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이런저런 사정으로 독서에 매진을 못하지만, ‘국민’학교시절부터 학창시절 내내 엄청난 독서광이었습니다. 그 독서광의 계기는 당시 ‘학급문고’라는 일종의 교실 내의 도서관과 무협지였습니다. 책이란 재미가 있어야 보는 맛이 있는데, 무협지에서 상습적으로 등장하는 노골적인 성애 장면 때문에, 엉뚱하게도 어린 나이부터, 나쁘게 말하자면 ‘발랑 까진 놈’이었기에, 책에 재미를 붙였습니다.
1970년대 대전에서는 ‘만화방’ 또는 ‘만화가게’의 전성기였습니다. 꺼벙이 시리즈의 길창덕, 로봇 찌파의 신문수 등의 명랑만화, 그리고 최고봉 시리즈의 김영하, 독고탁 시리즈의 이상무 등의 인기가 하늘을 찔렀고, 커서 만화가가 되겠다는 친구들도 꽤나 많았습니다. 허영만이나 이근철, 황재, 김민 등의 이름도 아직도 입에 착 붙을 정도로 당시에는 만화광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간혹 만화방을 ‘대본소’라 부르는 분들이 있기에 무척이나 유감입니다. 대본소(貸本所, 카시혼쇼, かしほんしょ)는 일본어를 그대로 음차한 것으로, 이미 1970년대에는 자주 쓰이지 않았던 말이기도 하며, 굳이 쪽팔리게 일본어를 그대로 음차해서 쓸 필요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극본과 동의어인 대본(臺本)과 혼동의 우려도 있습니다.
아무튼 당시에는 중고생부터 대학생, 그리고 백수까지 만화와 무협지를 빌려보는 것이 대유행이었습니다. 무협지를 처음 접한 것은 친구네 집에 놀러가서 당시 고교생이었던 친구 형이 빌렸던 ‘와룡생’의 무협지를 무심코 읽은 것이 계기였습니다. 무협지 중간에 접혀진 부분이 있기에 읽어봤는데, 바로 그 대목이 문제의 노골적인 섹스 장면이었습니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단어인 ‘육봉(肉峯)’과 ‘옥문(玉門)’의 의미를 그때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부랴부랴 집에 와서 국어사전에서 육봉과 옥문의 의미를 찾았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 이후 중독 수준으로 무협지에 빠졌습니다.
당시 ‘국민’학생들은 남녀가 성교를 하는 것을 ‘낑을 했다’라고 표현을 했는데, ‘낑을 하는’ 생생한 장면을 보면서 얼굴이 화끈해지는 경험까지 했습니다. 물론 발기의 경험은 덤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무협지를 보면 ‘낑을 하는’ 장면부터 찾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습니다. 와룡생이라는 이름은 그 자체가 아직까지 잊을 수 없는 성교육 강사입니다. 여기저기서 무협지를 발견하면 ‘엑기스’인 섹스 장면만 보는 제 자신을 보면서, 이런 행동은 스스로에게도 뭔가 계면쩍기도 하지만 무협지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무협지를 처음부터 정독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막상 반복하여 와룡생의 무협지를 보노라면, 스토리 전개가 천편일률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백면서생인 미남자 주인공이 철천지 원수에게 부모를 잃고, 절벽 등의 외진 장소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나고 과거에 초절정 고수로 명성이 높았던 스승을 만나 비급을 전수받아 마침내 부모의 원수에 대한 복수를 한다는 것이 매번 반복되는 똑같은 스토리였습니다. 그리고 문제의 섹스 장면은 복수의 과정에서 우연히 만난 절세미녀라는 것도 전부 같았습니다. 심지어 남자 주인공은 여자에 관심이 전혀 없는데, 그 절세미녀가 먼저 유혹하는 플롯도 같았습니다. 왜 그리도 절세미녀는 10대의 소녀인지 아리송했습니다. 물론 당시 제 자신이 여학생들에게는 거의 존재감이 없었다는 쓰라린(!) 현실도 작용했습니다.
슬슬 와룡생이 짜증났습니다. 와룡생과 유사품인 와룡강을 읽었습니다. 그러나 와룡강은 물론 검궁인, 철자생, 그리고 그 이후 사마달까지 모든 무협작가의 스토리가 대동소이했습니다. 그리고 섹스 장면도 별반 차이가 없었습니다. 나중에야 무협지가 ‘저질’ 또는 ‘떡협지’라는 오명으로 비난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속칭 ‘공장시스템’으로 만들어진다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무협지 자체가 시들해질 무렵에 마침 무협지의 업그레이드 버전이자 보다 노골적인 ‘빨간 책’이라 불리는 성인잡지가 유행을 했고, 제 손에까지 들어오게 되자 아예 갈아탔습니다. 아마도 제 나이때의 사람들이라면 대동소이한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그 이후 무협지 자체를 거의 잊고 살다가 방위복무시절에는 직접 무협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비록 습작수준이었지만, 당시 행정병으로 시간이 남아돌던 시간인지라 플로피디스크에 무협지의 장면들을 심심풀이로 쓰던 버릇이 습작으로 이어졌습니다. 막상 쓰려니까 어린 시절의 경험이 새록새록 솟아났습니다. 그리고 무술 장면을 상세히 쓰는 것만으로는 면수를 채우기가 어렵다는 사실, 무엇보다도 지루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무협작가가 왜 섹스 장면을 상세히 쓰는지 이해가 갔습니다. ‘떡협지’라는 오명은 ‘야설록’ 등 신진작가의 노력으로 벗게 되었지만, 흥미를 완전히 잃은 무협지는 다시는 손에 쥐어지지 않았고, 단지 추억으로만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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