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세대들은 자라면서 그들의 부모세대들인 5060세대들로부터, 공부해라, 명문대 가라, 라는 류의 잔소리를 질리도록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좋아하는 PC게임, 아이돌의 음악, 영화 등에 대하여는 ‘하지 말라’는 소리만을 들었습니다. 내용과 무관하게 책은 좋다, 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부모세대들에게 반감을 키우면서 자랐습니다. 그런데 그들이라고 정작 부모세대들도 어려서는 그들과 똑같은 잔소리를 들으면서 자랐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당신들이나 잘하세요, 라는 소리가 목구멍을 타고 오르는 것을 간신히 막으면서 자라났습니다.
우리들이 자라날 때는 노트북, 휴대폰, 인터넷, 자가용 등과 같은 것은 상상조차 못했다. 초등학교시절에는 이부제수업으로 콩나물교실에서 수업을 듣고, 중·고교시절에는 만원버스로 등하교를 하면서 고생바가지를 뒤집어쓰고 자랐으면서도, 전체 고교졸업생 중에서 딱 20% 정도만 대학물을 먹었다. 무엇보다도 단칸방살이로 집 없는 설움을 혹독히 겪으면서 자라났다, 라는 일련의 잔소리를 들으면서 2030세대들은 자라났습니다. 도대체 가난하게 살고, 어렵게 산 것이 무슨 자랑거리이고, 무슨 인생의 훈장이라도 되는지, 이를 핑계로 자식세대들을 쥐잡듯이 했던 것에 익숙했던 2030세대들은 5060세대들에게 강한 불만을 쌓으면서 자라났습니다. 정작 그들도 일제강점기나 전후세대들보다는 나은 환경에서 자라지 않았나, 하는 불만도 품었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시대가 달라도 고생을 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며, 이는 공부하는 것과 노는 것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지 환경이 변해서 놀이의 수단이나 방법이 달라질 뿐입니다. 2030세대들에게 잔소리를 해대던 바로 그 세대들이라고 학창시절에 얌전히 공부만 하고 독서만 했을 리는 만무합니다. 5060세대들이 그들의 부모세대들인 8090세대들로부터 잔소리를 듣던 나이때는, 남자들은 전쟁놀이, 칼싸움, 말타기, 딱지치기와 구슬치기 등을 했고, 여자들은 고무줄과 사방치기, 그리고 숨바꼭질을 했습니다. 온라인시대가 아니었기 때문에 다 같이 오프라인에서 어울려 놀았습니다. 수단이 달랐을 뿐 노는 것 자체는 같았습니다. 그리고 지금과 달리 그 시절은 TV에 목을 메는 시절이었습니다. 어제 TV에서 뭐를 봤다, 가 인사인 시절이었습니다. 전쟁놀이가 단연 나시찬의 ‘전우’의 영향을 받고, 칼싸움이 ‘타잔’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던 것이 당연한 시절이었습니다.
흑백필름으로 남은 나시찬의 ‘전우’는 지금 보면 엉성하기 그지없습니다. 인민군은 국군이 총을 쏘면 스치기만 해도, 으악! 소리를 내면서 죽어갑니다. 그리고 국군은 아무리 인민군이 따발총을 쏴도 스치는 정도에 불과합니다. 무슨 총이 요술을 부리는 듯합니다. 그래도 그 시절 ‘전우’는 먹어줬습니다. 볼거리, 즐길거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TV는 전 국민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었기 때문입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 그리고 ‘블랙호크 다운’에 익숙한 세대는 ‘전우’를 보면 유치뽕이라고 코웃음을 칠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공중파방송국에서 10여년 전에 최수종 주연의 ‘전우’가 방영된 이후에 전쟁물은 전멸입니다. 돈이 드는 사극도 사망하였습니다. 이제 전쟁이 소재가 된 영화나 드라마는 헐리우드 영화나 넷플릭스 등 OTT가 제작하는 드라마가 아니면 살아남기 어려운 시대입니다.
‘태극기를 휘날리며’의 임팩트가 강했지만, 전쟁영화 자체는 이제 한국에서 제작되기 어렵습니다. 그 많은 엑스트라를 확보하기도 어렵거니와 리얼리티의 구현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전쟁물인 ‘고지전’은 케이블방송을 중심으로 마치 사골국을 우려내듯이 지속적으로 방영이 됩니다. 뭔가 다양성을 추구한다는 취지로 전쟁물을 방영하려 해도 최근의 방화는 ‘고지전’이 거의 유일하다시피 하기 때문입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임팩트가 워낙 커서 헐리우드에서도 블록버스터급이 아니면 전쟁물은 엄두도 내지 못합니다. ‘고지전’은 처음에는 스토리도 모르면서 꾹 눌러참고 보다가 나중에는 숨어있는 진가를 찾는 영화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609aXCEWLkg
‘고지전’의 진가는 그 이전 전쟁영화나 드라마에서 지겹도록 반복되었던 반공주의 일방통행을 지양했기에 가치가 있습니다. 인민군이랑 국군이랑 인종 자체가 다를 바가 없음에도 그동안 반공에 함몰되어서 인민군을 악마로 둔갑시키는 것에 과몰입한 것이 그 이전 영화나 드라마의 상투공식이었습니다. ‘고지전’은 비록 인민군의 시각에서 전개를 하지만, 양 측 모두 같은 민족이고 전쟁의 피해자라는 시각에서 전개합니다. 반공주의를 탈피한 것입니다. 비록 전장에서는 목숨을 걸고 싸우는 두 진영이지만, 가상의 애록고지를 두고 아무런 소명이 없이 뺐고 뺐기는 싸움을 반복하는 장면과 비밀아지트에서 서로의 편지를 전해주는 대조적인 장면이 이 영화의 압권입니다. 전장에서 보기 어려운 미모의 인민군 스나이퍼가 실은 가장 냉혹한 킬러였다는 대조적인 장면, 그리고 국군을 참살했던 미녀 스나이퍼가 결국은 잔인하게 죽임을 당하는 대조적인 장면 등 이 영화는 지속적으로 대조적인 장면을 환기하면서 관객의 흥미를 돋웁니다. 그리고 고수, 신하균, 그리고 이제훈을 둘러싼 갈등의 전개와 심화도 이 영화의 또다른 재미입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공동경비구역 JSA’로부터 이어진 냉전이데올로기의 허무함, 그리고 남북의 동질성의 환기가 이 영화의 진정한 가치입니다. 같은 민족이고 같은 말과 글자, 그리고 같은 정을 느끼는 사람들 간에 아무런 의미도 없이 죽고 죽이는 전쟁이라는 인간성훼손의 장에서 겪는 생존법칙이 이 영화가 주장하는 주제일 것입니다. 적어도 이 5060세대들이 일방적으로 주입을 받던 반공이라는 시대조류를 탈피했다는 점에서 오히려 후배세대들의 생각이 옳다는 역설적 가르침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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