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만 미워해!
○지금은 고인이 된 코미디언 양종철이 히트시킨 유행어입니다. 뭔가 웃픈 상황을 빗대어 지어낸 유행어지만, 당시에는 나름 꽤나 먹혔습니다. 그런데 ‘왜 나만 미워해!’는 그가 세상을 뜬 이후의 현실에서도 학폭이나 직장 내 괴롭힘의 이슈가 겹치면서 뭔가 쎄한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튀면 뭔가 불이익을 받는다는 신화가 있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말이 인생처세술로 각광(!)을 받기까지 합니다. 좋든 나쁘든 튀는 사람을 미워하는 심리가 한국에서는 일상적입니다. 그래서 명칭은 중용으로 포장을 하지만, 현실에서는 정을 맞지 않는 모난 돌이 최고라는 인생처세술이 각광을 받을지도 모릅니다.
○법률의 세계에서는 그나마 ‘평등권’이라는 장치가 있어서 나름 ‘나만 미워하는 상황’은 방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법률은 예외라는 숙명이 있습니다. 산재보험에 있어서 대표적인 ‘왜 나만 미워해!’라는 예외적인 법현상이 있으니, 그것은 건설업에 있어서의 특수한 취급입니다. ‘고용보험 및 산업재해보상보험의 보험료징수 등에 관한 법률(보험료징수법)’ 제9조는 ‘도급사업의 일괄적용’이라는 제목으로 건설업에서만 특이하게 원수급업체만 사업주로 보는 규정을 두고 있습니다. 중간에 하수급업체를 전부 생략하고 원수급업체만 사업주로 보는 것입니다. 흔히 보는 생명보험이나 손해보험에서도 보험가입자별로 보험관계가 성립하는 것과도 대조적입니다. 원수급업체인 건설사는 당연히 ‘왜 나만 미워해!’라고 항의할 수도 있습니다.
○혹자는 이러한 법률 규정이 불합리하다거나 평등권에 위배된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이것은 합리적 이유가 있습니다. 건설회사의 다단계 하도급구조 때문에 이러한 변칙적인 규율이 생긴 것입니다. 일괄가입제도를 운용하는 현실에서는 애매한 상황이 많이 발생합니다. 하도급인지 아닌지 헷갈리는 경우가 부지기수이기 때문입니다. 명백한 경우에는 문제가 발생하지 아니합니다. 건설현장의 일용근로자들에게 근처 중국집의 자장면을 배달시킨다면 그 자장면값은 보통 경비로 계상합니다. 그런데 건설자재나 건설기계를 매수하는 경우에는 다툼이 발생합니다. 이 것을 매매로 볼 것인가, 아니면 하도급으로 볼 것인가가 바로 그것입니다.
○건설현장에서는 반드시 콘크리트가 필요합니다. 그 콘크리트를 공급하는 것이 레미콘트럭입니다. 실무에서는 건설업체가 레미콘회사에 레미콘트럭 대당 얼마씩 주문을 합니다. 말하자면, 레미콘트럭단위로 가격이 결정됩니다. 얼핏 레미콘트럭에 실린 콘크리트(정확히는 콘크리트 반죽)를 매매하는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건설현장에서 매수하는 콘크리트는 궁극적으로 콘크리트타설을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타설작업은 레미콘트럭의 기사가 하게 됩니다. 그 실질은 콘크리트타설이라는 건설공사입니다.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단순한 매매는 산재보험료가 발생하지 아니합니다. 편의점에서 과자를 산다고 하여 특별히 산재보험료는 발생하지 않는 것을 연상하면 됩니다. 그러나 하도급공사는 근로자의 노동력이 투입되고 보수가 발생합니다. 산재보험료가 짜잔하고 등장합니다.
○건설현장에서 쓰이는 레미콘트럭은 수백 대, 수천 대가 소요되는 경우가 상례입니다. 레미콘트럭 기사에 산재보험료를 부과하면 그 금액은 당연히 억억하는 숫자로 등장합니다. 그래서 건설협회는 뿔이 났습니다. 왜 레미콘트럭에 담긴 콘크리트만 트럭단위로 매수하는데 산재보험료를 때리냐, 하면서 성토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다음과 같이 <기사>에서도 등장했습니다. 건설업체에 대한 산재보험료의 부과는 고용노동부가 산재보험법의 개정으로(구 산재법 제125조, 2023. 7. 1.부터는 ‘노무제공자’라는 명칭으로 변경) 레미콘트럭 기사에 대한 산재보험 가입 및 보험료 납부 의무를 레미콘제조업체에서 건설업체로 변경한 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건설협회는 근로복지공단에 의해 레미콘트럭 기사에 대한 ‘산재보험료 추징을 당한다’고 주장합니다.
○근로복지공단의 주무 부서인 고용노동부는 ‘보도자료’까지 내고 항변을 했습니다. 오가는 돈이 수천억 원인데 가만히 있는 것도 이상합니다. 고용노동부 항변의 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1). 건설업은 수차의 도급 등에 의하여 사업이 이루어지는 특수성을 감안하여 하수급인 소속 근로자 및 노무제공자가 산재보험의 보호에서 제외될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막기 위해 임대·도급 등 계약형식과 무관하게 실제 노무제공이 이루어지는 건설현장의 원청을 산재보험법상의 사업주로 적용하고 있으며(위 보험료징수법 제9조), 2). 총공사의 완성을 위해 원청이 총괄 관리하는 건설현장의 경우 원청이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노력과 사고 발생 시에 대비한 산재보험의 책임을 부담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것입니다.
