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구로공단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다룬 이문열의 소설 ‘구로아리랑’에서 공단의 현장직 근로자들을 ‘공돌이’, 그리고 ‘공순이’라 비하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실은 그 당시 공장에서 근무하는 생산직 근로자들을 비하하는 ‘공돌이’와 ‘공순이’는 일상적인 단어였습니다. 그리고 노동해방을 외친 박노해의 일련의 시와 산문에서도 단골손님격으로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러한 단어들은 찾기가 어렵습니다. 타인을 비하하는 단어 자체가 지탄을 받기도 하지만, 생산직 근로자들의 처우가 과거와는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입니다.
○급기야는 ‘신의 직장’이라 불리는 공공기관의 직원과 비교까지 되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이러한 반전은 1980년대 후반 현대자동차 생산직을 중심으로 한 노동조합의 투쟁의 산물이라는 점에 아무런 이의가 없을 것입니다. 현대자동차나 현대중공업 등 제조업은 생산직을 중심으로 기업의 이익이 실현되는 구조이기에, 생산직 사원의 파업은 기업 자체의 존망을 좌우하기에 생산직 근로자가 대거 노동운동에 참여하면 필연적으로 처우는 상승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뭐든 그렇지만 지나치면 오히려 미치지 못하는 법입니다. 현대자동차 노동조합과 체결한 단체협약 중 산재유족의 자녀의 특별채용조항의 효력을 두고 사회의 뜨거운 이슈까지 되었습니다.
○그래서 단체협약 중 유족자녀 특별채용조항에 대하여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결론을 도출하였습니다. 과거 ‘공돌이’, ‘공순이’라는 명칭이 남발되던 시절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아무튼 이 전원합의체 판결의 쟁점은 1). 유족의 사측에 대한 산업재해로 인한 손해배상청구(일명 ‘근재청구’), 2). 유족자녀의 채용의 청약에대한 기아자동차 또는 현대자동차(예비적 청구)의 채용승낙의 의사표시를 구하는 청구였습니다. 전자에 대하여는 다툼이 거의 없이 유족의 청구가 인정되었고, 후자에 대하여 뜨거운 사회적 담론이 이어지다가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에 대한 청년층의 분노를 유발하다가 마침내 단체협약 상 유족자녀 특별채용조항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기사> 참조).
○이 판결의 본격적인 쟁점에 앞서 상대방의 의사표시에 갈음하는 법원의 재판, 즉 의사의 진술을 명하는 법원의 재판을 음미해 봅니다. 이것은 법률적 구속이 있는 의사표시를 발할 의무가 있는 상대방에 대하여 법원이 강제이행의 방법으로 이행하는 민법상의 제도(민법 제389조 제2항)로서 소송실무에서 널리 활용되는 방법입니다. 소유권이전등기절차이행의무를 구하는 소송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단체협약에서 유족자녀의 특별채용을 규정하고 있는데, 이 조항의 효력이 인정된다면 사측은 채용을 구하는 유족자녀의 청약에 대하여 승낙이라는 의사표시를 하여야 하며, 법원은 사측에 대하여 승낙의 의사표시를 갈음하는 판결을 하게 됩니다. 문제는 이 단체협약의 유효성입니다.
