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사태에 대한 각국의 대응은 대동소이했습니다. 돈을 풀어서 경기침체를 막고 자영업자의 몰락을 방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정책이 그렇듯이 경제정책도 하나를 얻으면 다른 하나를 잃기 마련입니다. 자산의 버블과 물가폭등이라는 아픔을 남겼습니다. 물가상승을 제어하려는 미국 FRB의 급격한 기준금리인상은 이역만리 한국 부동산의 폭락까지 일으키는 나비효과를 보였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사실은 누구나 인지하고 있는 사실입니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현대국가는 국민생활에 직접적으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국가적 위난상황을 극복한다는 점입니다. 과학기술의 급격한 발달은 역설적으로 국가개입의 필요성을 증진시켰습니다. 가령, 카카오톡 메시지는 민간소통수단임에도 카카오톡 메시지의 먹통사태에 대하여 국민은 국가의 개입을 당연히 요구합니다. 언론도 이에 동조합니다. 마스크라는 민간재화의 수급불균형에 대하여 대통령을 비난하고 정부를 성토하는 것을 당연히 여깁니다. 이렇게 현대국가의 적극적인 활동을 학술용어로 ‘급부국가’ 또는 ‘비대해진 행정부’라고 합니다. 물론 이런 현상도 만국공통입니다.
○국가의 작용은, 특히 행정작용은 법률에 근거가 있어야 합니다. 특히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거나 박탈하는 영역인 침익행정의 영역에서는 반드시 근거가 있어야 한다는 고전적인 원리를 법치행정의 원리라 합니다.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거나 박탈한다는 것은 쉽게 말하면 국민의 권리를 ‘빼앗는’ 경우이며, 이 경우에는 법률에 근거를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전술한 현대 급부국가란 국민이 국가에게 ‘퍼주는’ 상황입니다. 당연히 법치행정의 원리가 수정되어야 합니다. 급부행위가 발생하는 행정의 영역을 수익행정의 영역이라 합니다.
○국민의 권리를 ‘빼앗는’ 침익행정의 영역에서는 법률이 엄격해야 합니다. 구체성을 띠어야 하고 헌법이 규정하는 비례의 원칙에 부합해야 합니다. 그러나 ‘퍼주는’ 수익행정의 영역에서는 추상적인 근거만 있으면 족합니다. 코로나19라는 사상초유의 사태를 맞아 실정법이 없다고 국가가 수수방관한다면 그 어떤 국민도 납득하지 못합니다. 대법원(대법원 2023. 8. 18. 선고 2021두41495 판결)도 ‘보조금 교부는 수익적 행정행위로서 교부대상의 선정과 취소, 그 기준과 범위 등에 관하여 교부기관에 상당히 폭넓은 재량이 부여되어 있다.’라고 판시하여 수익적 행정처분에 대하여는 침익행정의 영역을 규율하는 경우와는 다른 법리를 전개합니다.
○위 대법원 판례는 침익행정의 영역과 달리 국민에게 ‘퍼주는’ 수익행정의 영역에서는 법치행정의 원리가 달리 적용된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이 판례 속의 사안은 고용보험법 제26조, 고용보험법 시행령 제38조 제5항에 근거를 둔 고용노동부 예규인 ‘구 직장어린이집 등 설치․운영 규정’ 등에 따라 시설설치비 지원금(시설건립비와 교재교구비)의 지급결정과 그 결정의 취소에 대한 것입니다. 그 지원금 등의 지급 담당기관인 근로복지공단은 원고 회사가 ‘지원받아 설치한 시설을 매매·양도·대여·담보제공할 수 없으며 이는 지원결정 취소 사유가 된다.’는 근거 규정에 따라 시설설치비 지원결정을 취소하고 이 사건 지원금을 반환하라는 내용의 이 사건 처분을 하였고, 원고 회사는 불복하여 소송을 제기한 것입니다.
○원심과 대법원의 결론은 달랐습니다. 원심은 고전적인 법치행정의 원리에 따라 국가 등이 국민의 권리를 빼앗는 경우에는 근거 법령이 있어야 하는데(법률유보), 근로복지공단은 ‘퍼주는’, 즉 시설설치비 지원결정과 지원금의 지급규정만이 있으며, ‘빼앗는’ 규정, 즉 취소의 결정이 없기에 위법하다고 판시하였습니다. 그런데 대법원은 ‘퍼주는’ 규정은 동시에 ‘빼앗는’ 규정이라는 논거로 원심을 파기‧환송하였습니다. 원심의 논거를 따르면, 국가 등은 ‘퍼주는’ 규정, 즉 설치근거 규정에 부합하지 않는 위법한 경우에도 그대로 ‘퍼줘야’하는 불합리가 발생합니다. 국가 등은 당초 법령의 취지에 부합한 경우에만 비로소 ‘퍼주는’ 활동을 할 수 있으며, 만약 수급자가 ‘퍼주는’ 규정에 사후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당연히 ‘퍼주는’ 활동을 중지하여야 합니다. 실은 근거규정에 부합하지 않는 경우에도 그대로 퍼주는 국가 등의 활동은 소박한 국민정서법에도 반합니다. 대법원의 결론이 타당합니다.
