하면 인생이 피곤해 집니다. 법률은 일의적이고 객관적인 언어로 표출되어야 합니다. 무수히 많은 법률 속의 용어도 가급적이면 통일적인 의미를 담아야 합니다. 국민들의 법률생활에 혼동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배우자’는 법률용어 이전에 일상용어입니다. 누구나 아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배우자는 실은 사실혼과 법률혼이라는 두 가지의 범주가 있습니다. 서양에서는 동거인(Partner)과 배우자(Spouse)로 구분합니다. 동거인은 대략 사실혼에 근접합니다. 왜 이렇게 구분했는가 하면 바로 당사자의 법률적 보호를 위함입니다. 민법상 배우자는 원칙적으로 법률혼만을 인정합니다. 자녀, 친권, 그리고 상속 등의 권리는 획일적으로 정해야 법적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헌법재판소(헌법재판소 2024. 3. 28. 선고 2020헌바494 판결)도 ‘제3자에게 영향을 미쳐 명확성과 획일성이 요청되는 상속과 같은 법률관계에서는 사실혼을 법률혼과 동일하게 취급할 수 없으므로, 상속권조항이 사실혼 배우자의 평등권을 침해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2014. 8. 28. 선고 2013헌바119 결정을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그럼 왜 법원이나 헌법재판소가 복잡한 사실혼과 법률혼이라는 이원적 혼인체계를 인정하는지 근원적인 의문이 생깁니다. 그것은 각 단행법률의 입법취지와 국민의 권리보호라는 정책적 목표 때문입니다. 다음 <기사> 속의 동성 부부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 인정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국민건강보험법(건보법)’ 제1조의 ‘국민의 질병ㆍ부상에 대한 예방ㆍ진단ㆍ치료ㆍ재활과 출산ㆍ사망 및 건강증진에 대하여 보험급여를 실시함으로써 국민보건 향상과 사회보장 증진에 이바지’라는 근원적인 목적에서 출발하였습니다. 가정을 꾸리고 동거하면서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점에서 사실혼과 법률혼은 차이점이 없습니다. 이마에 ‘법률혼 부부’라고 씌여있는 것도 아닙니다. 실제로 각종 산재보험법 등 각종 사회보험법은 사실혼 부부까지 보호를 합니다. 민법의 취지와는 다릅니다. ‘배우자’라는 동일한 단어가 달리 쓰이는 것입니다.
○대법원이 동성 부부에게도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한 것은 비록 동성혼이 일반적으로 승인되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혼처럼 그 실체가 있는 경우라면 사실혼에 준해서 보호를 해야 하는 것이 건보법의 목적에 부합하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여기에서 유의할 점이 있습니다. 동성끼리의 동거 자체는 친구, 동창, 친척 등의 관계에서 행해진다는 선결적 사실입니다. 동성 간의 동거가 곧 동성혼은 아니며, 산 넘고 물을 건너야 비로소 동성혼으로 인정된다는 사실입니다. 실무상 동성혼의 인정범위가 무척이나 좁을 수밖에 없습니다.
<기사> 대법원이 동성 부부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해야 한다고 판결하면서 동성 부부의 법적 권리를 처음으로 인정했다. 그동안 동성 부부는 사실혼 관계에 있음에도 동성이라는 이유로 법적인 권리를 행사하는데 제약이 있었다. 대법원이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며 "사실혼과 다르지 않다"고 판시해 앞으로 이성 부부에게 주어지는 권리를 얻을 길이 열렸다는 평가다. 다만, 대법원이 동성혼을 법적으로 인정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과도한 해석은 경계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대법원은 18일 오후 전원합의체를 열고 소성욱씨가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보험료 부과 처분 취소 소송 상고심에서 재판관 다수 의견으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이 소씨의 손을 들어준 이유는 건강보험에서 규정하는 사실혼 관계에 있는 이성 부부와 동성 부부가 차이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공단이 직장가입자의 '사실상 혼인관계에 있는 사람'을 피부양자로 인정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그가 직장가입자의 동반자로서 생계를 함께 하면서 공동생활을 영위하기 때문"이라고 판시했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3/0012675598?sid=102 <국민건강보험법> 제1조(목적) 이 법은 국민의 질병ㆍ부상에 대한 예방ㆍ진단ㆍ치료ㆍ재활과 출산ㆍ사망 및 건강증진에 대하여 보험급여를 실시함으로써 국민보건 향상과 사회보장 증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제5조(적용 대상 등) ① 국내에 거주하는 국민은 건강보험의 가입자 또는 피부양자가 된다. 다만,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람은 제외한다. 중략 ② 제1항의 피부양자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람 중 직장가입자에게 주로 생계를 의존하는 사람으로서 소득 및 재산이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기준 이하에 해당하는 사람을 말한다. 1. 직장가입자의 배우자 <헌법재판소 판결> 헌법재판소는 2014. 8. 28. 선고한 2013헌바119 결정에서, 상속권조항이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그 이유는, ‘상속권조항이 사실혼 배우자에게 상속권을 인정하지 아니하는 것은 상속인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객관적인 기준에 의하여 파악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상속을 둘러싼 분쟁을 방지하고, 상속으로 인한 법률관계를 조속히 확정시키며, 거래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다. 사실혼 배우자는 혼인신고를 함으로써 상속권을 가질 수 있고, 증여나 유증을 받는 방법으로 상속에 준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으며, 근로기준법, 국민연금법 등에 근거한 급여를 받을 권리 등이 인정되므로 상속권을 침해한다고 할 수 없다고 보았다. 나아가 위 결정에서 법률혼주의를 채택한 취지에 비추어 볼 때 제3자에게 영향을 미쳐 명확성과 획일성이 요청되는 상속과 같은 법률관계에서는 사실혼을 법률혼과 동일하게 취급할 수 없으므로, 상속권조항이 사실혼 배우자의 평등권을 침해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선례의 이유는 심판대상이 동일한 이 사건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고, 이와 달리 판단해야 할 사정변경이나 필요성이 있다고 보이지 아니한다. 따라서 상속권조항은 생존 사실혼 배우자의 재산권(상속권)을 침해하지 않고 평등원칙에도 반하지 아니한다. (헌법재판소 2024. 3. 28. 선고 2020헌바494 판결) |
'4대보험 > 건강보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행유튜버, 그리고 건강보험의 급여정지와 국민연금의 납부예외> (6) | 2024.07.24 |
---|---|
<반중정서와 중국인의 건강보험재정적자> (0) | 2024.07.19 |
<부자노인의 건강보험료> (0) | 2024.06.19 |
<건강보험료 부과기준기간과 건강보험료의 연말정산> (1) | 2024.04.18 |
<조선족 장모님과 가사사용인, 그리고 가사근로자> (3) | 2024.04.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