○다수의견은 노조자녀들의 특별채용이 인정된다면 현대자동차의 생산직으로 취업하려는 청년 중 누군가는 불합격의 고배를 마셔야 하지만, 사용자가 헌법상의 직업의 자유(헌법 제15조)와 재산권의 행사의 자유(헌법 제23조)를 갖는 반사적 결과로 인하여 결국 민법 제103조가 규정하는 반사회질서의 법률행위라고 볼 수 없기에(단체협약도 사법상의 법률행위입니다), 결국 단체협약은 유효라고 보았습니다. 노사자치가 지배하는 단체협약의 체결에 대하여 법원의 판결이라는 국가의 공권력의 개입은 자제되어야 한다는 시각이 근저에 있는 법리전개입니다. 그런데 대법원 다수의견 중 직업의 자유를 언급하는 부분은 자율적인 경제질서와 시장경제를 천명하는 경제조항(헌법 제119조)이 보다 직접적인 근거가 아닌가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주목되는 것이 반대의견입니다. 반대의견의 기본 취지는 현대자동차의 생산직은 누구나 선호하는 양질의 직장인데, 단지 유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양질의 직장에 무임승차를 하는 것이야말로 노동조합의 과도한 특혜를 넘어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 조항으로 반사회질서 법률행위로 보았습니다. 구체적으로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기업의 필요성이나 업무능력과 무관한 채용기준을 채택하기로 노사가 합의하였고 그러한 기준이 기업의 규모와 근로자 수, 해당 기업의 일반적인 채용방식, 특정한 목적 달성을 위한 채용기준의 적합성, 관련 법령의 규정, 채용 기회의 공정에 대한 사회적 인식 등에 비추어 볼 때 해당 기업에 대한 구직희망자들이나 다른 조합원을 합리적 이유 없이 차별하는 것이어서 공정한 채용에 관한 정의관념과 법질서를 벗어난 경우에는 민법 제103조가 정하는 사회질서에 위반되는 법률행위로 평가할 수 있다.’라고 설시하였습니다. 점잖은 표현이지만 그 내용은 다소 과격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무튼 대법원은 단순히 법리적인 측면에서만 판단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 때문에 형식상은 산재 유족 특별채용 조항이 기아자동차 및 현대자동차라는 국내 굴지기업의 채용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정도에 이르거나 채용 기회의 공정성을 현저히 해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고 볼 특별한 사정을 인정하기 어려우므로,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되어 무효라고 볼 수 없다고 판시하였습니다. 그러나 반대의견 등을 종합하면, 과거 1970년대 무시받던 생산직 근로자들의 신분상승을 확연하기 느낄 수 있는 판결이면서 우리 사회의 변화된 시각을 인지할 수 있는 판결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현대판 ‘음서제’로 불렸던 대기업 노동조합원 자녀의 채용 특례조항을 현대차(005380) 노조가 공식 폐지하기로 했다. 지난해 국정감사를 전후해 ‘고용세습’ 논란이 불거진 후 청년층을 중심으로 분노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주요 대기업 사업장은 관련 조항을 없앴고 미적거리던 노조도 사회적인 공분에 관련 조항 폐지에 동의했다,https://www.sedaily.com/NewsView/1VE267GVAB <대한민국헌법> 제11조 ①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②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 ③ 훈장등의 영전은 이를 받은 자에게만 효력이 있고, 어떠한 특권도 이에 따르지 아니한다. 제15조 제15조 모든 국민은 직업선택의 자유를 가진다. <민법> 제103조(반사회질서의 법률행위)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한 사항을 내용으로 하는 법률행위는 무효로 한다. 제389조(강제이행) ①채무자가 임의로 채무를 이행하지 아니한 때에는 채권자는 그 강제이행을 법원에 청구할 수 있다. 그러나 채무의 성질이 강제이행을 하지 못할 것인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②전항의 채무가 법률행위를 목적으로 한 때에는 채무자의 의사표시에 갈음할 재판을 청구할 수 있고 채무자의 일신에 전속하지 아니한 작위를 목적으로 한 때에는 채무자의 비용으로 제삼자에게 이를 하게 할 것을 법원에 청구할 수 있다. ③그 채무가 부작위를 목적으로 한 경우에 채무자가 이에 위반한 때에는 채무자의 비용으로써 그 위반한 것을 제각하고 장래에 대한 적당한 처분을 법원에 청구할 수 있다. ④전3항의 규정은 손해배상의 청구에 영향을 미치지 아니한다. <대법원 판결> [1] [다수의견] 단체협약이 민법 제103조의 적용대상에서 제외될 수는 없으므로 단체협약의 내용이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배된다면 그 법률적 효력은 배제되어야 한다. 다만 단체협약이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배되는지를 판단할 때에는 단체협약이 헌법이 직접 보장하는 기본권인 단체교섭권의 행사에 따른 것이자 헌법이 제도적으로 보장한 노사의 협약자치의 결과물이라는 점 및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 의해 이행이 특별히 강제되는 점 등을 고려하여 법원의 후견적 개입에 보다 신중할 필요가 있다. 