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 작가의 소설 중에서 ‘한씨연대기’라는 것이 있습니다. 한영덕이라는 전직 평양의대 교수 겸 의사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회고하는 내용입니다. 소설 내내 의사로서의 본분(이상)과 6.25사변의 와중에서의 생존(현실)이 밀도 높은 전개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6.25사변 직후에 의사가 절대부족한 상황에서도 사업수완이 부족하고 고지식한 한영덕이 무면허 의료행위로 옥고를 치르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저절로 눈물이 주르르 흐르게 됩니다. 여기에서 인상적인 장면은 해방직후와 6.25사변 중은 물론 그 직후의 혼돈의 공간에서도 무면허 의료행위는 처벌했다는 점입니다. 생명을 다루는 의사의 영역은 엄격하게 국가가 관리해야 한다는 당위를 알 수 있습니다.
○굳이 의료법을 거론하지 않아도 의사가 의료행위의 중심에 서야 한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런데 간호사의 의료행위의 범위가 문제입니다. 예전에 이재룡과 오욱철 등이 의사로 분한 연기가 인상적이었던 ‘종합병원’을 보면, 수술실 간호사로 분한 김소이와 전도연이 수술실에서 의사의 시술을 열심히 보조하던 장면이 자주 등장했습니다. 시청자들은 의료현장의 긴박함이 생생한 사실감에 환호하면서도 의료드라마의 고질적인 연애놀음에 짜증이 났습니다. 그래서 간호사의 업무범위가 어디까지인가, 라는 근원적인 의문은 그냥 넘어갔습니다.
○세월이 많이 흘러서 당시 드라마 ‘종합병원’에서 간과했던 장면이 의료법위반이라는 직접적인 쟁점으로 대법원(대법원 2024. 12. 12. 선고 2023도10286 판결)에서 현실화됐습니다. 여기에서 피고인은 종합병원을 운영하는 법인인 피고인과 더불어 간호사입니다. 이 간호사는 일상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간호사가 아니라 수술실에서 수술현장에서 활동하는 간호사, 즉 PA(Physician Assistant)간호사였습니다. PA간호사는 현장 간호사는 물론 병원 운용의 현실과 직결된 문제였고, 이를 허용한 간호사법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았습니다. 나중에 간호법이 통과되었으며, 위 대법원 판결은 2025. 6. 21.부터 시행하는 개정 간호법 이전의 의료법위반에 대한 판례입니다. 현행 의료법은 구 의료법 제2조 제5호 ‘간호사’의 업무에 대한 내용을 간호법의 개정에 맞춰 삭제했습니다.
○사안은 종양전문간호사(PA간호사)가 골수검사에 필요한 골수 검체 채취를 하였고, 이 행위가 무면허 의료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쟁점인 사건이며, 부수적 쟁점으로 의사의 지시나 위임에 따라 수행할 수 있는 간호사의 진료의 보조행위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 및 의사의 일반적인 지도·감독에 따라 할 수 있는 간호사의 진료의 보조행위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에 대한 대법원의 기준이 부수적 쟁점이었습니다. 원심이 의사의 현장 입회 여부를 불문하고 간호사가 검사 목적의 골수 검사를 직접 수행한다면 진료보조가 아닌 진료행위 자체로서 무면허 의료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여 유죄를 선고하였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골수 검사가 의사만이 할 수 있는 진료행위 자체에 해당한다고 볼 수는 없고, 환자의 개별적인 상태 등에 비추어 위험성이 높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의사가 진료의 보조행위 현장에 입회할 필요 없이 일반적인 지도․감독 아래 골수 검사에 자질과 숙련도를 갖춘 간호사로 하여금 진료의 보조행위로서 시행하게 할 수 있는 의료행위라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와 달리 판단한 원심을 파기․환송하였습니다.
