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서방면’, 그리고 국민연금법상의 노령연금>

○사람의 이름으로 외국 또는 외국인을 상징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가령, ‘왕 서방’으로 중국인을 상징하고, 캐리트레이드(자국화폐로 외국에 투자하는 경우)를 하는 주체를 ‘스미스 부인(미국 달러화)’, ‘와타나베 부인(일본의 엔화)’으로 상징하는 경우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왕 서방’은 희화적인 의미로 주로 쓰였습니다. 소설가 김동인의 ‘감자’에서 등장하는 ‘왕 서방’은 중국인으로 탐욕과 성욕에 찌든 부도덕한 인물로 그리고 있습니다. ‘눈물 젖은 두만강’의 고 김정구가 부른 ‘왕 서방 연서’도 그런 유형입니다. 왕 서방은 오랜 기간 중국인의 상징으로 쓰였습니다. 그래서 다음 동영상처럼 ‘왕서방면’이 등장했습니다. 이경규도 이 시절에 ‘엉터리 중국어’를 개그캐릭터의 소재로 삼았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V3vObWILD3c

 

 

○그런데 ‘왕서방면’은 금새 ‘중화우동면’으로 바뀌었습니다. 왕 씨 성(姓)을 지닌 자녀가 학교에서 놀림을 받는다는 이유에 기인했습니다. 동일한 버전의 광고도 새로 제작했습니다. 그러나 ‘왕서방면’의 인기는 금새 시들했습니다. ‘왕서방면’이라는 임팩트에 비해 ‘중화우동면’은 약했기 때문입니다. 이 시절만 해도 한중수교가 이루어지기 전이기 때문에 중국이나 중국인하면 자장면, 중공, 인해전술, 공산당 등의 막연한 연상 외에는 국민의 감정을 자극하는 경우가 없었습니다. 수교도 이루어지고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 이제 국민의 90%는 반중을 넘어 혐중이 국민정서가 되었습니다.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는 ‘중국인이 건강보험 30억 혜택’이라는 구호로 보수성향의 유권자를 잡아두는 짭짤한 재미를 봤습니다.

 

○‘사드 사태’에서 반중정서는 극대화되었습니다. 이제 보수성향의 언론은 반중정서를 자극하는 제목의 기사는 기본패턴이 되었습니다. 당연히 극우성향의 네티즌은 중국과 중국인 혐오를 쏟아냈습니다. 다음 <기사>의 제목도 ‘한국서 매달 노령연금 받는 중국인들…올해만 100억 챙겼다’라고 뽑아서 ‘반중장사’를 하고 있습니다. 명동에서 쇼핑으로 한국에 ‘돈을 뿌리는’ 중국인은 ‘유커(游客)’ 또는 ‘따거(大哥)’로 추켜세우면서도 ‘돈을 챙기는’ 중국인은 혐오의 대상인지 유감입니다. 강남에서 성형시술로, 그리고 지방사립대에 등록금을 납부하고 유학하는 중국인이 뿌리는 돈은 달달하지만, 적법하게 노령연금을 취득하는 중국인은 꽤나 미운 모양입니다. 게다가 국민연금법상의 노령연금은 10년 이상의 국민연금보험료 외에 한국과 중국 간의 사회보장협정이라는 국제조약을 통과해야 중국인이 받을 수 있는 돈입니다(국민연금법 제61조, 제126조, 제127조).

 

○다음 <기사>는 ‘노령연금은 통상적으로 국민연금에 10년 이상 가입하면 65세 이후로 평생동안 매달 지급되는 연금이다.’라고 서술하고 있지만, 현행 국민연금법 부칙상으로는 만 65세 이상인 경우에 노령연금을 받는 것은 1969년생부터입니다. 물론 이것은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문제는 ‘노령연금을 수급하는 외국인이 올해 처음으로 1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중 절반 이상이 중국인이었다.’라는 것을 비롯하여 <기사> 전반에 중국인이 노령연금을 받는 것이 대단히 문제인 것으로 서술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한국인이 미국에서, 그리고 독일에서 국민연금에 준하는 공적연금을 받는 경우가 꽤나 많이 있습니다. <기사>의 논거대로라면, 해당국에서 공적연금을 받는 한국인이 받을 수 있는 핍박은 생각하지 않는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중국에서 공적연금을 받는 한국인을 도외시하지 않는가, 라는 생각도 듭니다.