헌법 제15조가 정하는 직업선택의 자유, 헌법 제23조 제1항이 정하는 재산권 등에 기초하여 사용자는 어떠한 근로자를 어떠한 기준과 방법에 의하여 채용할 것인지를 자유롭게 결정할 자유가 있다. 다만 사용자는 스스로 이러한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것이므로, 노동조합과 사이에 근로자 채용에 관하여 임의로 단체교섭을 진행하여 단체협약을 체결할 수 있고, 그 내용이 강행법규나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이상 단체협약으로서의 효력이 인정된다. 사용자가 노동조합과의 단체교섭에 따라 업무상 재해로 인한 사망 등 일정한 사유가 발생하는 경우 조합원의 직계가족 등을 채용하기로 하는 내용의 단체협약을 체결하였다면, 그와 같은 단체협약이 사용자의 채용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정도에 이르거나 채용 기회의 공정성을 현저히 해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 이러한 단체협약이 사용자의 채용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정도에 이르거나 채용 기회의 공정성을 현저히 해하는 결과를 초래하는지는 단체협약을 체결한 이유나 경위, 그와 같은 단체협약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과 수단의 적합성, 채용대상자가 갖추어야 할 요건의 유무와 내용, 사업장 내 동종 취업규칙 유무, 단체협약의 유지 기간과 준수 여부, 단체협약이 규정한 채용의 형태와 단체협약에 따라 채용되는 근로자의 수 등을 통해 알 수 있는 사용자의 일반 채용에 미치는 영향과 구직희망자들에 미치는 불이익 정도 등 여러 사정을 종합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대법관 이기택, 대법관 민유숙의 반대의견] 노사가 업무상 재해로 사망한 근로자의 가족을 보호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해 두는 것은 권장할 일이지만 그러한 대책은 실질적으로 공평하며 법질서에 맞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한 대책이 유족과 같은 입장에서 절실하게 직장을 구하는 구직희망자를 희생하거나, 사망 근로자 중 일부의 유족만 보호하고 다른 유족은 보호에서 제외하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기업의 필요성이나 업무능력과 무관한 채용기준을 채택하기로 노사가 합의하였고 그러한 기준이 기업의 규모와 근로자 수, 해당 기업의 일반적인 채용방식, 특정한 목적 달성을 위한 채용기준의 적합성, 관련 법령의 규정, 채용 기회의 공정에 대한 사회적 인식 등에 비추어 볼 때 해당 기업에 대한 구직희망자들이나 다른 조합원을 합리적 이유 없이 차별하는 것이어서 공정한 채용에 관한 정의관념과 법질서를 벗어난 경우에는 민법 제103조가 정하는 사회질서에 위반되는 법률행위로 평가할 수 있다. [2] 갑 주식회사 등이 노동조합과 체결한 각 단체협약에서 업무상 재해로 인해 조합원이 사망한 경우에 직계가족 등 1인을 특별채용하도록 규정한 이른바 ‘산재 유족 특별채용 조항’이 민법 제103조에 의하여 무효인지 문제 된 사안에서, ① 업무상 재해에 대해 어떤 내용이나 수준의 보상을 할 것인지의 문제는 그 자체로 중요한 근로조건에 해당하고, 갑 회사 등과 노동조합은 이해관계에 따라 산재 유족 특별채용 조항이 포함된 단체협약을 체결한 것으로 보이는 점, ② 산재 유족 특별채용 조항은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여 실질적 공정을 달성하는 데 기여한다고 평가할 수 있고, 보상과 보호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유효적절한 수단이라고 할 수 있는 점, ③ 갑 회사 등이 산재 유족 특별채용 조항에 합의한 것은 채용의 자유를 적극적으로 행사한 결과인데, 법원이 이를 무효라고 선언한다면 갑 회사 등의 채용의 자유를 부당하게 제한하는 결과가 될 수 있는 점, ④ 갑 회사 등의 사업장에서는 노사가 오랜 기간 산재 유족 특별채용 조항의 유효성은 물론이고 그 효용성에 대해서도 의견을 같이하여 이를 이행해 왔다고 보이므로 채용의 자유가 과도하게 제한된다고 평가하기 더욱 어려운 점, ⑤ 산재 유족 특별채용 조항으로 인하여 갑 회사 등이 다른 근로자를 채용할 자유가 크게 제한된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구직희망자들의 현실적인 불이익이 크다고 볼 수도 없는 점, ⑥ 협약자치의 관점에서도 산재 유족 특별채용 조항을 유효하게 보아야 함이 분명한 점을 종합하면, 산재 유족 특별채용 조항이 갑 회사 등의 채용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정도에 이르거나 채용 기회의 공정성을 현저히 해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고 볼 특별한 사정을 인정하기 어려우므로,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되어 무효라고 볼 수 없는데도, 이와 달리 본 원심판단에 법리오해의 잘못이 있다고 한 사례 (대법원 2020. 8. 27. 선고 2016다248998 전원합의체 판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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