○다시 위 ‘종합병원’ 드라마를 돌이켜 봅니다. 당시 의료현장에서는 의사의 ‘오더(order)’에 따라 간호사들이 각종 검사를 했던 장면이 여러 차례 등장합니다. 그리고 의사와 간호사 간에 갈등과 알력의 원인으로 비화하는 장면도 등장합니다. 간호법의 개정 중의 주요 이유가 바로 이 쟁점, PA간호사의 업무범위, 즉 수술실에서 사실상 수술행위를 보조하는 간호사의 업무범위가 어디까지인가라는 점이 담겨 있습니다. 이러는 와중에 의사들의 파업이 발생했고, 주무부서인 보건복지부는 2024. 3. 8.자 보도자료에서 ‘‘간호사 업무범위 관련 시범사업 보완지침’은 의사 집단행동으로 인한 진료공백 상황에 대응하기 위하여 ‘전담간호사’(일명 ‘PA 간호사’)의 업무범위를 명확히 하고 법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실시하는 것임’이라는 것을 배포하였습니다. 보건복지부는 대법원의 결론과 동일하게 ‘동 시범사업은 ‘보건의료기본법’ 제44조에 근거를 둔 것으로 시범사업에서 정한 진료지원행위는 불법 의료행위가 아님’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2024. 8. 30. 보도자료에서 보건복지부는 PA간호사를 ‘진료지원간호사’라 명명하면서 향후 업무범위를 명확하게 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의료법이나 간호법을 떠나 이미 30년전의 드라마에서 PA간호사가 수술을 보조하는 장면이 있었고, 독자적으로 각종 검사를 해서 의사에게 보고하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이미 의료현장에서는 널리 행해졌던 것을 드라마화한 것이라 이해하면 됩니다. 간호법의 제정은 만시지탄의 감이 없지 않습니다. 대법원 판결은 의료현실을 법리적으로 확인한 점에 그 의의가 있습니다.
<보건복지부 보도자료(2024. 3. 8.) 1. 기사 주요내용 □ 중앙일보 3.8일,‘오늘부터 간호사도 일부 의사 업무, 의협 “불법의료” 반발’제하의 기사에서, ㅇ 의사단체는“간호사를 불법 의료행위에 동원해 의료를 몰락시키는 일”이라고 반발했다고 인용 보도 2. 설명내용 □ ‘간호사 업무범위 관련 시범사업 보완지침’은 의사 집단행동으로 인한 진료공백 상황에 대응하기 위하여 ‘전담간호사’(일명 ‘PA 간호사’)의 업무범위를 명확히 하고 법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실시하는 것임 ㅇ 지난 2월부터 여러 병원장들이 동 시범사업 실시를 건의한 바 있음 □ 정부는 작년 6월부터 대한의사협회, 대한병원협회, 대한전공의협의회, 대한의학회, 대한간호협회 등이 참여한 「진료지원인력 개선 협의체」를 구성하여 총 10차례 회의를 진행하였음 ㅇ 이번 시범사업의 기본 골격과 내용도 「진료지원인력 개선 협의체」에서 논의된 것을 토대로 마련한 것임 □ 복지부가 3월 6일 배포한 ‘간호사 업무범위 관련 시범사업 보완지침’은 2월 29일부터 3월 6월일까지 대한간호협회, 대한병원협회와 함께 논의하여 마련한 것임 □ 동 시범사업은 ‘보건의료기본법’ 제44조에 근거를 둔 것으로 시범사업에서 정한 진료지원행위는 불법 의료행위가 아님 <보건복지부 보도자료(2024. 8. 30.)> 보건복지부(장관 조규홍)는 지난 8월 28일(수)에 「간호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만큼, 정부도 진료지원간호사의 업무와 기준, 교육ㆍ운영체계 등에 관한 제도를 신속하게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진료지원간호사는 20여년 전부터 의료현장에서 의사 부족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자생적으로 등장하였으며, 의사의 진료ㆍ수술 등을 지원하는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그간 진료지원간호사들은 제도의 사각지대에서 수행업무가 무면허 의료행위일지도 모른다는 법적 불안을 호소해왔다. 올해 의사 집단행동 대응 과정에서 진료지원간호사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됨에 따라 ‘간호사 업무관련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진료지원간호사들을 제도권으로 편입하려는 논의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시범사업 추진 시점 기준에는 진료지원간호사가 약 1만명이었으나, 7월말 기준 약 1만 6천여명까지 확대되었다. 시범사업 지침에서는 진료지원업무를 수행하는 간호사가 수행할 수 있는 행위와 없는 행위를 명시적으로 구분하여 제시하고 있다. 특히, ▲진단, ▲전문의약품 처방, ▲수술 등은 간호사가 할 수 없는 행위임을 제시하여, 간호사가 불합리한 업무지시까지 수행하지 않도록 하는 근거를 명확히 마련했다. <구 의료법> 제2조(의료인) ①이 법에서 “의료인”이란 보건복지부장관의 면허를 받은 의사ㆍ치과의사ㆍ한의사ㆍ조산사 및 간호사를 말한다. ②의료인은 종별에 따라 다음 각 호의 임무를 수행하여 국민보건 향상을 이루고 국민의 건강한 생활 확보에 이바지할 사명을 가진다. 1. 