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운 것이 도둑질-
○누구나 아는 속담입니다. 모든 속담이 그렇듯이 속담은 인간의 속성 내지 본능을 담고 있습니다. 배운 것이 도둑질이라는 것은 인간의 보수성을 내포합니다. 하던 것을 하려는 것이 인간의 본능적 보수성입니다. 김유신과 천관랑의 고사는 사실일 수도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짐승은 물론 인간도 관성적으로 하던 일을 그대로 하려는 속성이 있습니다. 습관, 버릇, 성격, 취미 등의 단어는 모두 인간의 보수성을 전제로 만들어진 단어입니다.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이라는 말도 인간의 보수성이 없다면 생성 자체가 불가능한 한자성어입니다.
○직업의 영역은 더욱 보수적입니다. 당장 취미와 직업을 비교하면, 누구나 후자가 압도적으로 보수적인 성향을 지닙니다. 취미는 흥미를 잃으면 바꾸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직업을 바꾸는 것은 생계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것이므로, 쉽사리 바꾸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배운 것이 도둑질’이라는 속담은 그 어떤 속담보다 현실감이 있게 다가옵니다. 도둑질과 같은 범죄에 속한 것이라도 자신의 생계와 관련이 있다면 바꾸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당장 판사가 사직하면 변호사를 하는 것이 보통이며 가수를 하는 경우는 아직 한국에서는 없는 사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 <기사>에서 대지급금(구 ‘체당금’)을 받은 사업주가 새로 동종의 사업을 창업한 것을 무작정 비난하는 것은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오랜 기간 해당 사업을 영위하다가 망한 사업주도 먹고 살아야 합니다. 다른 업종을 창업하거나 취업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는데, 후자의 경우는 쉽지 않습니다. 중년 이상의 사업주가 경력직으로 취업하는 경우는 가능하지만, 신입사원으로 취업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렵습니다. 결국 대부분의 경우는 창업으로 나갈 것입니다. 그런데 창업을 하는 경우에는 자신이 가장 잘 아는 직종이 우선순위입니다. 머리가 굳은 상태에서 새로운 업종으로 창업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렵기 때문입니다.
○<기사>에서 지적하는 것은 ‘악용’하는 사례를 들은 것으로 보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사업주가 국가가 대신 지급한 대지급금을 갚지 않고 ‘꿀꺽’한 상태로 새 사업장을 창업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국가의 구상권을 무력화시키면서 사업주가 버젓이 창업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목구멍이 포도청인 상황에서 배운 것이 도둑질인 사업주에게 마냥 창업도 하지 말고 손가락만 빨라고 요구하는 것은 가혹합니다. 망한 사업주도 국민이고, 더군다나 부양가족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여기에서 주목되는 법리가 ‘법인격부인의 법리’입니다.
○오랜 기간 대법원이 법인격부인의 법리를 채택한 것인지 여부에 대하여 다툼이 있었지만, 이제는 권리남용의 법리를 법인격의 영역으로 확장하여 정면으로 인정하였습니다. 대법원(대법원 2006. 8. 25. 선고 2004다26119 판결)은 ‘모자회사의 경우에도 이를 확장하여 구체적으로는 모회사와 자회사 간의 재산과 업무 및 대외적인 기업거래활동 등이 명확히 구분되어 있지 않고 양자가 서로 혼용되어 있다는 등의 객관적 징표가 있어야 하며, 자회사의 법인격이 모회사에 대한 법률 적용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거나 채무면탈이라는 위법한 목적 달성을 위하여 회사제도를 남용하는 등의 주관적 의도 또는 목적이 인정되어야 한다.’라고 그 법리를 확대하였습니다.
○모자회사 간에도 대법원이 법인격부인의 법리를 전개한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신규 사업을 진출하는 사업주가 자기 명의로 진출하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구상권을 실제로 실행하는 기관은 근로복지공단입니다. 대지급금은 본래 사업주가 임금 등 근로자에게 지급하여야 하는 돈을 국가가 대신 주는 것이기에, 당연히 사업주가 갚아야 합니다. 대지급금을 지급한 사업주가 국가의 구상권을 피해서 창업을 하는 것은 도덕적 해이에 해당합니다. 배운 것이 도둑질이기에 재창업을 하더라도 국가에 진 빚은 갚아야 합니다. 따라서 창업은 허용하되, 국가가 법인격부인론 등 진실한 사업주를 색출하는 기능을 활성화는 방안을 모색하여야 합니다.