○고용노동부의 보도자료에 대하여 건설협회는 완강한 재반박을 했습니다. 발주자가 책정하는 공사금액에는 레미콘트럭 기사 몫의 산재보험료가 계상되지 않기 때문에 결국 건설업체 돈으로 이를 납부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는 점, 그리고 레미콘 구매금액은 노무비가 일체 포함되지 않은 재료비이므로 레미콘 구매금액에 대해서는 산재보험료도 계상받을 수 없고, 나라에서 건설업체의 돈을 마음대로 뜯어가는 점이라는 논리가 그 핵심입니다. 그런데 건설협회나 건설업체의 논리대로 온전히 레미콘을 구매만 하는 것은 아니기에, 법리적으로는 고용노동부의 주장에 설득력이 실립니다.
<기사> 대한건설협회는 3일 근로복지공단의 레미콘 믹서트럭 기사에 대한 산재보험료 추징은 부당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협회에 따르면 건설현장에선 근로복지공단의 레미콘믹서트럭 기사에 대한 산재보험료 추징사례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2019년 1월 레미콘 믹서트럭 기사에 대한 산재보험 가입 및 보험료 납부 의무를 제조업체에서 원청 건설업체로 변경했기 때문이다. http://www.conslove.co.kr/news/articleView.html?idxno=75913 <2022. 11. 4. 고용노동부 보도자료> 건설업은 수차의 도급 등에 의하여 사업이 이루어지는 특수성을 감안하여 하수급인 소속 근로자 및 노무제공자가 산재보험의 보호에서 제외될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막기 위해 임대.도급 등 계약형식과 무관하게 실제 노무제공이 이루어지는 건설현장의 원청을 산재보험법상의 사업주로 적용하고 있음 * 산재보험 적용 노무제공자(기존 특고)의 경우 레미콘 기사뿐만 아니라 덤프트럭 등 27개 건설기계조종사 모두 원수급인을 산재보험가입자로 적용 중 아울러, 총공사의 완성을 위해 원청이 총괄 관리하는 건설현장의 경우 원청이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노력과 사고 발생 시에 대비한 산재보험의 책임을 부담하는 것이 합리적임. 최근 콘크리트 타설작업 중 재해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점 등을 감안할 때, 레미콘 기사가 건설현장의 시공에 참여하지 않는다거나 사고위험이 없다고 할 수 없음. 고용노동부는 지속적으로 산재보상 제도의 적용범위를 확대하여 사각지대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고 취약부분 근로자와 노무제공자가 적절히 보호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가겠음. https://www.moel.go.kr/news/enews/explain/enewsView.do?news_seq=14177 <고용보험 및 산업재해보상보험의 보험료징수 등에 관한 법률> 제9조(도급사업의 일괄적용) ① 건설업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업이 여러 차례의 도급에 의하여 시행되는 경우에는 그 원수급인을 이 법을 적용받는 사업주로 본다. 다만,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공단의 승인을 받은 경우에는 하수급인을 이 법을 적용받는 사업주로 본다. ② 제1항에 따른 사업이 국내에 영업소를 두지 아니하는 외국의 사업주로부터 하도급을 받아 시행되는 경우에는 국내에 영업소를 둔 최초 하수급인을 이 법을 적용받는 사업주로 본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125조(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 대한 특례) ① 계약의 형식과 관계없이 근로자와 유사하게 노무를 제공함에도 「근로기준법」 등이 적용되지 아니하여 업무상의 재해로부터 보호할 필요가 있는 사람으로서 다음 각 호의 모두에 해당하는 사람 중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이하 이 조에서 “특수형태근로종사자”라 한다)의 노무(勞務)를 제공받는 사업은 제6조에도 불구하고 이 법의 적용을 받는 사업으로 본다. 1. 주로 하나의 사업에 그 운영에 필요한 노무를 상시적으로 제공하고 보수를 받아 생활할 것 2. 노무를 제공할 때 타인을 사용하지 아니할 것 제91조의15(노무제공자 등의 정의) 이 장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뜻은 다음과 같다. 1. “노무제공자”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사업을 위하여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방법에 따라 자신이 직접 노무를 제공하고 그 대가를 지급받는 사람으로서 업무상 재해로부터의 보호 필요성, 노무제공 형태 등을 고려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을 말한다. 가. 노무제공자가 사업주로부터 직접 노무제공을 요청받은 경우 나. 노무제공자가 사업주로부터 일하는 사람의 노무제공을 중개ㆍ알선하기 위한 전자적 정보처리시스템(이하 “온라인 플랫폼”이라 한다)을 통해 노무제공을 요청받는 경우 <2023. 7. 1.부터 시행> |
'4대보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시민 작가의 인구감소 의견에 대하여> (0) | 2023.08.01 |
---|---|
<N잡러와 고용보험, 그리고 건강보험> (1) | 2023.04.11 |
<사회보험의 상호주의> (0) | 2023.01.31 |
<도급사업 일괄적용의 대상이 되는 건설업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 (1) | 2023.01.23 |
<사회보험료의 통합고지와 다툼> (1) | 2023.0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