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은 일도양단의 판단을 내립니다. 그 일도양단의 대상은 합법과 불법이라는 두 가지의 선택지입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무한한 선택지가 있습니다. 단순한 선택지를 지닌 윷놀이를 보더라도 5가지이며, 천태만상의 가능성이 상존하는 일상에서는 그 이상의 선택지가 있습니다. 그래서 법원은 다양한 증거를 토대로 일도양단의 판단을 하게 되고, 그 부담을 완화하려고 조정이라는 절차를 도입합니다. 그리고 판단의 과정에서 법원(法源)에서 유래한 원칙에 따라 다양한 변수를 수렴합니다. 그 원칙 중의 하나가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적법행위다.’입니다. 권리행사를 함부로 위법으로 판단하면 시민의 법률생활이 혼동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민법에서 소유권 외에 점유권을 인정한 것은 권리행사의 외표가 있는 현실상태를 존중하기 위함입니다. 이러한 원칙은 무려 로마법시대부터 유래해졌습니다.
○점유자는 소유의 의사로 선의, 평온 및 공연하게 점유한 것으로 추정하고, 전후 양시에 점유한 사실이 있는 때에는 그 점유는 계속한 것으로 추정합니다. 또한 점유자가 점유물에 대하여 행사하는 권리는 적법하게 보유한 것으로 추정합니다(‘민법’ 제197조 제1항, 제198조 및 제200조). 이것은 점유권의 행사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모든 권리의 행사에도 공통적으로 적용됩니다. 이렇게 실정법으로 구현한 권리행사의 적법추정은 필연적으로 권리남용의 원칙에도 이어집니다. 민법에는 권리남용금지의 원칙이 규정되어 있는데, 이 남용여부는 외관상으로는 권리의 행사와 같이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의무자를 해하고 공공의 복리에 반하여 권리행사라고 할 수 없는 경우를 의미합니다. 그 연원은 권리중심의 로마법체계에서 기원했는데, 이렇게 남용한 권리행사에 대하여는 이를 용인할 필요가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불법행위가 되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것이 확립된 법리입니다.
○‘권리남용금지의 원칙’은 19세기 중엽 권리행사가 보다 자유로웠던 프랑스에서 판례를 통해서 인정되었고, 그 후 독일민법에서 이른바 ‘시카네(Schikane)’ 금지를 명문화 하였습니다다. Schikane는 프랑스어 chicane(괴롭히다, 트집 잡다)에서 유래한 것으로 권리행사의 사회적 수용의 한계를 넘은 경우를 말합니다. 근로기준법은 부당해고를 금지하고 있으며, 대법원은 그 부당해고에 대하여 무효라는 확립된 법리를 전개하였습니다. 그런데 부당해고가 원직복직이라는 근로기준법 규정 외에 피해자인 근로자가 가해자인 사용자에게 손해배상청구권을 갖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민법 제750조가 규정하는 불법행위에 의한 손해배상청구권에서 ‘불법행위’란 널리 ‘법질서 전체에 반하는 행위’로 보는 것이 확립된 대법원의 견해이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는 전술한 시카네 금지와 연결시켜 생각해야 합니다. 해고는 외견상 사용자의 권리행사, 구체적으로는 인사권의 행사라는 외표를 구비하기 때문입니다. 대법원(대법원 1996. 4. 23. 선고 95다6823 판결)도 ‘①사용자가 근로자에 대하여 징계해고 등을 할 만한 사유가 전혀 없는데도 오로지 근로자를 사업장에서 몰아내려는 의도하에 고의로 어떤 명목상의 해고사유 등을 내세워 징계라는 수단을 동원하여 해고 등의 불이익처분을 한 경우나, ②해고 등의 이유로 된 어느 사실이 취업규칙 등 소정의 징계사유에 해당되지 아니하거나 징계사유로 삼을 수 없는 것임이 객관적으로 명백하고 또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더라면 이와 같은 사정을 쉽게 알아 볼 수 있는데도 그것을 이유로 징계해고 등의 불이익처분을 한 경우처럼’의 문구를 사용하여 시카네 금지의 법리를 전개하였습니다.
○대법원의 법리전개는 일응 타당합니다. 그런데 사용자의 시카네 상태의 증명이 관건입니다. ‘근로자를 괴롭히려는 목적’이란 전형적인 내심의 의사입니다. 로마시대에도 내심의 의사를 증명하는 것을 ‘악마의 증명(probatio diabolica)’라고 하여 극강의 난이도를 지닌 작업으로 보았습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속은 모른다.’라는 속담을 연상하면 악마의 증명의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누구나 자신은 정의롭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용자는 근로자를 악마로, 근로자는 사용자를 악마로 각각 생각합니다. 자신의 주장이 정당함을 강변합니다. 그래서 언동으로 내심을 추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내심은 그렇게 판단합니다. 그런데 다음 <기사> 속의 빌런근로자는 피해자를 자처하는 자가 오히려 시카네의 가해자와 동일한 내심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언동이 아닌 소의 제기 자체로도 이를 추단할 수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배달 신문에는 전단지가 딸려오는 것이 관행이며, 배달 음식에도 전단지가 딸려오는 것이 관행입니다. 중국집 배달원이 배달하는 경우에 전단지나 이쑤시개, 화장지 등 번들상품까지 배달하는 것은 전국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한 풍경이며, 중국집 사장님의 무리한 지시도 아닙니다. 그런데 이를 빌미로, 직장 내 괴롭힘, 부당해고에 따른 소극적 손해(일실손해), 그리고 위자료를 청구한 사안이 <기서> 속의 사안입니다. 부당해고라는 소송물과 부당해고기간의 임금상당액은 별개의 소송물이지만 병합청구(단순병합)가 보통입니다. 출근거부는 근로계약의 본질적 의무를 위반한 것이므로, 정당한 해고에 해당합니다. 위자료는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부당해고기간의 임금상당액을 받으면 인정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기사>에서 등장하는 빌런근로자는 부당해고가 아닙니다. 그러나 슬프게도 현실에서 종종 등장합니다.