<기사> 파산한 회사의 밀린 직원 월급을 정부가 대신 주고 이후 구상권을 행사하는 대지급금 제도를 악용하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 18일 김형동 국민의힘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정부에 대지급금을 변제하지 않고 새 사업을 시작한 사업장이 1230곳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재창업한 업종은 음식 및 숙박업이 288곳(23.4%)으로 가장 많았다. 제조업 211곳(17.2%)과 도소매업 193곳(15.7%)이 뒤를 이었다. 대지급금은 파산한 사업장에 대해 국가가 사업주 대신 근로자에게 일정 범위 내에서 체불된 임금을 지급하는 제도다. 지급 금액은 나중에 사업주에게 청구하고 5년 안에 갚아야 한다. 임금을 떼인 근로자의 생계 보호가 목적이지만 이를 악용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학원 등 자영업에서도 심심찮게 벌어진다. 경남에서 학원을 운영하던 B씨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는 2020년 1월 대지급금 제도를 통해 직원들의 밀린 임금 1600만원을 해결했다. 정부는 2020년 7월부터 B씨에게 금액을 변제하라는 납부서를 발송하고 독촉했지만 회수 금액은 300만원에 그쳤다. B씨는 지난해 3월 똑같은 업종으로 사업을 재개한 것으로 확인됐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15/0004903741?sid=102 <임금채권보장법> 제7조(퇴직한 근로자에 대한 대지급금의 지급) ① 고용노동부장관은 사업주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에 퇴직한 근로자가 지급받지 못한 임금등의 지급을 청구하면 제3자의 변제에 관한 「민법」 제469조에도 불구하고 그 근로자의 미지급 임금등을 사업주를 대신하여 지급한다. 1.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에 따른 회생절차개시의 결정이 있는 경우 2.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에 따른 파산선고의 결정이 있는 경우 3. 고용노동부장관이 대통령령으로 정한 요건과 절차에 따라 미지급 임금등을 지급할 능력이 없다고 인정하는 경우 4. 사업주가 근로자에게 미지급 임금등을 지급하라는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판결, 명령, 조정 또는 결정 등이 있는 경우 가. 「민사집행법」 제24조에 따른 확정된 종국판결 나. 「민사집행법」 제56조제3호에 따른 확정된 지급명령 다. 「민사집행법」 제56조제5호에 따른 소송상 화해, 청구의 인낙(認諾) 등 확정판결과 같은 효력을 가지는 것 라. 「민사조정법」 제28조에 따라 성립된 조정 마. 「민사조정법」 제30조에 따른 확정된 조정을 갈음하는 결정 바. 「소액사건심판법」 제5조의7제1항에 따른 확정된 이행권고결정 5. 고용노동부장관이 근로자에게 제12조에 따라 체불임금등과 체불사업주 등을 증명하는 서류(이하 “체불 임금등ㆍ사업주 확인서”라 한다)를 발급하여 사업주의 미지급임금등이 확인된 경우 <대법원 판례> 친자회사는 상호간에 상당 정도의 인적·자본적 결합관계가 존재하는 것이 당연하므로, 자회사의 임·직원이 모회사의 임·직원 신분을 겸유하고 있었다거나 모회사가 자회사의 전 주식을 소유하여 자회사에 대해 강한 지배력을 가진다거나 자회사의 사업 규모가 확장되었으나 자본금의 규모가 그에 상응하여 증가하지 아니한 사정 등만으로는 모회사가 자회사의 독자적인 법인격을 주장하는 것이 자회사의 채권자에 대한 관계에서 법인격의 남용에 해당한다고 보기에 부족하고, 적어도 자회사가 독자적인 의사 또는 존재를 상실하고 모회사가 자신의 사업의 일부로서 자회사를 운영한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완전한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을 것이 요구되며, 구체적으로는 모회사와 자회사 간의 재산과 업무 및 대외적인 기업거래활동 등이 명확히 구분되어 있지 않고 양자가 서로 혼용되어 있다는 등의 객관적 징표가 있어야 하며, 자회사의 법인격이 모회사에 대한 법률 적용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거나 채무면탈이라는 위법한 목적 달성을 위하여 회사제도를 남용하는 등의 주관적 의도 또는 목적이 인정되어야 한다. (대법원 2006. 8. 25. 선고 2004다26119 판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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