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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영화 007시리즈의 ‘3대 악당 스토리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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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세상을 배우는 방법으로 드라마나 영화가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아동용 영화는(드라마도 마찬가지!) 세상을 선과 악으로만 그립니다. 세균맨과 악당맨과 같이 이원적인 세계관을 설정하여 선한 길로 가라는 교훈을 아이에게 주입합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아이가 보는 세계는 선과 악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닙니다. 아이의 눈에도 선도 악도 아닌 것이 세상을 움직이는 것이 보이며, 그리고 선과 악만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는 평범한 이치를 저절로 자각합니다.

 

평범한 아이는 인형극과 만화영화로 현실, 그리고 영화에 입문합니다. 영화 속 인물들의 묘사에서, 평범한 사람이라도 돈에 집착하고 물질적 욕망에 사로잡히게 되어 악마로 흑화하는 과정이 그려집니다. 김 형사로 분한 고 김상순은 수사반장에서 탐문수사를 하면서 언제나 원한관계를 묻곤 했습니다. 그 원한관계의 원인은 십중팔구 돈 때문이었습니다. 피터 포크의 출세작 형사 콜롬보를 봐도 욕심이 악인을 만드는 과정이 전개됩니다. 평범한 아이는 차츰 만화영화, 그리고 인형극의 세계와는 달리 돈이 평범한 사람을 악마로 만드는 것이라는 교훈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만화영화 자체가 시시해지고 재미를 잃게 됩니다. 그리고 현실을 구현한 영화를 찾습니다.

 

그러나 무슨 영문인지 본질이 만화영화 플롯과 대동소이한 007시리즈는 이상하리만치 흥미를 잃지 않습니다. 어려서부터 권선징악의 플롯에 익숙해서인지 아니면 블록버스터의 대형스케일에 끌려서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 오랜 기간 뻔한 스토리를 지닌 007시리즈는 꾸준히 제작되고 꾸준히 그 거짓말을 소비합니다. 007시리즈는 뻔한 스토리를 무려 60년이 넘게 반복을 하면서도 변하지 않습니다.

 

1법칙 : 생성의 법칙

007 제임스 본드는 여자도 후리고 적당히 사기도 치고 타인의 재산을 훔치고 파괴하는 나쁜 놈이지만 덜 나쁜 놈이기에, 얼떨결에 더 큰 나쁜 놈에 비하면 착한 놈으로 취급을 받습니다. 실은 착한 놈을 넘어 영국을 구하고 인류를 구하기까지 합니다. 이 과정에서 불사신모드는 필연적이고, 그 불사신모드를 위해서 영국의 첩보기관 MI6는 특수무기를 제작합니다. 짜증나게 007시리즈에서는 특수무기를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 반드시 등장합니다. 그 많은 007시리즈 중에서 예외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악당, 나쁜 놈입니다. 인생사는 스토리가 있기 마련이고, 악당도 인간이기에 당연히 악당으로 구축되는 과정이 필연적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악당은 선재(先在)하는 것으로 그려집니다. 007시리즈의 간판악당 스펙터(SPECTRE)를 예로 듭니다. 전 세계를 호령하는 방대한 조직이라면 아주 평범한 시민이라도 어떻게 돈을 모아 인력과 사업망, 그리고 무기체계를 구축했는가 궁금해 합니다. 그러나 그 엄청난 악당조직이 인력을 훈련하고 무기체계가 구축된 기지의 건실비용은 물론 그 과정 등에 대하여 일체 언급이 없습니다. 2위기일발(From Russia with Love)’에서는 나름 기지와 훈련장이 등장하기는 하나, 전 세계의 이목을 무슨 재주로 숨기고 시설을 유지하는지 설명이 없습니다. 여론이기는 하지만, 1살인번호(Dr. No)’와 마찬가지로 위기일발 등 초창기 작품의 한글번역물은 모두 일본이 번역한 걸 그대로 차용했습니다. 무척이나 짜증나는 상황입니다.

 

스케일이 있는 악당이라면 제10나를 사랑한 스파이(The Spy who loved me)’11문레이커Moonraker)’, 그리고 제19언리미티드(The World Is Not Enough)’가 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미 전 세계를 석권할 정도의 부자가 무슨 욕심이 발동했는지 새삼스레 세계정복의 야욕을 표출합니다. 스펙터의 방대한 조직망과 시설과 마찬가지로 이들 악당의 위용을 과시하는 무기체계는 그 설치과정이 전혀 없습니다. 그냥 옛날이야기처럼, 이러저러한 엄청난 악당이 있었다, 는 만화영화식으로 악당의 선재를 전제합니다. 만화영화에서는 무수히 많은 악당이 존재하지만, 그 결과만 있지 과정은 아무리 찾아도 없습니다. 세계는 넓다지만, 엄청난 사이즈의 악당으로 등극하려면 당연히 돈과 인력을 집적하는 과정이 수반되어야 하며, 전 세계의 집중된 이목을 감내하여야 하고, 무엇보다도 모사드와 같은 국가차원의 감시망을 뚫어야 합니다. 악당의 생성 자체가 비현실적 가정입니다. 007시리즈의 본질이 만화영화와 별반 다름이 없음을 실증적으로 확인하는 순간입니다.

