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기억을 하는 사람이 극히 드물겠지만, 1970년대 중후반에 MBC 드라마에서 ‘제3교실’이라는 것이 있었다. 이정길과 이효춘이 고교 교사로 분하여 방황하고 일탈하는 문제학생을 선도하는 일종의 카운슬링 드라마인데, 여기에서 단골 문제학생으로 등장했던 이계인을 처음 알았다. 드라마는 거짓이라는 어른들의 가르침이 있었어도 이계인은 실제로도 문제학생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리얼리티가 대단했다.
어린 마음에 커서는 이계인 같은 ‘나쁜 놈’이 되지 않으리라는 다짐까지 하곤 했다. 그런데 이계인은 또 다른 MBC의 간판 드라마인 ‘수사반장’에서도 종횡무진 악역으로 맹활약을 했다. 사기, 강도, 강간, 절도 등 온갖 잡범으로 무수히 등장을 했다. 당시 수사반장을 애청했던 처지라 극중에서 이계인이 등장하면 어김없이 드라마가 끝날 무렵이면 수갑을 차리라 예상을 했다. 물론 이계인은 어김없이 수갑을 찼다.
이계인은 배우로서는 악역으로 화끈한 성공을 했다. 남자배우라면 누구나 보스로 세상을 호령하는 멋진 배역의 주연을 하고 싶고, 미녀의 상대역으로 멜로물도 찍고 싶어 한다. 실은 그것이 배우 이전에 인간의 본능이다. 그러나 이계인은 악역으로 특화된 이미지 외에 달리 배역을 받기가 어려운 독특한 마스크를 갖고 있고, 가래가 끓는 듯한 탁한 목소리를 지녔다. 풍기는 이미지도 서민 또는 하층민의 이미지가 뚜렷하다. 이계인 스스로도 50년 배우인생 중에서 인텔리나 고위급 공무원이나 엘리트로 등장한 적이 단 한번도 없다고 고백을 했다.
‘스타워즈’의 ‘다스 베이더’나 ‘양들의 침묵’에서 ‘렉터 박사’, ‘배트맨’의 ‘조커’처럼 악역에도 급이 있다. 1980년대 중반 북한의 김정일 역할로 전국을 강타했던 ‘지금 평양에선’의 김병기와 같이 보스나 조폭의 보스 정도로 선이 굵은 역할도 아니고 꼭 잡범이나 하수인 정도의 허접한 배역만을 전전한 것이 이계인의 배우인생이었다. 늙어가면서 코믹 캐릭터를 추가하여 나름 이미지 변신을 하기는 했지만, 저렴한 이미지는 영 풀수 없는 이계인의 숙제였다.
그러나 이계인의 이러한 악역인생을 실패한 배우인생이라 할 수는 없다. 만약에 악역이 아니라면 이계인은 배우로서 대중의 머리에 각인될 수조차 없을 것이다. 이계인은 탤런트로 처음 뽑힐 때부터 이미 악역으로 특화한 마스크를 주목하여 뽑힌 것이다. 방송국은 배우를 뽑을 때 주연급, 조연급으로 나누어 뽑는다. 개성이 강한 마스크, 악역에 적합한 마스크도 언제나 같이 뽑는다. 드라마는 꽃미남 주연급 배우만을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장동건은 데뷔 이래 조연조차 한 적이 없다. 풍기는 고급스럽고 세련된 이미지가 조연으로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슬프게도 이계인은 50년 배우인생에서 단 한 번도 주연을 한 적이 없다. ‘주연스럽게’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구나 자신의 인생에서는 주연이 된다. 당연히 이계인은 자신의 인생에서 주연이 되어서 산다. 이제 이계인은 노인배역이 어울리는 나이가 되었다. 남은 인생에서 꼭 한 번은 굵직한 악역으로 오랜 팬에게 화끈한 팬서비스를 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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