 

○더 큰 문제는 국민연금 수급자인 외국인의 수급자격입니다. 대부분 직장가입자로 국민연금 보험료를 납부한 사람들입니다. 지역가입자로 가입하려면 사업자등록을 내고 자기 사업을 행해야 10년 이상의 국민연금보험료를 납부할 수 있습니다. 근로자이든 사업주이든 10년을 납부했다는 것은 합법적인 경제활동을 그 기간 동안 했다는 의미입니다. 의식주활동을 하면서 어떤 식으로든 국민경제에 이바지했다는 의미입니다. 바로 이 대목이 중요합니다. 한국은 외국인근로자가 없으면 당장 조선업은 물론, 건설업, 제조업, 나아가 기초산업 전반의 운영이 불가능한 나라입니다. 혐오와 저주만으로 국민경제가 운영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저는 중국인이라면 짜증부터 납니다. 그러나 이런 감정만으로 국민경제를 운영할 수는 없습니다.

 

○지난 대선기간 윤석열 후보는 ‘반중’이 선거공약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선 이후에도 ‘탈중국’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전에는 중국과의 교류협력의 확대를 주장하더니 시진핑의 방한을 적극 추진한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대안도 없이 반중정서로 선거를 치르다가 선거 이후에는 넙죽 엎드리는 것이 정치의 정도인지 의문입니다. 국민은 어리둥절합니다. 그렇게나 반중을 외치더니 왜 ‘친중’으로 돌아섰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위대한 업적은 북방외교입니다. 구 소련(러시아)와 중국을 비롯한 공산권과 수교를 확대해서 한국의 국익을 증진한 것입니다. 보수정부, 진보정부 가릴 것 없이 양대 강국과 교류를 통하여 국민경제의 도약에 지대한 공헌을 했습니다. 삼성전자는 사드보복기간에도 중국에 반도체를 엄청나게 팔아서 떼돈을 번 것도 사실입니다. 중국과 무역전쟁을 하면서도 미국은 엄청난 양의 중국물자를 사들였습니다. 전쟁과 무역은 별개입니다. 한국경제는 수출은 물론 수입에서도 중국의존도가 높은 상황입니다.

 

○일본에서는 ‘혐한’이 하나의 문화코드입니다. 혐한서적이 아예 서점의 코너를 차지하고 있으며, 방송 프로그램 중에서 혐한토크쇼가 있을 정도입니다. 그런다고 일본의 경제가 도약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찌질한 이미지를 구축했습니다. 대다수 한국인은 혐한코드에 무관심했습니다. 대만의 혐한정서에는 한술 더 떴습니다. 이렇게나 대국적인 한국인의 태도가 왜 이리 중국에는 협소한지 모르겠습니다. 반중정서보다는 용중(用中)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하루종일 한강에서 중국과 중국인을 욕한다고 하늘에서 돈이나 밥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실용의 정신으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기사> 노령연금을 수급하는 외국인이 올해 처음으로 1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중 절반 이상이 중국인이었다. 21일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이 국민연금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6월말 기준으로 노령연금을 수급하고 있는 외국인 수는 1만410명에 달했다. 노령연금은 통상적으로 국민연금에 10년 이상 가입하면 65세 이후로 평생 동안 매달 지급되는 연금이다. 올해 상반기 외국인에 지급된 노령연금 지급액은 267억8800만원이었다. 국적별로 살펴보면 중국인이 5571명으로 전체의 53.5%였고, 수령 금액은 101억700만원이었다. 중국인 1인당 181만원 꼴, 한달에 30만원 수준이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15/0005046885?sid=102 <국민연금법> 제61조(노령연금 수급권자) ① 가입기간이 10년 이상인 가입자 또는 가입자였던 자에 대하여는 60세(특수직종근로자는 55세)가 된 때부터 그가 생존하는 동안 노령연금을 지급한다. ② 가입기간이 10년 이상인 가입자 또는 가입자였던 자로서 55세 이상인 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소득이있는 업무에 종사하지 아니하는 경우 본인이 희망하면 제1항에도 불구하고 60세가 되기 전이라도 본인이 청구한 때부터 그가 생존하는 동안 일정한 금액의 연금(이하 “조기노령연금”이라 한다)을 받을 수 있다. 제127조(외국과의 사회보장협정) 대한민국이 외국과 사회보장협정을 맺은 경우에는 이 법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의 가입, 연금보험료의 납부, 급여의 수급 요건, 급여액의 산정, 급여의 지급 등에 관하여 그 사회보장협정에서 정하는 바에 따른다. 제126조(외국인에 대한 적용) ① 이 법의 적용을 받는 사업장에 사용되고 있거나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으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자 외의 외국인은 제6조에도 불구하고 당연히 사업장가입자 또는 지역가입자가 된다. 다만, 이 법에 따른 국민연금에 상응하는 연금에 관하여 그 외국인의 본국 법이 대한민국 국민에게 적용되지 아니하면 그러하지 아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