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선대원군이 집권하자마자 제일 먼저 한 것이 유명서원을 제외하고 전국의 서원을 철폐한 일입니다. 21세기 현대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당시에는 가능했습니다. 아무튼 서원철폐를 흥선대원군이 감행한 것은 서원이 선비들이 자신들의 본연의 임무인 서적을 읽고 유학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서민들을 수탈하고 사적인 형벌을 부과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비결은 바로 덕업상권(德業相勸)과 과실상규(過失相規)라는 자치규약의 악용입니다.
○요즘에는 훈계라는 말이 훈장질이나 훈계질이라는 비하적인 의미를 담은 말이지만, 조선시대에는 자칭 선비들이 백성들을 가르치고 계도한다는 빌미로 사용했고, 훈계를 빌미로 백성들에게 린치를 가했습니다. 남이 잘못을 하더라도 사법기관이 하면 될 것을 왜 자기들이 훈계를 빌미로 린치를 하고 금전을 갈취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을 언필칭 선비라는 사람들이 자행하였습니다. 급기야 서원의 해악이 독보다 더 독하다는 웃지 못할 말이 백성들의 입에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요즘에도 선비의 훈계질 DNA를 물려받은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남의 일에 이래라저래라 말을 하면서 ‘오지라퍼’ 또는 ‘프로불편러’라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인데, 짜증을 유발한다고 해서 그들은 ‘짜증유발자’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남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을 형벌로 처벌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형법에는 공무원에게만 적용되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라는 것과 일반시민에게 적용되는 ‘강요죄’라는 것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남에게 훈장질을 해대면서 강요를 하는 사람을 처벌하면 세상이 좋아질 것 같기는 합니다만, 현실에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와 강요죄는 처벌이 어렵습니다. 그 이유를 알아봅니다.
○사장은 근로자에게 판매목표 등 일정한 업무를 강요하는 것이 보통이고, 교사는 학생에게 성적의 향상을 강요하고, 프로야구 감독은 타자에게 고타율을 강요하는 등 우리사회에서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상대에게 일정한 행동을 강요하는 것이 관행화되었습니다. 특히 전술한 대로, 서원에서 패악을 일삼던 선비들의 DNA가 알게 모르게 국민에게 주입이 되어서 일정한 행위의 강요 자체는 우리의 일상이 되었습니다. 공부를 하라고 자식들에게 훈계를 하는 부모들은 모두 감옥에 가야한다면 불행한 결과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도덕적 비난은 별론으로 강요죄의 성립은 어렵습니다.
○김용건이 낙태강요미수죄라는 죄목으로 피소가 되었다고 합니다. 법률을 모르는 사람은 낙태죄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오해를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낙태죄는 미수죄가 없습니다. 그래서 낙태교사미수죄나 낙태미수죄 모두 성립하기 어렵습니다. 낙태라는 글자와는 무관하게 그 실질은 강요죄의 미수, 즉 강요미수죄로 피소된 것입니다. 그런데 강요죄 자체가 현실에서 유죄로 인정받기 어렵기 때문에 강요미수죄로 처벌받기는 더욱 어렵습니다.
○낙태는 출산 및 육아를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행위는 자유롭게 가능하겠지만, 출산 및 육아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돈이 필요합니다. 이것을 준비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출산 및 육아는 그 자체가 고통입니다. 태아를 사람과 완전하게 동일시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낙태죄를 살인죄와 동일시하지 않은 형법의 규정은 다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보수카톨릭과 달리 낙태를 허용하는 교리를 담은 종교도 존재합니다.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낙태를 허용하자는 의견도 유력합니다.
○낙태란 현실적으로 임산부가 행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육아 및 출산의 문제와 직결되기에 임산부의 파트너인 남자와 갈등에서 시작합니다. 그래서 낙태강요죄의 주체가 남자가 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를 낳자 말자를 반복하면서 극한대립의 형태로 다투는 양상은 밤하늘의 별처럼 많습니다. 심지어 부부 간에도 존재합니다. 이런 사연을 모두 범죄로 한다면 법을 빙자한 가정의 파괴이고 사생활에 무리한 법률의 침투입니다. 그리고 조선시대 서원의 선비처럼 오지랖이자 과도한 훈계질입니다. 김용건에 대한 도덕적 비난은 각자의 주관에 따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형법상 강요미수죄의 처벌은 불가합니다.
<형법> 제269조(낙태) ① 부녀가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②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어 낙태하게 한 자도 제1항의 형과 같다. ③ 제2항의 죄를 범하여 부녀를 상해에 이르게 한때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사망에 이르게 한때에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제31조(교사범)① 타인을 교사하여 죄를 범하게 한 자는 죄를 실행한 자와 동일한 형으로 처벌한다. ② 교사를 받은 자가 범죄의 실행을 승낙하고 실행의 착수에 이르지 아니한 때에는 교사자와 피교사자를 음모 또는 예비에 준하여 처벌한다. ③ 교사를 받은 자가 범죄의 실행을 승낙하지 아니한 때에도 교사자에 대하여는 전항과 같다. 제324조(강요)①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하거나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② 단체 또는 다중의 위력을 보이거나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여 제1항의 죄를 범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제324조의5(미수범) 제324조 내지 제324조의4의 미수범은 처벌한다. 제123조(직권남용)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강요죄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하거나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는 범죄이다. 여기에서 협박은 객관적으로 사람의 의사결정의 자유를 제한하거나 의사실행의 자유를 방해할 정도로 겁을 먹게 할 만한 해악을 고지하는 것을 말한다. 이와 같은 협박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발생 가능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 정도의 구체적인 해악의 고지가 있어야 한다. 행위자가 직업이나 지위에 기초하여 상대방에게 어떠한 이익 등의 제공을 요구하였을 때 그 요구 행위가 강요죄의 수단으로서 해악의 고지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행위자의 지위뿐만 아니라 그 언동의 내용과 경위, 요구 당시의 상황, 행위자와 상대방의 성행·경력·상호관계 등에 비추어 볼 때 상대방으로 하여금 그 요구에 불응하면 어떠한 해악에 이를 것이라는 인식을 갖게 하였다고 볼 수 있는지, 행위자와 상대방이 행위자의 지위에서 상대방에게 줄 수 있는 해악을 인식하거나 합리적으로 예상할 수 있었는지 등을 종합하여 판단해야 한다. (출처 : 대법원 2020. 2. 13. 선고 2019도5186 판결) 피고인이 결혼을 전제로 교제하던 여성 갑의 임신 사실을 알고 수회에 걸쳐 낙태를 권유하였다가 거부당하자, 갑에게 출산 여부는 알아서 하되 더 이상 결혼을 진행하지 않겠다고 통보하고, 이후에도 아이에 대한 친권을 행사할 의사가 없다고 하면서 낙태할 병원을 물색해 주기도 하였는데, 그 후 갑이 피고인에게 알리지 아니한 채 자신이 알아본 병원에서 낙태시술을 받은 사안에서, 피고인은 갑에게 직접 낙태를 권유할 당시뿐만 아니라 출산 여부는 알아서 하라고 통보한 이후에도 계속 낙태를 교사하였고, 갑은 이로 인하여 낙태를 결의·실행하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며, 갑이 당초 아이를 낳을 것처럼 말한 사실이 있다는 사정만으로 피고인의 낙태교사행위와 갑의 낙태결의 사이에 인과관계가 단절되는 것은 아니라는 이유로, 피고인에게 낙태교사죄를 인정한 원심판단은 정당하다. (대법원 2013. 9. 12. 선고 2012도2744 판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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