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는 변호사 등 법률전문가의 자문을 거치기에 드물지만, 과거에는 드라마 작가가 법률지식이 일천하기에 황당한 실수를 많이 했습니다. ‘피고인’이 아닌 ‘피고’에게 징역을 선고하는 것은 애교에 속했습니다. 민사재판을 하는 극중 변호사가 ‘공판’을 한다고 하는 황당한 실수를 수시로 했습니다. ‘공소장’, ‘공소’, ‘공판’, ‘공판조서’, ‘공소시효’ 등 ‘공’자로 시작하는 것은 모두 형사재판에서만 쓰이는 말이고, ‘피고인’도 형사재판의 당사자, 즉 죄인임에도 민사재판을 다루는 드라마에서 버젓이 쓰였습니다. 비록 과거의 일이지만 방송국에서 제작하는 드라마에서도 이런 상황인데, 일상생활에서 법률용어의 실수는 흔히 안 봐도 비디오 수준입니다.
○일상생활에서 헷갈리는 실수 중에서 흔한 것이 임금채권의 ‘소멸시효’와 임금체불 사용자의 형사처벌의 시효를 말하는 ‘공소시효’입니다. 임금채권 자체의 존속기간인 소멸시효는 3년이지만, 그 임금채권을 체불한 사용자의 처벌가능기간, 즉 형사소추권의 존속기간인 공소시효는 5년입니다. 이것을 헷갈리는 분들이 꽤나 있습니다. 소박한 시민들이 법률상의 시효, 가령, 형의 시효, 형의 실효기간, 각종 행정처분의 제척기간, 민법상의 권리행사기간 등을 명확하게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주택임대차를 둘러싸고 발생하는 각종 권리행사기간도 자주 헷갈립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련의 법률상의 기간은 그 의미가 각각 다릅니다. 소박한 시민들은 왜 이렇게 법률상의 기간은 그 성격이 제각각인가 강한 불만을 표시하기 마련입니다. 그 이유는 국회에서 제정할 때부터 다른 개념으로 규정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법률상의 기간의 개념이 단순하면 판사가 제일 좋아할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세상이 복잡다기하기에 법률상의 기간도 그에 따라 복잡할 수밖에 없습니다. 실은 그것이 숙명입니다. 노동법의 영역이라고 하여 법률상의 기간이 단순한 것은 아닙니다. 다음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동조합법)’상의 단체협약의 존속기간 및 자동연장조항에 대한 대법원의 판례(대법원 2015. 10. 29. 선고 2012다71138 판결)입니다.
○이 판례를 이해하기 위하여는 단체협약의 의미를 선결적으로 이해하여야 합니다. 노동조합은 기본적으로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를 전제로 합니다. 그 근로자가 기존에 자신이 체결한 근로계약과 별반 차이가 없는 단체협약이라면 굳이 노동조합에 가입할 동인이 없습니다. 뭔가 이득이 있고 생기는 것이 있어야 노조비를 내고 노동조합활동을 합니다. 아무 것도 생기는 것이 없다면 굳이 머리에 띠를 두르고 노조조끼까지 사서 입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 단체협약이기에, 단체협약의 유효기간인 2년(현행법은 3년)이 경과했다고 하여 당연히 효력이 사라진다는 것은 당사자의 가정적 의사에 반합니다. 사람은 기득권을 수호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뼈 빠지게 노조활동을 하여서 쟁취한 단체협약을 단지 새로운 단체협약의 체결이 없다고 하여 무위로 돌리려는 단체협약을 체결했다고 해석하는 것은 어쩌면 노조의 본질에도 반하는 해석입니다. 그래서 노동조합법은 제32조 제3항에 ‘단체협약의 유효기간이 만료되는 때를 전후하여 당사자 쌍방이 새로운 단체협약을 체결하고자 단체교섭을 계속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단체협약이 체결되지 아니한 경우에는 별도의 약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종전의 단체협약은 그 효력만료일부터 3월까지 계속 효력을 갖는다.’라고 규정하여 새로운 단체협약을 체결하지 못했어도 3개월까지는 효력을 갖는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를 여후효(餘後效)라 합니다.
○그러나 3개월 이내에 새로운 단체협약이 체결된다는 보장은 불가능합니다. 실무상 단체협약을 체결하는 데 6개월 이상 걸리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위 대법원 판례에서는 새로운 단체협약이 언제 체결될지 모르는 상황임을 고려하여 그 기간 및 자동연장조항을 ‘불확정기한부 자동연장조항’이라 풀이하였습니다. 노동조합활동이 뜸한 경우에는 이러한 ‘불확정기한부 자동연장조항’이 마냥 늘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말하자면, 노조 위원장 등 노조구성 등의 사유로 2년이 넘도록 종전의 단체협약이 그냥 유지되는 경우입니다.
