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ess’는 중학교 영어 수준의 단어입니다. 그런데 ‘스트레스가 쌓인다.’라는 의미로 쓰이는 스트레스는 ‘강세’라는 본래적인 의미와 전혀 다른 의미로 쓰이며, 버스나, 택시 등과 같이 한국어화 한 외래어입니다. 국어사전에서는 이러한 스트레스에 대하여 ‘적응하기 어려운 환경에 처할 때 느끼는 심리적ㆍ신체적 긴장 상태. 장기적으로 지속되면 심장병, 위궤양, 고혈압 따위의 신체적 질환을 일으키기도 하고 불면증, 신경증, 우울증 따위의 심리적 부적응을 나타내기도 한다.’라고 그 개념을 정의합니다. 스트레스는 의학에서도 자주 등장하지만, 산업재해나 공무상 재해 등 각종 재해의 원인으로도 쓰이는 대단히 중요한 개념입니다.
○스트레스가 맥가이버처럼 각종 재해의 원인으로 다양하게 쓰이는 것을 실증적인 사례로 봅니다. 대법원은 자살(대법원 2015. 6. 11. 선고 2011두32898 판결)은 물론, 간질환(대법원 2009. 1. 15. 선고 2007두23439 판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대법원 2021. 8. 19. 선고 2019다297137 판결) 등의 원인으로도 지목을 했습니다. 물론 그 외에도 개인질환의 성격이 있는 각종 암에도 스트레스를 원인으로 인정을 했습니다. 각종 질병의 원인 중에서 심리적인 요인이 있다는 점은 의학상식으로도 인정이 가능하기에, 대법원은 스트레스와 재해 간에 ‘상당인과관계가 존재한다면’ 재해를 긍정하는 것이 주류입니다.
○동네 병원에 가더라도 대부분의 의사는 ‘스트레스’를 받지 말고 마음 편하게 먹으라는 권고를 합니다. 마음 속의 화는 만병을 키우는 근원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스트레스는 막연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아무런 걱정과 근심이 없이 산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학생들은 성적에 대하여, 노인들은 각종 질환과 돈에 대하여, 직장인들은 승진과 업무에 대하여, 주부는 가계 문제로 모든 현대인들은 우울증에 걸릴 정도로 스트레스에 시달립니다. 옥스포트 사전에 한국어인 화병(hwa-byung)이 등재된 것이 우연이 아닙니다.
○이렇게 스트레스는 천태만상입니다. 스트레스도 양과 질이 있습니다. 요즘에는 일본어투라 잘 쓰이지 않지만 ‘즐거운 비명(うれしいひめい [うれしい悲鳴])’과 같은 것도 넓게 보면 스트레스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대법원에서 재해와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한 것은 소박한 국민의 눈으로 봐도 재해와 연관성이 있다고 본 사안입니다. 그러나 비유형적인 스트레스와 재해 간에 상당인과관계를 긍정하면 ‘구체적 타당성’이라는 법률의 원칙은 구현할 수 있어도 또 다른 원칙인 ‘법적 안정성’이라는 것이 훼손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재해자의 개별적인 특성도 당연히 고려되어야 하기에, 더욱 일반화하기 어려운 숙제를 던지는 것입니다.
○공무원연금공단과 근로복지공단은 이렇게 비유형적인 스트레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아이러니를 안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 공단은 업무시간 내지 근로시간이라는 비교적 객관적인 지표를 기준으로 스트레스를 판단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근로자 중에서 현장직과 사무직이 있고, 실무직과 관리직이 있는 등 모든 근로자의 개별적인 상황을 무시하고 초지일관 근로시간 내지 업무시간을 절대반지처럼 판단의 기준으로 보는 것은 대법원의 판례와도 상치됩니다. 나아가 ‘소송 권하는 사회’를 만들게 됩니다.
