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흐르면 많은 것이 변하기 마련입니다. 예전에 변호사업계에서 쓰이던 은어(隱語)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전에 ‘찍새(현재, 파트너 변호사)’와 ‘딱새(현재, 어쏘 변호사)’라 불리던 것이 이제는 ‘파트너’와 ‘어쏘’가 대세입니다. 그 와중에 대표라 불리는 ‘오너’는 변함이 없습니다. 로스쿨의 도입으로 변호사업계 전체가 어렵다고는 하지만, 정확히는 양극화가 변호사업계의 현실입니다. 김앤장을 비롯한 ‘김광태세율바’로 불리는 메이저로펌의 매출액은 매년 갱신하고 있는 점을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메이저로펌은 사건에 치어죽고, 마이너로펌과 개인 변호사는 굶어죽는다, 라는 자조섞인 말이 나온지도 오래됐습니다. 그래도 일반 자영업자에 비하면 양반입니다.
○다음 <기사>는 로스쿨 출신 수습변호사의 자살과 업무상 재해에 대한 송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자살은 글자 그대로 본인의 선택에 따라 죽은 것이므로 당연히 업무상 재해가 아닙니다. 그러나 업무상 재해가 되는 예외적인 경우가 있습니다. 대법원 판례(대법원 2017. 5. 31. 선고 2016두58840 판결)는 ‘①극심한 업무상의 스트레스, ②그로 인한 정신적인 고통으로 우울증세가 악화, ③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선택능력, 정신적 억제력이 현저히 저하되어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에 처한 경우’에 자살을 해야 업무상 재해로 인정합니다.
○이미 2,500년 전에 석가모니가 인생의 본질은 고해(苦海)라고 설파할 정도로 누구나 고통, 즉 스트레스는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스트레스가 있다고 우울증세가 오는 것도 아니고,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판단능력이 저해되는 것도 아닙니다. 대법원 판례대로 자살까지 감행할 정도는 극히 이례적인 상황이 아니면 인정되기 어렵습니다. 뒤르껭이 자살을 ‘사회적 병리현상’이라고 주장했을 정도로 자살은 누구에게나 발생합니다. 진학을 비관하는 입시생의 자살, 그리고 고등고시를 비관하는 수험생의 자살, 부채를 감당하지 못한 사업주의 자살, 히트곡에 대한 부담 때문에 행한 가수의 자살 등 자살의 원인은 밤하늘의 별처럼 많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스트레스라는 악마와 사투를 했습니다. 자살을 업무상 재해로 쉽게 인정하기 어려움을 상식적으로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다음 <기사>는 대법원 법리상의 ‘극심한 업무상의 스트레스’로 1). 업무에 대한 부담과 2). 정규직 전환 불발에 따른 좌절을 들고 있습니다. 업무가 과도한 경우는 메이저로펌이 아닌가 하는 느낌적 느낌이기는 합니다만, 변호사시험을 합격한 변호사라면 이 정도의 업무량은 충분히 수용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반론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해당 판결을 선고한 판사도 이런 측면을 고려했으리라 봅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정규직 전환이 불가되었다고 하여 극심한 업무상 스트레스가 발현했다는 것은 의문이 있습니다. 수습을 마칠 수 있는 변호사 사무실이 해당 로펌이 전부가 아니며, 수습을 마치더라도 본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다른 선택지도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변호사는 자격사입니다. 자격증이 없는 일반인들은 자영업이 아니면, 배달기사, 그리고 일용직 등 열악한 직업을 선택해야 합니다. <기사> 속의 논거를 따르면, 업무상 스트레스를 받는 비정규직 근로자가 정규직 전환이 불발되면 자살을 해도 업무상 재해가 될 수 있다는 비약적인 논리가 성립될 수 있습니다.