 

2법칙 : 융성의 법칙

1980년대 농구대잔치의 백미는 삼성과 현대의 라이벌전이었습니다. 상대가 강해야 라이벌전은 뜨거운 법입니다. 김현준과 이충희의 불꽃튀는 대결이 재미에 불을 붙입니다. 일방적인 경기는 파리를 날립니다. 악당이 강해야 제임스 본드의 활약이 빛이 나는 법입니다. 극강의 악당이 무대를 흔들어야 세계를 구원하는 제임스 본드의 활약이 빛이 나는 법입니다. ‘스파이더맨시리즈를 보더라도 좀도둑이나 소매치기를 잡는 스파이더맨의 활약은 그냥 맛보기로만 활용되기 마련입니다. 007시리즈에서는 악당이 단순한 악당이 아니라 차원을 달리하는 악당으로 등극하는 융성의 법칙이 존재합니다. 이러한 장면 장면들은 급박하게 전개하여 이 악의 무리들을 쓸어버릴 제임스 본드를 소환하는 장치로 활용됩니다.

 

악당은 러시아가 구축한 골든아이(17편 골든 아이(GoldenEye)에서 사용된 극강의 무기)를 조종하여 세계를 박살낼 무기를 손에 쥐거나, 거대한 잠수함을 탈취하는 대형선박이나 해양구축물(10나를 사랑한 스파이(The Spy who loved me)’) 정도의 스케일이 되어야 비로소 뽀다구가 나면서 비로소 제임스 본드의 활약무대가 설정됩니다. 기왕이면 우주기지(11문레이커(Moonraker)’) 정도는 되어야 제임스 본드의 활약이 더욱 돋보입니다. 007시리즈물 내내를 관통하는 스펙터는 아예 내놓고 그림자 정부라는 표현을 쓰면서 거대한 스케일의 악당으로 묘사됩니다. 악당을 과장해야 제임스 본드가 더 커보이고 활약이 빛나기 때문에 악당을 키워주는 작업, 즉 융성의 법칙은 깨기 어렵습니다.

 

거대한 스케일의 악당은 필연적으로 위대한 제임스 본드가 악전고투로 악당을 잡았다, 는 플롯을 위한 밑밥입니다. 그리고 본드걸은 언제나 이렇게나 급박한 순간에 등장하여 관객에게 한 박자 쉬라는 휴게시간(?)을 부여합니다. 물론 본드와의 사랑은 뜨겁게 합니다. 이 장면에서 군가 멋진 김일병의 가사가 오버랩 됩니다. 007시리즈에서는 묘하게도 악당과 본드걸의 활약이 동시진행형입니다. 악당도 뜨겁고 본드의 사랑도 뜨거운 법이라는 복선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전장에서 피는 꽃이 더 강렬한지는 모르겠지만, 적과의 일전을 앞두고는 언제나 본드걸과 에로틱한 장면이 연출됩니다.

 

3법칙 : 소멸의 법칙

악당의 거대시설물은 거의 예외없이 파괴를 통해서 소멸합니다. 14어 뷰 투 어 킬(A View to a Kill)’에서는 비교적 소규모인 비행선에서 악당이 최후를 맞지만, 대부분의 시리즈에서는 거대한 시설물과 함께 악당은 파괴됩니다. 보는 내내 저 엄청난 스케일의 시설물이 아깝다는 생각이 절로 납니다. 미니어처 시설물인 문레이커(11문레이커(Moonraker)’)나 화산기지(5두 번 산다(You Only Live Twice)’) 등의 경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그다지 안 들지만, 골든아이(17편 골든 아이(GoldenEye)나 섬기지(23스카이폴(Skyfall)’)의 경우나 스펙터기지(24, ‘스펙터(Spectre)’)와 같이 스케일의 차원이 다른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007제작자는 결국에는 파괴할 시설물이지만, 회차가 이어질수록 정성을 들여서 짓습니다. 실은 악당의 기지의 스케일과 시리즈의 스케일은 정비례합니다. 악당의 스케일이 커야 제임스 본드가 힘자랑을 할 공간이 커지고 활약이 빛이 납니다. 관객들이 살아있는 것은 전적으로 제임스 본드 때문이라는 괴상한 착각에 빠지게 하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악당의 본거지는 파괴됩니다. 아니 파괴되지 않으면 007시리즈는 끝이 난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본드는 상관에게 우쭈쭈하는 상황보다는 본드걸과 밀린 밀어를 나누기에 급급합니다. 이 엄청난 것은 나에게는 별 것도 아냐, 라는 뻐김이 당연히 들어갑니다. 그리고는 기약도 없는 휴가를 받고 007시리즈는 끝이 납니다. 첩보원도 공무원인데, 그렇게 엄청난 휴가를 받을 수 있는지 아리송하지만, 그냥 넘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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