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는 정치인이 근거없는 ‘카더라’를 이유로 상대편을 공격하는 일이 잦았으나, 최근에는 자기편이라 하더라도 그렇게 근거없는 공격을 하면 가차없이 배척을 가합니다. 그리고 무작정 선동정치를 하면 여론의 후폭풍을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과거와 달리 의혹을 제기하더라도 근거가 뭐냐는 매서운 검증의 눈길을 감당하여야 합니다.
○인생살이에서도 일방적인 가르침을 하면 ‘꼰대’ 소리를 듣기 십상입니다. 적어도 합리적인 근거가 필요합니다. 이렇게 서양식의 합리성이 사회를 지배하게 된 것은 소송제도의 영향이 큽니다. 소송이 보편화되면서 법원이 제시하는 증명책임의 법리가 우리 사회에서도 영향을 끼쳤다고 보아야 합니다. 어떠한 법적 주장을 하려면 자기가 주장하는 증거를 제출하고 그 증거의 합리적 이유를 설명하여야 하는 것이 증명책임의 법리입니다.
○다음 기사를 보면,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법)상 업무상 질병 여부를 판단하는 주체인 서울시질병판정위원회(질판위)가 코로나19 확진 뒤에 사망한 택시기사의 업무상 질병에 의한 사망으로 인정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처음 코로나19의 확산 시보다 코로나19의 사망위험도가 낮아지기는 했지만, 기존의 기저질환자에게 사망의 강력한 촉매가 된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단독으로는 사망원인이 되지 않더라도 사망의 주요원인이 된다는 점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코로나19는 감염병예방법상의 법정감염병입니다. 감염경로가 밝혀져야 업무상 질병으로 판정할 수 있습니다. 업무와 무관하게 감염이 되었다면 그것은 개인질환에 불과합니다. 관건은 감염경로이며, 이것이 밝혀져야 업무상 질병여부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질판위는 택시기사가 택시운행 외에 달리 만난 사람이 없고, 가족 중에 코로나19 감염자가 없다는 점을 주목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택시 운행 중에 손님 중에 코로나19 감염자가 있어서 그에게서 감염이 되었다고 합리적인 추정을 하는 것이 타당한 상황인 점을 주목한 것입니다.
○실은 코로나19 감염자가 자신이 누구로부터 감염이 되었는가를 일일이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고용노동부는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여 코로나19의 감염이 업무상 재해가 되는 기준을 발표하였습니다. 택시기사는 택시운행을 하면서 부득이하게 ‘업무수행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감염환자와 접촉한 자’에 해당하는 직군입니다. 그리고 택시승객 중에 누가 감염된 것인가를 확인하기가 곤란합니다.
○고용노동부의 요건은 ① 업무활동의 범위와 바이러스 전염경로가 일치될 것, ② 업무수행 중 바이러스에 전염될 만한 상황을 인정할 수 있을 것, ③ 바이러스에 노출되었다고 인정될 것, ④ 가족이나 친지 등 업무 외 일상생활에서 전염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문제의 택시기사에 대하여 질판위는 그대로 적용을 하여 검토한 결과 코로나19 감염에 의한 사망이 업무로 인하여 발생한 사망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러한 질판위의 판정에 대하여 산재와 사망 간의 인과관계의 증명책임의 완화라는 시각에서 긍정적으로 위 기사는 서술을 하였지만, 의문이 남습니다. 그것은 코로나19 자체가 감염병예방법에 의한 법정감염병이라는 점입니다. 코로나19는 감염병예방법에 의한 법정감염병이기에 국가의 책무를 구체적으로 수행하는 보건당국은 감염경로의 확인, 격리치료, 사망원인의 규명 등을 행하게 됩니다. 이러한 보건당국의 활동은 직접적으로는 업무상 질병을 규명하는 활동은 아니지만, 간접적으로는 업무상 질병을 판단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됩니다. 특히 사망원인의 판정에 결정적 기여를 하게 됩니다. 보건당국이 코로나19가 사망의 직접적 원인이라고 판정을 했는데, 질판위가 부정한다면 이상한 결론이 됩니다.
