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지나면 일상에서 쓰는 언어도 변경된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일상에서 쓰이는 영어마저도 변경된다는 것은 자못 재미가 있다. 과거에는 ‘리싸이틀 쇼’라 불리던 쇼가 이제는 ‘콘서트’로 변경이 되었고, ‘리바이벌’이라는 말은 ‘리메이크’라는 말로 변경이 되었다.
리메이크가 많이 되는 노래는 완성도가 높은 노래다. 팝송에서도 리메이크되는 노래는 거의 예외없이 완성도가 높다. ‘먼지가 되어’가 바로 그렇다. 지금 들어도 전혀 촌스럽지 않고 세련된 감각이 살아있는 이 곡은 무려 1976년에 작곡된 노래다. 개인적으로 더 놀라운 것은 이 노래의 작사가이자 가수 이미키의 남편 송문상이 나의 먼 인척이 된다는 사실이다. 오래 전에 술자리에서 먼 인척 중에 음악적 재능이 있어서 작사 및 작곡에 능하며, 부인이 가수라는 소리를 얼핏 들었는데, 먼 인척은 사실 남남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 현실이며, 당시에는 내 개인적인 우환이 있어서 그냥 넘겨들었던 적이 있었다. 그 인척이 바로 송문상이다.
다음은 2013. 3. 18.자 조선일보 기사의 내용인데, 내가 술자리에서 들었던 내용이 기사화되니 무척이나 신기하고 이채로웠던 기억이 새롭다. 이 노래를 부른 이미키는 80년대 중반에 혜성처럼 등장했다가 스르르 사라진 가수였다. 이미키는 삼성의 의류제조 및 판매업체의 주요 브랜드였던 ‘위크엔드’의 BGM song인 ‘이상의 날개’로 전국을 강타했다.
김광석의 노래로 잘 알려져 있지만, 작사·작곡·편곡자들이 들려준 '먼지가 되어' 뒷얘기엔 가요계 옛 풍경이 스며있다. 만들어진 것은 1976년. 명동 쉘부르에서 노래하던 청년 이대헌(56)은 어느 날 동료 송문상(57)에게 기타를 튕기며 멜로디를 들려줬다. 눈을 반짝이던 송문상은 다음 날 '바하의 선율에 젖은 날이면/ 잊었던 기억들이 생각나네요…'로 시작하는 노랫말을 내밀었다. "여자들이 남자 선배를 '형'이라고 부르던 시절, 에둘러 감정을 표현하던 시절이었다. 쓰는 데 채 5분이 걸리지 않았다. 그땐 정말 감성이 충만했다."(송문상)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3/17/2013031701429.html
젊은이여, 이상의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가고파.
이렇게 시작하는 맑고 깨끗한 목소리에 전 국민이 홀렸다. 이 노래를 부른 가수가 누구인가 관심이 폭증했다. CF의 배경노래보다 그 노래를 부른 주인공에 대한 관심이 폭증하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했다. 그러나 막상 TV에 등장한 이미키의 모습에 대중의 관심은 차갑게 식었다. 맑고 청아한 외모를 기대했는데, 대중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더군다나 이미 유부녀였다는 사실이 확인사살의 수준이었다. 당시는 여자 연예인이 유부녀라면 그냥 은퇴를 하는 분위기였다.
아무튼 TV에 등장해서 폭망한 이미키의 노래도 ‘이상의 날개’ 외에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 ‘이상의 날개’가 실린 ‘지성과 사랑’앨범에 실린 이 불멸의 명곡인 ‘먼지가 되어’도 그대로 먼지가 되어서 사라지는 운명이었다. 그러나 이윤수와 김광석이 이 노래의 진가를 확인하고 앞다투어 앨범에 실었다. 그 이후 2013년이 되어서 후배가수들의 리메이크 행렬이 이어졌다. 당연히 노래의 완성도가 높기 때문이다.
‘먼지가 되어’는 노래가 아니라 그냥 서정시라 불러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로 가사가 지닌 철학적 깊이가 있다. 거기에 더하여 선율이 아름답고 전개도 훌륭하다. 명곡은 역시 시대를 뛰어넘기 마련이다. 그런데 21세기 컴퓨터 반주로 불리는 노래보다 원곡을 부른 이미키 버전이 나는 제일 좋다. 80년대의 감성을 아련히 소환하는 맛이 있기도 하지만, 이미키가 ‘이상의 날개’를 부를 때의 청아하고 맑은 목소리가 아니라 인생의 깊은 의미를 깨달은 듯한 중년 여성의 탁 트인 목소리의 샤우팅창법이 무척이나 인상적이기 때문이다. 실은 타이틀곡인 ‘이상의 날개’보다 ‘먼지가 되어’가 지금은 압도적으로 히트를 한 곡이 되었다.
여러 가수 버전의 ‘먼지가 되어’를 들어보면 같은 노래라도 느낌이 달라서 노래의 맛을 진하게 느끼게 된다.
https://www.youtube.com/watch?v=lH-G8_OiSQ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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