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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유승범의 이 노래 : ‘질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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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과거 정상급 스포츠신문이었던 <스포츠서울>의 재정상태가 악화되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1990년대를 전후하여 지하철에서 오늘판이 매진되는 것도 모자라 내일판까지 쇄를 거듭하여 찍으면서 절정의 인기를 누리면서 떼돈을 번다는 소문이 자자했던 스포츠신문사였는데, 개인사뿐만 아니라 기업사에서도 흥망성쇠가 존재한다는 냉정한 이치를 절감했습니다. 새옹지마라는 고사성어는 진정 자연인에게만 존재하는 것은 아닌가 봅니다. 그런데 그 시절에는 스포츠신문사의 재정이 넉넉해서였는지 인기만화는 물론 유명 연예인의 성장기 내지 회고록이 실리곤 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인기가 뜨거웠던 인물은 다이나믹한 인생을 살았던 고 이주일과 당대 인기절정의 국민배우 고 최진실이었습니다.

 

그 시절을 기억하는 분들이라면 TV를 틀었다 하면 등장하는 최진실 CF’가 떠오를 것입니다. 과장을 보태서 말하자면, 애국가 이후에 방영되는 CF중에서 대충 절반은 최진실이 등장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최진실이 세 번 연달아 등장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였습니다. 당연히 최진실의 인기가 반영된 것이며, 당시 인기 탤런트(그 시절에는 탤런트라 부르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순위에서 언제나 최진실이 선두 언저리였습니다. 그 인기가 엄근진 늘그막의 교수님에게도 이어졌는지 지금은 고인이 되신 제 은사님이 강의 시간에 최진실을 언급할 정도였습니다. 아무튼 최진실은 국민배우이자 국민CF모델인 시절로 인기절정의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당시 법대 도서관에서 저랑 담배를 즐겨 피웠던(지금은 제가 금연했지만 그 시절은 골초시절이었습니다) 선배 하나가 어려서부터 최진실을 알았다면서 소상히 최진실에 대한 일화를 소개하였습니다. 요약하자면, 최진실네는 당시 불광동에서 셋방살이를 하면서 어렵게 자랐다는 사실, 부모가 잦은 부부싸움을 했고 가끔 남편이 아내를, 즉 최진실 아버지가 어머니를 때리기도 했으며, 이에 놀란 최진실이 엉엉 울면서 동네를 배회했던 사실, 그래서인지 최진실의 얼굴은 늘 침울했던 사실, 어쩌다가 최진실이 밝게 웃으면 꽤나 예뻤다는 사실 등 최진실과 관련한 일화를 침을 튀겨가면서 상세히 말을 하곤 했습니다. 말하는 품으로 봐서 거짓말은 아닌 듯했는데, 나중에 스포츠신문에 그 선배가 했던 말과 똑같은 최진실 인생사가 실려서 무척이나 신기했습니다. 아마도 조잡한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서 당시 최진실네의 사연이 아련히 떠오르리라 생각이 듭니다.

 

최진실은 원조 CF요정이기도 했지만, 연기로서도 국민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최진실의 인기가 불을 뿜게 된 작품 중의 하나가 바로 질투였습니다. 일본에서 유래했다던 트렌디드라마로서 이응경, 최진실과 당대 최고 인기남 최수종의 삼각관계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최진실과 최수종은 설명이 필요없는 배우이지만, 이응경도 대단한 배우였습니다. 제 친구 중에서 MBC PD로 근무했던 유 아무개 PD가 있는데, 이응경을 보고 너무나 예뻐서 숨이 멎을 뻔했다는 이야기를 종종 했습니다. 그러니까 당대 최고 인기남녀 배우들이 도회풍 삼각관계를 그린 드라마가 바로 질투였습니다. 당시를 기준으로 정상급 배우들의 출연에 더하여 빠른 스토리의 전개와 화면구도의 세련된 배치 등이 더하여져 인기가 폭발했습니다.

 

당시는 공중파방송국에 돈이 몰리던 시절인 데다가, 드라마 플랫폼이 공중파방송국에 국한된 시절이기에, 공중파방송국은 당연히슈퍼갑의 지위를 차지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재정의 압박에 제작 자체를 기피하던 상황과는 정반대로 미니시리즈를 원없이 제작했습니다. 그런 시절이기에, 미니시리즈에는 당대의 최고스타가 주연배우를 맡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고도 당연한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배우만 최고였냐, 하면 그렇지도 않았습니다. 드라마ost도 당대의 최고 작곡가와 톱가수가 만들고 부르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그런데 유승범은 무명가수였음에도 불구하고 ost를 불러서 다들 의아해했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질투는 드라마뿐만이 아니라 ost도 초대박이 나서 드라마의 종영에 허무감에 빠지는 팬들까지도 있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5dgHNVmA_LI

 

 

당시 붐이 일기 시작했던 pc통신을 중심으로 일본의 유명곡을 표절했다는 시비가 일기도 했으나 그냥 묻혔습니다. pc통신시절은 아무래도 매니아를 중심으로 소수의 목소리일 수밖에 없기도 했지만, 일본 대중문화가 한국사회 전반에 퍼지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금과 같이 유튜브와 인터넷이 대중화된 시절이라면 표절은 엄두도 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설사 표절을 해도 매의 눈을 지닌 팬들의 감시를 피하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 시절 한국의 대중문화가 일본베끼기가 만연했다는 증거가 바로 질투드라마였습니다. 트렌디드라마 자체가 일본풍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제 일본이 한국 오락프로그램이나 드라마의 포맷을 수입하고, 대중가요를 표절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극적인 반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유승범은 질투의 인기는 물론 폭발적인 ost의 인기에 묻어서 MBC드라마의 ost임에도 불구하고 KBS의 가요순위프로그램에서도 당당히 존재감을 과시했습니다. 당시에는 내놓고 경쟁방송국의 드라마ost는 가요순위프로그램에서 의도적으로 누락하거나 노래를 부른 가수를 출연에서 노골적으로 빼는 것이 암묵적으로 확립된 관행이었습니다. ‘질투 ost’가 얼마나 인기가 있었나를 방증합니다. 그리고 당시 동네 피아노교습소에서는 질투의 악보가 교재로 널리 쓰이기도 했습니다. 역시 인기의 방증입니다. 그 시절 하나, 둘 노래방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노래방의 인기곡으로 당연히 등극했습니다. 그리고 프로야구장에서도 질리도록 틀어줬으며, 길거리의 리어카 해적테이프로도 무진장 팔렸습니다. ‘대 낭만시대의 아련한 풍속도를 떠올리게 하는 것이 유승범의 질투 ost’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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