근로복지공단이 코로나19 확진 뒤 숨진 택시노동자의 죽음을 업무상 재해로 판정했다. 역학조사에서 감염경로가 명확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노동환경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일하다 질병에 걸린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용자가 불특정한 다중이용시설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감염됐을 때 산재로 인정받는 선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60대 택시노동자 확진 한 달 뒤 폐렴으로 숨져’
30일 근로복지공단에 따르면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지난 24일 심의회의에서 택시노동자 안아무개(사망당시 66세)씨 죽음을 산업재해로 판정했다.
서울 성북구 택시회사에 속한 안씨는 오후 4시부터 다음달 새벽 4시까지 하루 12시간씩 주 6일을 일했다. 지난해 8월29일부터 오한·몸살감기 증세가 나타나자 세 차례에 걸쳐 병원 치료를 받았으나 상태가 호전되지 않았다. 같은 해 9월1일 두 번째 진료 후 자택에서 쉬었으나 이튿날에는 다시 일터로 나갔다. 이후 몸 상태가 급격히 악화했고, 9월4일 보건소에서 코로나19 검사 후 다음날 양성 판정을 받았다. 확진 당일날부터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지만 지난해 10월4일 폐렴으로 숨졌다. 코로나19 확진 후 불과 한 달여 만이다.
http://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5209
【판결요지】
[1]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5조 제1호가 정하는 업무상의 사유에 따른 질병으로 인정하려면 업무와 질병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어야 하고 증명책임은 원칙적으로 근로자 측에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인과관계는 반드시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법적·규범적 관점에서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면 증명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산업재해의 발생원인에 관한 직접적인 증거가 없더라도 근로자의 취업 당시 건강상태, 질병의 원인, 작업장에 발병원인이 될 만한 물질이 있었는지, 발병원인물질이 있는 작업장에서 근무한 기간 등의 여러 사정을 고려하여 경험칙과 사회통념에 따라 합리적인 추론을 통하여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 이때 업무와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는 사회 평균인이 아니라 질병이 생긴 근로자의 건강과 신체조건을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2] 첨단산업분야에서 유해화학물질로 인한 질병에 대해 산업재해보상보험으로 근로자를 보호할 현실적·규범적 이유가 있는 점,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의 목적과 기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근로자에게 발병한 질병이 이른바 ‘희귀질환’ 또는 첨단산업현장에서 새롭게 발생하는 유형의 질환에 해당하고 그에 관한 연구결과가 충분하지 않아 발병원인으로 의심되는 요소들과 근로자의 질병 사이에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규명하는 것이 현재의 의학과 자연과학 수준에서 곤란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인과관계를 쉽사리 부정할 수 없다. 특히, 희귀질환의 평균 유병률이나 연령별 평균 유병률에 비해 특정 산업 종사자 군(군)이나 특정 사업장에서 그 질환의 발병률 또는 일정 연령대의 발병률이 높거나, 사업주의 협조 거부 또는 관련 행정청의 조사 거부나 지연 등으로 그 질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작업환경상 유해요소들의 종류와 노출 정도를 구체적으로 특정할 수 없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인정된다면, 이는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는 단계에서 근로자에게 유리한 간접사실로 고려할 수 있다. 나아가 작업환경에 여러 유해물질이나 유해요소가 존재하는 경우 개별 유해요인들이 특정 질환의 발병이나 악화에 복합적·누적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대법원 2017. 8. 29. 선고 2015두3867 판결)
<감염병의 업무상 질병 조사 및 판정지침>
【비보건의료 종사자의 업무상 질병 조사 대상】
▪ 해당 바이러스 감염원를 검색하는 공항․항만 등의 검역관
▪ 중국 등 고위험 국가(지역) 해외출장자
▪ 출장 등 업무상 사유로 감염자와 함께 같은 비행기를 탑승한 자
▪ 업무수행 과정에서 감염된 동료근로자와의 접촉이 있었던 자
▪ 기타 업무수행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감염환자와 접촉한 자
※ 현지법인 근무자의 경우 산재적용 여부 조사 후 산재요양 여부 판단
【업무상 질병 인정 요건】
▪ 위 조사대상에 해당하는 근로자로서 아래에 모두 해당하면 업무상질병 인정가능
① 업무활동의 범위와 바이러스 전염경로가 일치될 것
② 업무수행 중 바이러스에 전염될 만한 상황을 인정할 수 있을 것
③ 바이러스에 노출되었다고 인정될 것
④ 가족이나 친지 등 업무 외 일상생활에서 전염되지 않았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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