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수의 인생작 ‘슈퍼스타 감사용’에서 감동적인 장면, 그리고 인상적인 대사가 한 장면에서 나옵니다. ‘한 번만이라도 이기고 싶었어요!’하면서 꼴찌팀의 투수 감사용이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며 대성통곡하는 장면과 대사가 바로 그 장면이자 대사입니다. 이 장면은 마침 제가 극장에서 봤는데, 많은 관객이 실제로 울었고, 저 역시 저절로 눈물을 흘렸습니다. 승부는 재미일 수도 있지만, 잔인한 현실이라는 점을 절절하게 보여주는 명장면입니다. 그런데 이 장면보다 더 잔인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당시 감사용 정도의 구위로는 요즘에는 아예 프로야구선수로 지명 자체를 받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당시 감사용과 상대했던 원년 프로야구 개막전 만루홈런의 사나이 이종도는 감사용이 나오면 동료선수들은 ‘감사해용’이라고 그의 이름을 빗댄 농담을 주고받으면서 즐거워했다고 어느 유튜브방송에서 고백했습니다. 한술 더 떠서 실업야구 홈런왕 출신 김우열은 감사용이 등판하면 ‘행복한 순간’이라고 고백했습니다. 프로야구 출범연도인 1982년였기에, 게다가 선수가 부족했던 당시 삼미슈퍼스타즈였기에, 실업야구에서도 후보선수 수준인 감사용이 프로야수선수가 되었던 것입니다. 더군다나 그는 좌완투수라는 이점 때문에 방출도 되지 않고 몇 년을 더 선수생활을 했습니다. 실은 감사용은 행운아였던 것입니다.
한국야구위원회 총재의 사실조회에 관한 회신에 의하면 프로야구는 고교, 대학, 실업 등에서 최고의 기량을 가진 선수만이 입단이 가능하며, 입단 후에도 냉혹한 경쟁속에서 끊임없이 노력하는 선수만이 프로세계에 존재할 수 있고, 정신적, 신체적으로 결함이 있는 선수는 프로야구에 활약이 불가능하며, 감독, 코치 등 야구에 관련된 일에 종사할 수 없다.
(대법원 1991. 6. 11. 선고 91다7385 판결 중에서)
위 판결문은 1984년에 입단한 어느 프로야구선수가 방위병복무 도중 재해를 입고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의 판결문의 일부입니다. 대법원은 비록 한국야구위원회 총재의 사실조회를 빌리는 형식을 취했지만, 얼마나 프로야구선수가 되기 어려운가를 절절히 알려주고 있습니다. 최근 열풍이 뜨거운 최강야구 몬스터즈의 아마야구선수들의 프로지명과정에 대한 방송에서도 그 어려움이 그대로 재현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지명이 되도 1군무대는 구경도 하지 못하고 2군을 전전하다가 은퇴하는 선수들이 부지기수입니다. 또한 1군무대에 나섰어도 성적이 저조한 선수들이 부지기수입니다. 1군무대에서 주전으로 꾸준히 성적을 올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염경엽은 고려대 재학당시부터 저조한 타격으로 악명(?)이 높았다고 합니다. 물론 기록이 실제로 저조한지는 모르지만, 정기 연고전을 다녀온 제 친구의 말을 빌리자면, 염경엽이 타석에 등장하면 거의 기대가 되지 않았던 선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염경엽은 그 어려운 프로야구선수에 지명이 되었습니다. 놀랍게도 1군무대 타석에서도 등장했습니다. 물론 예상대로(!) 타격성적은 처참했지만, 지명을 받고 1군무대에서 활약을 했다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염경엽은 타격은 처참했지만, 수비와 주루에서 강점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그러나 타격이 처참한 선수에게 기회는 오래 갈 리가 만무합니다. 어느 날인가부터 그는 사라졌습니다.
세월이 흘러 그는 넥센 히어로즈의 감독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기아 타이거스의 감독인 김기태와 맞대결을 펼치면서 둘의 인연을 어느 인터뷰에서 소개하였습니다.
- 김기태 감독이랑은 광주일고 동창친구입니다. 김기태 감독은 그때부터 차원이 다른 강타자였습니다. 국가대표 4번타자를 지내고 쌍방울 레이더스의 간판타자를 지냈지요. ‘왕방울’이란 별명도 얻었지요. 선수로서는 비교 자체가 민망한 수준입니다. 그런데 막상 둘 모두 감독이 되어서 제가 김기태 감독을 이기니까 묘한 기분이 들더군요. 친구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고요.
걸출한 선수가 반드시 뛰어난 감독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박찬호가 LA 다저스에 입단했을 당시의 고 토미 라소다 감독은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했던 선수 출신이 아닙니다. 마이너리그를 전전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지도자로 변신하여 피나는 노력을 했고 명장 소리를 들었습니다. 미국에서도 선수시절에는 그저그런 수준의 감독이 지도자로서는 명성을 높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염경엽은 선수로서는 처참한 성적을 냈지만, 감독으로서는 역량을 인정받은 경우입니다. 팀을 옮겨가면서 염경엽이 감독을 하는 것은 감독으로 성과를 냈다는 반증입니다. 프로야구 감독이 그리 만만한 자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염경엽은 ‘염갈량’이라는 소리를 듣는 지략가입니다. 그 이전에 선수시절의 쓰라림을 겪은 탓인지 선수들의 아픔을 잘 이해하는 말을 언론에 자주 합니다. 국보급 선수였던 선동열이 선수에게 상처가 되는 막말에 가까운 말을 공개적으로 했던 것과 무척이나 대조적입니다. 최강야구를 가끔 보면서 인상적인 장면을 주목합니다. 그 인상적인 장면 중에서 저에게 가장 압도적인 것은 가족이 선수가 등장할 때, 관중석에서 기도를 올리는 장면입니다. 실은 그 이전에도 백일기도를 하고 불공을 드리는 가족이 대부분입니다. 선수는 물론 그 가족에게도 야구가 중요한 인생의 일부인 것입니다. 인터넷을 보면, 염경엽은 물론 다른 감독, 나아가 선수들에게 팬을 빙자하여 도를 넘는 막말이 난무합니다. 팬이라는 이름으로 욕설과 막말이 정당화되는지 의문입니다.
한화 이글스의 영원한 팬이지만, 염경엽의 성공을 언제나 기원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선수로서는 실패한 인생이었지만, 감독이라는 패자부활전에서 성공하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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