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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노무관리/최저임금관리

<징병제와 최저임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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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는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은 국가차원에서는 이름제도문화로 변환해도 그 의미가 통합니다. 로마가 멸망했더라도 로마의 건축기술, 라틴어, 그리고 법률 등 찬란한 문화유산과 제도는 아직까지 서양문화의 근간이 되었습니다. 중국은 동양문화의 근간이기에 당대는 물론 현세까지 동양 각국의 문화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한자입니다. 한글화시대가 되었지만, 조어에 있어서 한자는 탁월한 효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고대에는 강한 영향을 끼쳤지만, 지금은 희미한 자취만을 남긴 것이 정치제도와 조세제도입니다.

 

당나라의 율령은 삼국이 앞다투어 도입을 하여 고대왕국의 기틀을 다졌습니다. 조용조(租庸調) 세제는 조선왕조까지 세제의 근간이 되었습니다. ()는 수확량에 따라 결정되는 전세(田稅), (調)는 물납을 기본으로 하는 현물세를, 그리고 용()이란 정남(丁男)이 부담하는 역무(役務)를 말합니다. 특히 정남에게 부과되는 역무는 군역과 노역이 있었습니다. 조선시대의 호패는 정남, 즉 용역을 부과하는 성인 남자의 노동력을 파악하려는 제도임은 이미 국사 교과서에도 서술되어 있습니다. 통일신라시대를 배경으로 한 신라장적(新羅帳籍)의 주요 제작 취지도 당연히 노동력의 확보입니다. 농경사회에서는 노동력이 재산이기에, 삼국시대 이래로 조선왕조까지 지배계층은 노골적으로 노비에게 다산을 장려했습니다.

 

현대에 이르러 대다수의 국가는 모병제를 통하여 사병에게 정당한 임금을 지급하는 것이 보편화되었으나, 한국과 같이 징병제를 채택하는 나라에서 사병에 대한 처우를 어떻게 하는가에 대하여는 각국의 사정에 따라 다릅니다. 한국은 오랜 기간 징병제의 타성에 젖어, 그리고 6.25의 참화를 강조하여 징병된 사병에게는 쥐꼬리만한 월급이 정당하며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남자는 사람도 아니라는 일명 가스라이팅이 보편화되었습니다. 그런데 노동력도 일종의 재화로 보아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당연한 자본주의 한국에서 오랜 기간 사병에 대한 정당한 처우, 특히 최저임금에도 반하는 처우를 하는 것의 정당성은 일부에서 논쟁의 영역에 그쳤습니다.

 

그러다가 사병에 대한 최저임금의 적용여부는 마침내 헌법재판소의 심판대상(헌법재판소 2012. 10. 25. 선고 2011헌마307 전원재판부)이 되었습니다. 군인은 기본적으로 공무원입니다. 따라서 헌법재판소에서는 공무원의 임금인 공무원보수규정이라는 대통령령에 규정된 ()’의 급여표(구 공무원보수규정 제5조 중별표13)에 대한 헌법소원의 형식으로 다투어졌습니다. 군인 신분인 사병은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는 당연히 아니기에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를 전제로 하는 최저임금법은 적용대상이 아닙니다. 그러나 최저임금법은 최저생계비를 전제로 지정·고시되며, 공무원법령도 근로기준법을 보충적으로 적용하기에 최저임금법이 지정한 최저임금수준은 그냥 무시할 사안은 아닙니다.

 

징병제를 채택함에 따라 근로의 권리, 나아가 최저임금을 받을 권리를 침해받는다는 청구인의 주장에 대하여 헌법재판소는 근로의 권리는 사회적 기본권으로서 국가에 대하여 직접 일자리를 청구하거나 일자리에 갈음하는 생계비의 지급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고용증진을 위한 사회적·경제적 정책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에 그치며, 근로의 권리로부터 국가에 대한 직접적인 직장존속청구권이 도출되는 것도 아니라면서, ‘최저임금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가 바로 헌법 제32조 제1항의 근로의 권리에 의하여 보장된다고 보기는 어려우므로, 이 사건 병의 봉급표가 청구인의 근로의 권리를 침해한다고 할 수 없다.’라고 판시를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주목되는 것은 헌법재판소는 사병의 처우가 최저임금과 무관한 것은 아니라는 암묵적 전제가 깔린 것으로 해석이 될 수 있는 판시를 한 점입니다. 사병으로 군복무를 하는 경우에도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는 누려야 하므로, 인간다운 생활의 전제인 최저임금의 취지는 사병에도 투영되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다만, 헌법재판소는 장기복무 장교, 장기복무 부사관, 준사관 등의 직업군인들과 현역병은 모두 현역 군인으로서 복무의 대가로 일정한 보수를 지급받고 있다는 점에서 서로 유사한 지위(비교집단)에 있다고 할 수 있다.’는 전제에서 양자의 차별을 주목하였습니다. 그런데 헌법재판소는 군복무의 대가로 지급되는 군인의 보수에 있어서 군복무를 직업으로 선택한 직업군인에게는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당할 정도의 상당한 보수를 지급할 필요가 있는 반면, 병역의무를 이행하기 위하여 비교적 단기간 군복무를 하는 현역병은 의무복무기간 동안 병영에서 생활하도록 하는 한편 의무복무에 필요한 급식비, 피복비 등의 모든 의식주 비용을 국고에서 지급하도록 하고 있어서 현역병의 의무복무에 대하여 지급하는 보수는 직업군인들과는 달리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할 정도에 이를 필요는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는 청구인의 헌법소원청구를 기각하였습니다.