○다시 시카네 금지로 돌아갑니다. <기사> 속의 사안처럼, 대다수의 해고는 징계사유가 존재하며 단지 그 징계사유가 해고가 합당하냐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따라서 시카네 금지를 적용하기 어려운 사안입니다. 또한 시카네를 증명하기까지는 엄청난 노력에 필수적인 정황증거가 수반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부당해고가 법원에서 불법행위로 인정받는 경우가 극히 이례적입니다.
<기사1> "배달할 때 전단지도 뿌려달라" 매니저 요구에 출근 거부하고 "부당해고 당했다" 2억 소송 '강제노동, 괴롭힘' 등 닥치는 대로 주장. "아내도 고통 받아" 위자료 1억9천만원 청구 법원 "전단지 업무, 배달과 관련" 해고주장 기각. 전문가들 "영세 사업주 괴롭히는 '빌런' 기승", "근로기준법 준수하고 감정적 발언 자제해야“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15/0005055235?sid=102 <근로기준법> 제23조(해고 등의 제한) ① 사용자는 근로자에게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 휴직, 정직, 전직, 감봉, 그 밖의 징벌(懲罰)(이하 “부당해고등”이라 한다)을 하지 못한다. ② 사용자는 근로자가 업무상 부상 또는 질병의 요양을 위하여 휴업한 기간과 그 후 30일 동안 또는 산전(産前)ㆍ산후(産後)의 여성이 이 법에 따라 휴업한 기간과 그 후 30일 동안은 해고하지 못한다. 다만, 사용자가 제84조에 따라 일시보상을 하였을 경우 또는 사업을 계속할 수 없게 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민법> 제750조 (불법행위의 내용)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대법원 판례> [1] 일반적으로 사용자의 근로자에 대한 해고 등의 불이익처분이 정당하지 못하여 무효로 판단되는 경우에 그러한 사유만에 의하여 곧바로 그 해고 등의 불이익처분이 불법행위를 구성하게 된다고 할 수는 없으나, 사용자가 근로자에 대하여 징계해고 등을 할 만한 사유가 전혀 없는데도 오로지 근로자를 사업장에서 몰아내려는 의도하에 고의로 어떤 명목상의 해고사유 등을 내세워 징계라는 수단을 동원하여 해고 등의 불이익처분을 한 경우나, 해고 등의 이유로 된 어느 사실이 취업규칙 등 소정의 징계사유에 해당되지 아니하거나 징계사유로 삼을 수 없는 것임이 객관적으로 명백하고 또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더라면 이와 같은 사정을 쉽게 알아 볼 수 있는데도 그것을 이유로 징계해고 등의 불이익처분을 한 경우처럼, 사용자에게 부당해고 등에 대한 고의·과실이 인정되는 경우에 있어서는 불법행위가 성립되어 그에 따라 입게 된 근로자의 정신적 고통에 대하여도 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 [2] 근로자에 대한 징계의 양정이 결과적으로 재량권을 일탈, 남용한 것이라고 인정되어 징계처분이 징계권의 남용 등으로 무효라고 판단된다 하더라도 그것이 법률전문가가 아닌 징계위원들이 징계의 경중에 관한 관련 법령의 해석을 잘못한 데 불과한 경우에는 그 징계의 양정을 잘못한 징계위원들에게 불법행위책임을 물을 수 있는 과실이 있다고 할 수는 없으며, 또한 마찬가지로 근로자에 대한 해고 등의 불이익처분을 할 당시의 객관적인 사정이나 근로자의 비위행위 등의 정도, 근로자에 대하여 불이익처분을 하게 된 경위 등에 비추어 사용자가 근로자의 비위행위 등이 취업규칙이나 단체협약 소정의 근로자에 대한 해고 등의 불이익처분 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것이 무리가 아니었다고 인정되고, 아울러 소정의 적법한 절차 등을 거쳐서 당해 불이익처분을 한 것이라면 사용자로서는 근로자에 대하여 해고 등의 불이익처분을 함에 있어서 기울여야 할 주의의무를 다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므로 비록 당해 해고 등의 불이익처분이 사후에 법원에 의하여 무효라고 판단되었다 하더라도 거기에 불법행위책임을 물을 만한 고의·과실이 있다고 할 수는 없다. [3] 사용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근로자와 사이에 근로계약의 체결을 통하여 자신의 업무지휘권·업무명령권의 행사와 조화를 이루는 범위 내에서 근로자가 근로제공을 통하여 참다운 인격의 발전을 도모함으로써 자신의 인격을 실현시킬 수 있도록 배려하여야 할 신의칙상의 의무를 부담한다. 따라서 사용자가 근로자의 의사에 반하여 정당한 이유 없이 근로자의 근로제공을 계속적으로 거부하는 것은 이와 같은 근로자의 인격적 법익을 침해하는 것이 되어 사용자는 이로 인하여 근로자가 입게 되는 정신적 고통에 대하여 배상할 의무가 있다. (대법원 1996. 4. 23. 선고 95다6823 판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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