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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추억의 명승부 : 알리 vs. 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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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풍경 중에서 지금은 거의 언급이 되지 않는 것 중의 하나가 동네아재들이 우르르 다방에서 모여 흑백TV로 세계타이틀이 걸린 복싱 생중계를 시청하는 풍경입니다. 지금은 복싱 자체가 비인기스포츠로 전락한 데다가, 저작권료를 내지 않으면 다방과 같은 공중밀집장소에서의 방영 자체가 어려운 것이 스포츠경기의 TV생중계입니다. 그러나 그 시절은 저작권료 같은 개념은 개나 줘라, 시대였습니다. 그 이전에 칼라TV도 아닌 흑백TV는 이제는 먼 추억 속의 소재로, 그 시절은 각 가정마다 흑백TV조차 살 수 없었던 가난한 한국이었습니다. 그래서 헝그리스포츠의 대명사인 복싱이 인기를 누렸고, 다방에서 커피 한잔 값으로 흑백TV로 세계타이틀 생중계를 시청하는 것이 일상풍경이었습니다. 전 국민이 스마트폰을 보유하면서 유튜브로 전 세계의 스포츠중계를 실시간으로 시청하는 요즘 2030세대라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풍경일 것입니다.
 
한국인도 유제두, 홍수환, 김태식 등의 복서가 활약을 했고 세계타이틀도 보유했지만, 유제두 외에는 대부분 경량급에 그쳤습니다. 고 오일룡 복싱 해설위원의 해설 중에는 ‘가운데 중(中)자 중량급(中量級)’과 ‘무거울 중(重)자 중량급(重量級)’을 구분하는 독특한 언어습관이 있었는데, 1970년대 한국의 복서에게 중량급(重量級)이란 별나라의 세계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유달리 TV중계에서는 한국인이 아님에도 중량급의 중계를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그 중량급의 간판은 단연 무하마드 알리였습니다. 당시 복싱중계는 당연히 한국복서 위주로 방영되었지만, 이상하게도 알리는 마치 한국 복서처럼 중계가 몰렸습니다. 그 이유는 알리의 뜨거운 인기에 기인합니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Float like a butterfly, sting like a bee!)’라는 알리의 어록과 뒤로 물러서면서 춤을 추는 듯한 동작으로 스트레이트를 날리던 ‘알리 댄싱’은 당시 알리의 경기를 중계했던 캐스터들이 꼭 소개했을 정도로 알리에게 우호적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알리는 한국인이 아니었음에도 한국의 캐스터들이 이상하리만치 우호적으로, 마치 알리가 한국인이라도 된 양 중계를 했습니다. 물론 이러한 중계태도는 알리의 뜨거운 국내 인기에 힘입은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알리의 대다수 경기는 생중계로 방영이 되었습니다. 헤비급 선수이면서도 경쾌한 풋워크와 전광석화 펀치, 그리고 쇼맨쉽 등이 어우러져 알리의 인기는 어마어마했습니다. 육중한 체구에 거대한 주먹에서 나오는 일발필도의 강펀치와 KO는 헤비급 복싱의 묘미이지만, 마치 경량급 선수와 같은 알리의 초절정 테크닉은 색다른 맛으로 팬들을 사로잡았습니다. 알리는 전 세계적으로 팬을 몰고다니는 슈퍼스타이기도 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lrjFSCJ1rBY

 
 
알리는 레전드 헤비급 복서이기는 했지만, 맷집에 있어서는 최강은 아니었습니다. 괴력의 강타자 조 프레이저에게 처참하게 다운을 당하기도 했는데, 그 괴력의 강타자 프레이저를 무려 6회나 다운시키고 2회에 TKO승을 거둔 조지 포먼과 1974. 10. 30.에 세기의 대결을 펼쳤습니다. 조지 포먼은 복싱을 위해서 태어난 사람으로 그 흔한 위빙이나 더킹도 하지 않고 장승처럼 서서 상대에게 폭풍펀치를 안기는 프레이저를 능가하는 괴력의 강타자였습니다. 툭툭 치는 것 같은 엉성한 펀치를 휘둘러도 상대는 고목처럼 쓰러지는 장면이 조지 포먼 경기의 전매특허영상이었습니다. 심지어 그는 10년을 쉬고도 다시 챔피언에 등극하는 신계의 능력을 지닌 복서였습니다.
 
그러나 복싱에서는 상대성이 있고, 의외성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알리는 머리가 좋은 복서였습니다. 무려 옥스퍼드 사전에 등재된 ‘rope-a-dope’라는 작전을 개발하여 언더독의 포지션인 알리는 포먼을 KO로 제압했습니다. rope-a-dope란 우리말로 번역하면 ‘로프에 기대기’ 정도로 풀이할 수 있는데, 옥스퍼드 사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그 개념을 정의합니다. 해석해보면, ‘로프에 갇힌 것처럼 행세를 하다가, 힘빼는 펀치를 날리게 하면서 지치게 하는 전략’이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a boxing tactic of pretending to be trapped against the ropes, goading an opponent to throw tiring ineffective punches.
 
rope-a-dope는 알리 댄싱을 추면서 나비처럼 날아서 벌같이 쏘는 알리 특유의 전형적인 경기방식은 아닙니다. 포먼이 워낙 강타자였기에 변칙복싱을 한 것입니다. rope-a-dope란 알리가 위대한 복서임을 알리는 동시에 헤비급 역사상 최강의 펀치로 인정받는 포먼의 괴력을 확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알리는 프레이저와는 무려 3회나 리매치를 했지만, 포먼의 집요한 요구에 대하여는 끝내 외면을 했습니다. 그리고 복싱협회도 노골적으로 알리를 두둔했습니다. 알리의 상품성이 워낙 대단했기에, 알리가 무너지면 금전적으로 손해를 봤기 때문입니다. 이는 훗날 슈거레이 레너드가 마빈 해글러에게 신승을 한 후에 리매치를 끝내 기피한 사례의 원조입니다. 지금 경기를 보더라도 스피드와 테크닉은 알리가 우위라도 확실히 펀치는 포먼이 강하다는 느낌적 느낌입니다. 그리고 세상일과 마찬가지로 포먼이 우세할 수는 있어도 알리에게 경기를 이기는 것은 장담할 수 없다는 이치를 재확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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