항소심은 정신적 스트레스가 뇌출혈을 일으켰다고 보기 어렵다며 유족의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업무시간이 사고 전 4주 동안 1주 평균 40시간 정도에 불과해 과중한 업무에 시달렸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그러나 대법원은 업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며 항소심을 다시 뒤집었다. 재판부는 “A씨는 뇌동맥류의 위험인자를 가지고 있던 상태에서 약제과를 총괄하는 지위로의 업무상 환경 변화와 약제과의 정비 및 오제조 사고 등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기존 질환이 자연적 진행 경과 이상으로 급격하게 악화해 뇌지주막하출혈로 발현돼 사망에 이른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판시했다. A씨 유족을 대리한 김용준·김위정 변호사(법무법인 마중)는 “업무시간과 실제 불이익 여부로만 업무 관련성을 판단할 것이 아닌데도 이를 잘못 판단한 원심을 바로잡은 판결”이라며 “병원 감정 없이 사회 규범적인 관점에서 뇌심혈관계질환에 대해 결론 내렸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대법원 판결1. (자살과 스트레스) 공무원연금법 제61조 제1항에서 정한 유족보상금 지급요건이 되는 ‘공무상 질병’은 공무집행 중 공무로 인하여 발생한 질병을 뜻하는 것이므로, 공무와 질병의 발생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있어야 하고, 인과관계는 주장하는 측에서 증명하여야 한다. 다만 인과관계는 반드시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며, 규범적 관점에서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는 경우에는 증명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공무원이 자살행위로 사망한 경우에, 공무로 인하여 질병이 발생하거나 공무상 과로나 스트레스가 질병의 주된 발생원인에 겹쳐서 질병이 유발 또는 악화되고, 그러한 질병으로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선택능력, 정신적 억제력이 결여되거나 현저히 저하되어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에서 자살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추단할 수 있는 때에는 공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 그리고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자살자의 질병이나 후유증상의 정도, 질병의 일반적 증상, 요양기간, 회복가능성 유무, 연령, 신체적·심리적 상황, 자살자를 에워싸고 있는 주위상황, 자살에 이르게 된 경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 (대법원 2015. 6. 11. 선고 2011두32898 판결) 대법원 판결2. (바이러스성 간염과 스트레스) 만성 바이러스성 간염은 과로나 스트레스 없이도 악화될 수 있고 임상적으로는 과로나 스트레스 없이 악화되는 경우가 더 많은 반면, 과로나 스트레스 자체가 일반적으로 만성 바이러스성 간염을 악화시킨다는 의학적 근거는 없으므로, 일반적인 경우와 달리 과로나 스트레스가 만성 바이러스성 간염의 임상경과 및 예후를 악화시켰다는 예외적인 사정이 인정되어야만 비로소 공무원연금법 제61조 제1항에 규정된 유족보상금 지급의 요건인 공무와 질병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예외적인 사정이 있다고 인정하기 위해서는, 당해 공무원이 통상적인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는 과로나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인정되는 구체적인 시기, 기간 및 정도와 그 밖에 당해 공무원에게 중복감염이나 음주와 같은 간질환 악화요인이 존재하는지 여부 등의 제반 사정을 간기능 검사, 항원항체검사 및 만성 간염 바이러스 유전자의 정량분석 등과 같은 객관적인 검사결과를 통해 인정되는 간질환의 구체적인 진행경과와 비교·검토하여야 한다. 만일 이러한 객관적인 검사결과가 없다면, 이례적인 업무 부담으로 인하여 당해 공무원에게 이러한 객관적인 검사를 받는 것 자체를 기대하기 어려웠다고 인정되는 때에 한하여 간질환의 전반적인 진행경과와 비교·검토한 결과, 당해 공무원의 경우 과로나 스트레스로 인하여 만성 바이러스성 간염이 자연적인 진행경과와 다르게 진행되었거나 만성 바이러스성 간염이 간경변 및 간세포암으로 급격하게 악화된 사실이 드러나는 등 과로나 스트레스와 간질환의 임상경과 및 예후의 악화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음을 추단할 수 있어야 한다. (대법원 2009. 1. 15. 선고 2007두23439 판결) 대법원 판결3. (외상후 장해(PTSD)와 스트레스) 성범죄 피해의 영향은 피해자의 나이, 환경, 피해 정도, 가해자와의 관계, 피해자의 개인적인 성향 등 구체적 상황에 따라 그 양상, 강도가 매우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는 범죄, 전쟁, 자연재해 등 심각한 외상을 경험한 후에 나타나는 정신병리학적 반응으로서, 보통 외상 후 짧게는 1주에서 3개월 이내에 증상이 시작되지만 길게는 증상이 나타나기까지 30년이 걸리기도 하며, 진단기준 이하로 관해(관해)되었던 증상이 재발하거나 악화되는 경우도 있다. 일부 증상들이 사건 직후에 발생하더라도 외상 사건으로부터 적어도 6개월 이후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진단기준을 충족하는 경우에는 지연성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고 한다. 성범죄로 인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뒤늦게 나타나거나, 성범죄 직후 일부 증상들이 발생하더라도 당시에는 장차 증상이 어느 정도로 진행되고 그것이 고착화되어 질환으로 진단될 수 있을 것인지 예측하기 어려울 수 있다. 이러한 경우 성범죄 당시나 일부 증상의 발생일을 일률적으로 손해가 현실화된 시점으로 보게 되면, 피해자는 당시에는 장래의 손해 발생 여부가 불확실하여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못하고, 장래 손해가 발생한 시점에서는 소멸시효가 완성되어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못하게 되는 부당한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 특히 피해자가 피해 당시 아동이었거나 가해자와 친족관계를 비롯한 피보호관계에 있었던 경우 등 특수한 사정이 있는 때에는 그 인지적ㆍ심리적ㆍ관계적 특성에 비추어 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위와 같은 경우 법원은 전문가로부터 성범죄로 인한 정신적 질환이 발현되었다는 진단을 받기 전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인한 손해의 발생이 현실적인 것으로 되었다고 인정하는 데 매우 신중할 필요가 있다. (대법원 2021. 8. 19. 선고 2019다297137 판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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