 

그런데 국군창건이래 사병이 피복 등을 포함한 전반적인 처우가 최저생계비에 부합했는가는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신체의 자유 등을 제한한 대가는 당연히 최저생계비 이상이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조선시대처럼 정남에게만 이렇게 병역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성인 남자에게 가혹한 측면이 있습니다. 징병제를 채택하더라도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무엇보다도 숙식 및 의류비용을 공제한 최저임금으로 환산한 복무대가는 지급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최저임금법>
5(최저임금액)최저임금액(최저임금으로 정한 금액을 말한다. 이하 같다)은 시간ㆍ일()ㆍ주() 또는 월()을 단위로 하여 정한다. 이 경우 일ㆍ주 또는 월을 단위로 하여 최저임금액을 정할 때에는 시간급(時間給)으로도 표시하여야 한다.
1년 이상의 기간을 정하여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수습 중에 있는 근로자로서 수습을 시작한 날부터 3개월 이내인 사람에 대하여는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제1항에 따른 최저임금액과 다른 금액으로 최저임금액을 정할 수 있다. 다만, 단순노무업무로고용노동부장관이 정하여 고시한직종에 종사하는 근로자는 제외한다.
임금이 통상적으로 도급제나 그 밖에 이와 비슷한 형태로 정하여져 있는 경우로서 제1항에 따라 최저임금액을 정하는 것이 적당하지 아니하다고 인정되면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최저임금액을 따로 정할 수 있다.


<헌법재판소 판례>
헌법 제32조 제1항 전단은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진다.”라고 규정하여 근로의 권리를 보장하고 있고, 이러한 근로의 권리 보장은 생활의 기본적인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생활수단을 확보해 주며, 나아가 인격의 자유로운 발현과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해 주는 의의를 지닌다. 그러나 이러한 근로의 권리는 사회적 기본권으로서 국가에 대하여 직접 일자리를 청구하거나 일자리에 갈음하는 생계비의 지급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고용증진을 위한 사회적·경제적 정책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에 그치며, 근로의 권리로부터 국가에 대한 직접적인 직장존속청구권이 도출되는 것도 아니다.


나아가 헌법 제32조 제1항 후단은 국가는 사회적·경제적 방법으로 근로자의 고용의 증진과 적정임금의 보장에 노력하여야 하며,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최저임금제를 시행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어서 근로자가 최저임금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도 헌법상 바로 도출되는 것이 아니라 최저임금법 등 관련 법률이 구체적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비로소 인정될 수 있다(헌재 2011. 7. 28. 2009헌마408, 공보 178, 1121, 1126 참조).


따라서 최저임금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가 바로 헌법 제32조 제1항의 근로의 권리에 의하여 보장된다고 보기는 어려우므로, 이 사건 병의 봉급표가 청구인의 근로의 권리를 침해한다고 할 수 없다.


중략
현역병은 병역의무를 이행하는 단기복무 군인인 반면 직업군인은 군복무를 직업으로 선택한 직업공무원이므로, 직업군인에 대하여는 군인의 특수성으로 인하여 받는 권리의 제한 외에는 일반 직업공무원에 상응하는 수준의 처우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고, 이는 병역법이 정한 병역의무를 마치지 아니한 상태에서 직업군인을 선택한 경우라 하여 달리 볼 것은 아니다.
따라서 군복무의 대가로 지급되는 군인의 보수에 있어서 군복무를 직업으로 선택한 직업군인에게는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당할 정도의 상당한 보수를 지급할 필요가 있는 반면, 병역의무를 이행하기 위하여 비교적 단기간 군복무를 하는 현역병은 의무복무기간 동안 병영에서 생활하도록 하는 한편 의무복무에 필요한 급식비, 피복비 등의 모든 의식주 비용을 국고에서 지급하도록 하고 있어서 현역병의 의무복무에 대하여 지급하는 보수는 직업군인들과는 달리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할 정도에 이를 필요는 없다.
그러므로 이 사건 병의 봉급표가 이러한 차이점을 고려하여 직업군인으로 임용되어 복무하는 자와 현역병으로 복무하는 자의 보수를 다르게 규정한 것은 합리적 이유가 있는 것이어서 청구인의 평등권을 침해하지 아니한다.
(헌법재판소 2012. 10. 25. 선고 2011헌마307 전원재판부 [공무원보수규정제5조중별표13등위헌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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