의사는 의료와 보건지도를 임무로 한다. 2. 치과의사는 치과 의료와 구강 보건지도를 임무로 한다. 3. 한의사는 한방 의료와 한방 보건지도를 임무로 한다. 4. 조산사는 조산(助産)과 임산부 및 신생아에 대한 보건과 양호지도를 임무로 한다. 5. 간호사는 다음 각 목의 업무를 임무로 한다. 가. 환자의 간호요구에 대한 관찰, 자료수집, 간호판단 및 요양을 위한 간호 나.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의 지도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 다. 간호 요구자에 대한 교육ㆍ상담 및 건강증진을 위한 활동의 기획과 수행, 그 밖의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보건활동 라. 제80조에 따른 간호조무사가 수행하는 가목부터 다목까지의 업무보조에 대한 지도 <대법원 판례> 의료법은 의료인을 의사․간호사 등 종별로 엄격히 구분하고 각각의 면허가 일정한 한계를 가짐을 전제로 하여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를 금지․처벌하는 것을 기본적 체계로 하면서도, 의료인 상호 간에 각각의 업무 영역이 어떤 것이고 그 면허의 범위 안에 포섭되는 의료행위가 구체적으로 어디까지인지에 관하여는 아무런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이는 의료행위의 종류가 매우 다양하고 그 개념도 의학의 발달과 사회의 발전, 의료서비스 수요자의 인식과 요구에 따라 얼마든지 변화될 수 있는 것임을 감안하여 법률로 일의적으로 규정하는 경직된 형태보다는 시대적 상황에 맞는 합리적인 법 해석에 맡기는 유연한 형태가 더 적절하다는 입법 의지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대법원 2016. 7. 21. 선고 2013도850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의료인 중 간호사의 업무는 의료법 제2조 제2항 제5호(2024. 9. 20. 법률 제20445호로 제정되어 2025. 6. 21. 시행되는 간호법에서는 제12조 제1항에서 규정하고 있다)에서 ‘환자의 간호요구에 대한 관찰, 자료수집, 간호판단 및 요양을 위한 간호’, ‘의사 등의 지도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 간호사가 할 수 있는 ‘진료의 보조’ 행위의 범위에 ‘고도의 지식과 기술을 요하여 반드시 의사만이 할 수 있는 의료행위’가 포함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러한 의료행위 자체가 아니라면 의사는 의료행위의 과정에서 수반되는 ‘진료의 보조’ 행위를 간호사에게 지시하거나 위임할 수 있다(대법원 2007. 9. 6. 선고 2006도2306 판결, 대법원 2010. 3. 25. 선고 2008도590 판결 등 참조). 간호사가 의사의 지시나 위임에 따라 수행할 수 있는 ‘진료의 보조’ 행위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할 때에는 해당 의료행위가 진단․치료 등의 본질적․핵심적 부분인지 여부, 해당 의료행위가 시행되는 부위 및 구체적 방법과 난이도, 요구되는 의료지식과 기술의 수준, 해당 의료행위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이나 후유증의 내용 및 그 위험성의 정도, 임상의학 분야에서 시행되고 있는 의사와 간호사 사이의 실질적인 의료분업 현황, 의료기술과 의료산업의 발전 양상과 의료환경의 변화, 의료서비스 수요자의 인식과 요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 또한 간호사가 ‘진료의 보조’를 할 때 모든 행위 하나하나마다 항상 의사가 현장에 입회하여 일일이 지도․감독하여야 한다고 할 수는 없고, 경우에 따라서는 의사가 진료의 보조행위 현장에 입회할 필요 없이 일반적인 지도․감독을 하는 것으로 충분할 수도 있다. 여기에 해당하는 보조행위인지 여부는 보조행위의 유형에 따라 일률적으로 결정할 수는 없고 구체적인 경우에 따라 그 행위의 객관적인 특성상 위험이 따르거나 부작용 혹은 후유증이 있을 수 있는지, 당시의 환자 상태가 어떠한지, 간호사의 자질과 숙련도는 어느 정도인지 등의 여러 사정을 참작하여 개별적으로 결정하여야 한다(대법원 2003. 8. 19. 선고 2001도3667 판결, 대법원 2012. 5. 10. 선고 2010도5964 판결 등 참조). (대법원 2024. 12. 12. 선고 2023도10286 판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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