○과거 헌법재판소의 판례를 비롯하여 대법원, 그리고 각급 법원의 판례는 ‘잠재적 동업자’인 변호사에 대하여 지나치게 우호적인 판결을 내리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가재는 게편’이라는 속담이 저절로 떠올리는 상황이었습니다. <기사>에 실린 수습변호사의 사례도 그런 차원이 아닌가 의구심이 듭니다. 광의의 수습근로자인 인턴의사 등에 대하여도 법리를 일반화할지는 지켜봐야 겠습니다.
<기사> 법원은 과도한 업무 환경이 A 씨의 우울증을 악화시키고 결국 극단적 선택에 이르게 한 주요 요인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A 씨가 수습 변호사로 근무하면서 상시 야근과 주말 근무를 했다"며 "정규직 전환에 대한 부담으로 인해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겪은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A 씨가 남긴 유서를 주목했다. 유서에는 "변호사로서의 업무가 내 능력을 넘어섰으며 내가 맡은 일들이 나를 더욱 고통스럽게 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A 씨는 자신이 정규직 변호사로 전환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좌절감과 변호사로서의 책임감이 스스로에게 지나친 부담으로 작용했다고 언급하며 이로 인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었음을 시사했다. 법원은 A 씨의 정신건강 진료 기록도 주요 증거로 채택했다. 재판부는 "A 씨는 로펌에서 근무한 지 약 한 달이 지난 시점부터 우울증 증세가 악화되어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했고 이후 약물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며 "변호사 업무의 특성상 고도의 지적 노동과 책임이 요구되는데 이러한 업무 환경에서 A 씨가 받았던 정신적 압박은 통상적인 수준을 넘어섰다"고 판단했다. https://www.lawtimes.co.kr/news/202069 <대법원 판례> [1]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37조 제1항에서 말하는 ‘업무상의 재해’란 업무수행 중 업무에 기인하여 발생한 근로자의 부상·질병·신체장애 또는 사망을 뜻하는 것이므로 업무와 재해발생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 그 인과관계는 이를 주장하는 측에서 증명하여야 하지만, 반드시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며 규범적 관점에서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는 경우에는 증명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근로자가 극심한 업무상의 스트레스와 그로 인한 정신적인 고통으로 우울증세가 악화되어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선택능력, 정신적 억제력이 현저히 저하되어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에 처하여 자살에 이르게 된 것으로 추단할 수 있는 경우라면 망인의 업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될 수 있고, 비록 그 과정에서 망인의 내성적인 성격 등 개인적인 취약성이 자살을 결의하게 된 데에 영향을 미쳤다거나 자살 직전에 환각, 망상, 와해된 언행 등의 정신병적 증상에 이르지 않았다고 하여 달리 볼 것은 아니다. [2] 은행원 갑이 지점장으로 부임한 후 영업실적 등에 관한 업무상 부담과 스트레스로 중증의 우울병 에피소드 등을 진단받고 정신과 치료를 받다가 계속된 업무상 부담으로 중압감을 느낀 나머지 출근하였다가 자살한 사안에서, 우울증 발현 및 발전 경위에 망인의 유서내용, 자살 과정 등 제반 사정을 종합하여 보면, 갑이 우울증으로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선택능력, 정신적 억제력이 현저히 저하되어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에 처하여 자살에 이르게 된 것으로 추단되므로 갑의 업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고, 비록 갑이 다른 지점장들에 비해 지나치게 과다한 업무를 수행하였다거나 회사로부터 지속적인 압박과 질책을 받는 등 특별히 가혹한 환경에서 근무하였던 것이 아니어서 업무상 스트레스라는 객관적 요인 외에 이를 받아들이는 망인의 내성적인 성격 등 개인적인 취약성이 자살을 결의하게 된 데에 일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고, 자살 직전에 환각, 망상, 와해된 언행 등의 정신병적 증상을 보인 바 없다고 하여 달리 볼 것은 아니(다). (대법원 2017. 5. 31. 선고 2016두58840 판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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