○대법원은 이런 경우에 대하여 ‘노동조합법 각 규정의 내용과 상호관계, 입법 목적 등을 종합하여 보면, 단체협약이 노동조합법 제32조 제1항, 제2항의 제한을 받는 본래의 유효기간이 경과한 후에 불확정기한부 자동연장조항에 따라 계속 효력을 유지하게 된 경우에, 그 효력이 유지된 단체협약의 유효기간은 노동조합법 제32조 제1항, 제2항에 의하여 일률적으로 2년으로 제한되지는 아니한다고 봄이 타당하다.’라고 판시하여 2년(현행법상 3년)이 경과되어도 유효하다고 판시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이런 경우에는 마르고 닳도록 종전의 단체협약이 사실상 적용되는 셈입니다. 단체협약 미갱신의 불이익은 노동조합이 지는 것임을 간접적으로나 확인할 수 있습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32조(단체협약 유효기간의 상한) ① 단체협약의 유효기간은 3년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에서 노사가 합의하여 정할 수 있다. ② 단체협약에 그 유효기간을 정하지 아니한 경우 또는 제1항의 기간을 초과하는 유효기간을 정한 경우에 그 유효기간은 3년으로 한다. ③ 단체협약의 유효기간이 만료되는 때를 전후하여 당사자 쌍방이 새로운 단체협약을 체결하고자 단체교섭을 계속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단체협약이 체결되지 아니한 경우에는 별도의 약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종전의 단체협약은 그 효력만료일부터 3월까지 계속 효력을 갖는다. 다만, 단체협약에 그 유효기간이 경과한 후에도 새로운 단체협약이 체결되지 아니한 때에는 새로운 단체협약이 체결될 때까지 종전 단체협약의 효력을 존속시킨다는 취지의 별도의 약정이 있는 경우에는 그에 따르되, 당사자 일방은 해지하고자 하는 날의 6월전까지 상대방에게 통고함으로써 종전의 단체협약을 해지할 수 있다. <대법원 판례1>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동조합법’이라 한다) 제32조 제1항, 제2항이 단체협약의 유효기간을 2년으로 제한한 것은, 단체협약의 유효기간을 너무 길게 하면 사회적·경제적 여건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여 당사자를 부당하게 구속하는 결과에 이를 수 있어 단체협약을 통하여 적절한 근로조건을 유지하고 노사관계의 안정을 도모하려는 목적에 어긋나게 되므로, 유효기간을 일정한 범위로 제한함으로써 단체협약의 내용을 시의에 맞고 구체적인 타당성이 있게 조정해 나가도록 하자는 데에 뜻이 있다. 따라서 단체협약의 당사자인 노동조합과 사용자가 2년을 초과하는 단체협약의 유효기간을 정하더라도, 단체협약의 유효기간은 노동조합법 제32조 제1항, 제2항의 제한을 받아 2년으로 단축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한편 노동조합법 제32조 제3항 단서는 단체협약이 유효기간 경과 후에도 불확정기한부 자동연장조항에 따라 계속 효력을 가지게 된 경우에는 당사자 일방이 해지하고자 하는 날의 6개월 전까지 상대방에게 통고하여 종전의 단체협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이는 노동조합법 제32조 제1항 및 제2항에도 불구하고 단체협약 자치의 원칙을 어느 정도 존중하면서 단체협약 공백 상태의 발생을 가급적 피하려는 목적에서, 사전에 불확정기한부 자동연장조항에 의하여 일정한 기한 제한을 두지 아니하고 유효기간이 경과한 단체협약의 효력을 새로운 단체협약 체결 시까지 연장하기로 약정하는 것을 허용하되, 단체협약의 유효기간을 제한한 입법 취지가 훼손됨을 방지하고 당사자로 하여금 장기간의 구속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고 아울러 새로운 단체협약의 체결을 촉진하기 위하여, 6개월의 기간을 둔 해지권의 행사로 언제든지 불확정기한부 자동연장조항에 따라 효력이 연장된 단체협약을 실효시킬 수 있게 한 것이다. 이러한 노동조합법 각 규정의 내용과 상호관계, 입법 목적 등을 종합하여 보면, 단체협약이 노동조합법 제32조 제1항, 제2항의 제한을 받는 본래의 유효기간이 경과한 후에 불확정기한부 자동연장조항에 따라 계속 효력을 유지하게 된 경우에, 효력이 유지된 단체협약의 유효기간은 노동조합법 제32조 제1항, 제2항에 의하여 일률적으로 2년으로 제한되지는 아니한다. (대법원 2015. 10. 29. 선고 2012다71138 판결) <대법원 판례2>단체협약이 실효되었다고 하더라도 임금, 퇴직금이나 노동시간, 그밖에 개별적인 노동조건에 관한 부분은 그 단체협약의 적용을 받고 있던 근로자의 근로계약의 내용이 되어 그것을 변경하는 새로운 단체협약, 취업규칙이 체결·작성되거나 또는 개별적인 근로자의 동의를 얻지 아니하는 한 개별적인 근로자의 근로계약의 내용으로서 여전히 남아 있어 사용자와 근로자를 규율한다고 할 것이다. (대법원 2000. 6. 9.선고 98다13747판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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