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에 남북의 관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것으로 온 국민을 남북통일의 희망에 부풀게 하는 역사적 사건이 벌어졌으니, 그 이름은 ‘7.4 남북공동성명’이었습니다. 천신만고라는 이름이 딱 맞는 이 성명을 낳기까지는 남북적십자회담, 그리고 남북조절위원회 등이 사전정지작업의 성격으로 진행되었으며, 전 국민이 비원하던 통일의 분위기가 무르익었습니다. 지금처럼 통일은커녕 북한 자체에 대하여 무관심한 시절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7.4 남북공동성명’은 북의 김일성과 남의 박정희가 서로 동상이몽격으로 각자의 정치적 실리를 챙긴 사건에 불과했습니다. 김일성은 당연히 자신의 독재권력의 구축화에 악용했으며, 박정희 역시 그해 ‘10월 유신’의 바람잡이 정도로 써먹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그 무렵 남북적십자회담을 위하여 서울을 방문한 북측 대표단은 서울 거리를 달리던 자동차의 행렬을 두고 뜨끔한 한마디를 했습니다. ‘전국의 자동차를 밤새 서울로 몰아오느라 수고했다!’는 뼈있는 힐난이 바로 그것입니다. 실제로도 당시 전국의 자동차를 모두 합해도 얼마 되지 않던 시절임을 고려하면 북측 대표단의 힐난이 사실임은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현대차의 포니가 1975년에 비로소 생산이 되었고, 수출이 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대입해도 사실임은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1970년대 서울을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도 서울의 거리는 지금과 달리 자동차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무려 50년이 넘는 세월이 흐른 2024년 현재 서울의 현실은 그때와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습니다.
○당시 자가용이 있으면 동네에서 알아주는 부자였던 시대였지만, 이제는 집집마다 자가용차량이 넘쳐나기에 대리운전기사라는 신종 직업이 생겼으며, 휴대폰앱으로 호출하는 타다택시라는 신종택시까지 생겼기 때문입니다. 철가방으로 상징이 되는 배달은 이제 배달앱으로 운영이 되는 시대입니다. 배달기사가 넘치기에 배달기사가 조합원인 배달기사노동조합이 생겼고, 대리운전기사가 조합원인 대리운전기사노동조합까지 생겼습니다. 북측 적십자회담대표는 물론 남측 적십자회담대표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풍경입니다. 당연히 플랫폼노동이라는 새로운 노동현상은 더욱 예상을 못했을 것입니다. 급격한 사회변동에 따라 법률적 규율도 뒤따르기 마련입니다.
○사회가 변동하면 새로운 경제현상이 태동하고, 그 경제현상을 구성하는 노동법질서도 형성됩니다. 그러나 시대의 변화를 노동법질서가 그때그때 따라가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ILO(국제노동기구)는 근로자의 개념을 추상적으로 규율합니다. 각국의 실체법을 포괄하고, 새로운 노동법질서에도 대응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노동법질서에서도 단체법적으로, 즉 노동조합을 구성해서 자신들의 권익을 옹호하는 단체행동을 할 수 있는 근로자의 개념과 실체법적으로 근로자의 개념을 설정하여 사용자에 대한 종속성을 지닌 근로관계를 규율하는 것은 별개로 구성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동조합법)’ 제2조 제1호는 근로자의 개념을 ‘“근로자”라 함은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임금ㆍ급료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에 의하여 생활하는 자를 말한다.’라고 정의하여 근로기준법 제2조 제1항 제1호의 ‘“근로자”란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사람을 말한다.’라고 정의한 것과 구분이 됩니다. 이렇게 이원적으로 근로자의 개념을 구분하는 것은 노동조합을 통한 보호의 필요성과 실체법에 의한 보호의 필요성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근로기준법> 제2조(정의) ①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뜻은 다음과 같다. 1. “근로자”란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사람을 말한다. <대법원 판례> 노동조합법상 근로자는 타인과의 사용종속관계하에서 노무에 종사하고 대가로 임금 기타 수입을 받아 생활하는 사람을 말하고, 타인과 사용종속관계가 있는 한 해당 노무공급계약의 형태가 고용, 도급, 위임 또는 무명계약 등 어떤 형태이든 상관없다. 구체적으로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에 해당하는지는, 노무제공자의 소득이 특정 사업자에게 주로 의존하고 있는지, 노무를 제공받는 특정 사업자가 보수를 비롯하여 노무제공자와 체결하는 계약 내용을 일방적으로 결정하는지, 노무제공자가 특정 사업자의 사업 수행에 필수적인 노무를 제공함으로써 특정 사업자의 사업을 통해서 시장에 접근하는지, 노무제공자와 특정 사업자의 법률관계가 상당한 정도로 지속적ㆍ전속적인지, 사용자와 노무제공자 사이에 어느 정도 지휘ㆍ감독관계가 존재하는지, 노무제공자가 특정 사업자로부터 받는 임금ㆍ급료 등 수입이 노무 제공의 대가인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노동조합법은 개별적 근로관계를 규율하기 위해 제정된 근로기준법과 달리, 헌법상 근로자의 노동3권 보장을 통해 근로조건의 유지ㆍ개선과 근로자의 경제적ㆍ사회적 지위 향상 등을 목적으로 제정되었다. 이러한 노동조합법의 입법 목적과 근로자에 대한 정의 규정 등을 고려하면,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에 해당하는지는 노무제공관계의 실질에 비추어 노동3권을 보장할 필요성이 있는지의 관점에서 판단하여야 하고 반드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한정된다고 할 것은 아니다(학습지교사 및 방송연기자가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2018. 6. 15. 선고 2014두12598, 12604 판결 및 대법원 2018. 10. 12. 선고 2015두38092 판결 등 참조). (대법원 2024. 9. 27. 선고 2020다267491판결) |
○그리하여 대법원(대법원 2018. 6. 15. 선고 2014두12598, 12604 판결 및 대법원 2018. 10. 12. 선고 2015두38092 판결)은 학습지교사 및 방송연기자를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가 아니라도 노동조합법상으로는 근로자가 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린 전례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논거로 대법원은 대리운전기사도 노동조합을 구성하는 근로자가 될 수 있다는 판결(대법원 2024. 9. 27. 선고 2020다267491판결)을 내렸습니다. 동일한 개념은 가급적 동일하게 해석하는 것이 법률의 해석원칙입니다. 그러나 양 법률의 이념과 취지가 다르면 당연히 별개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노동법질서에서 근로자의 개념은 이렇게 달리 해석되는 대표적인 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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