<고용보험법> 제26조(고용촉진 시설에 대한 지원) 고용노동부장관은 피보험자등의 고용안정ㆍ고용촉진 및 사업주의 인력 확보를 지원하기 위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상담 시설, 어린이집, 그 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고용촉진 시설을 설치ㆍ운영하는 자에게 필요한 지원을 할 수 있다. <고용보험법 시행령> 제38조(고용촉진 시설의 지원) 중략 ④ 고용노동부장관은 법 제26조에 따라 사업주가 단독이나 공동으로 설치ㆍ운영하는 어린이집의 운영비용 중 일부를 고용노동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지원할 수 있다. 이 경우 우선지원대상기업의 사업주와 우선지원대상기업의 수가 100분의 50 이상인 사업주단체로서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기준을 충족하는 사업주단체에 대해서는 지원의 수준을 높게 정할 수 있다. 중략 ⑤ 고용노동부장관은 법 제26조에 따라 어린이집을 단독이나 공동으로 설치하려는 사업주나 사업주단체에 대하여 고용노동부장관이 정하는 바에 따라 그 설치비용을 융자하거나 일부 지원할 수 있다. 이 경우 다음 각 호의 사업주나 사업주단체에 대하여는 융자나 지원의 수준을 높게 정할 수 있다. 1. 우선지원대상기업의 사업주 2. 제4항 후단에 따른 사업주단체 3. 장애아동 또는 영아를 위한 어린이집을 설치하려는 사업주나 사업주단체 <대법원 판례> 1. 이 사건 처분과 관련된 법령 규정 가. 고용보험법에 의하면, 고용노동부장관은 국고 등으로 마련된 고용보험기금으로 피보험자등에 대한 실업의 예방, 취업의 촉진, 고용기회의 확대, 직업능력개발ㆍ향상의 기회 제공 및 지원, 그 밖에 고용안정과 사업주에 대한 인력 확보를 지원하기 위하여 고용안정ㆍ직업능력개발 사업을 실시하고, 위와 같은 피보험자등의 고용안정ㆍ고용촉진 및 사업주의 인력 확보를 지원하기 위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어린이집을 설치ㆍ운영하는 자에게 필요한 지원을 할 수 있다(제19조, 제26조, 제78조, 제79조 제1항, 제80조 제1항 제1호). 나. 그 위임에 따른 고용보험법 시행령 제38조 제5항에 의하면, 고용노동부장관은 고용보험법 제26조에 따라 어린이집을 단독이나 공동으로 설치하려는 사업주나 사업주단체에 대하여 고용노동부장관이 정하는 바에 따라 그 설치비용을 융자하거나 일부 지원할 수 있다. 한편 고용보험법 제115조, 고용보험법 시행령 제145조 제2항에 의하면, 고용노동부장관은 피고에게 직장어린이집 설치비용의 지원 및 그 지원금의 관리․운용에 관한 권한을 위탁하여 그 업무를 수행하도록 하고 있다. 다. 위 법령의 위임에 따라 고용노동부장관이 마련한 구 「직장어린이집 등 설치․운영 규정」(2020. 7. 8. 고용노동부 예규 제173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아래에서는 ‘이 사건 규정’이라고 한다)은 국가가 직장어린이집 설치비용을 지원하고 관리하는 데 필요한 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특히 이 사건 규정 제36조 제1항 제3호 및 [별표 3]에 의하면, 직장어린이집 설치비 지원금을 지급받은 자가 이 사건 규정 제35조에 따른 채권관리 기간 동안 지원받은 시설 또는 비품을 매매ㆍ양도ㆍ대여ㆍ폐원 및 담보로 제공한 경우에는 피고는 지원결정의 전부 또는 일부를 취소하여야 하고, 이에 따라 지원금을 지급받은 자는 지원금을 반환하여야 한다. 2. 특정 사안과 관련하여 법령에서 위임을 한 경우 위임의 한계를 준수하고 있는지 여부를 판단할 때는 당해 법령 규정의 입법 목적과 규정 내용, 규정의 체계, 다른 규정과의 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야 하고, 수권 규정에서 사용하고 있는 용어의 의미를 넘어 그 범위를 확장하거나 축소하여 위임 내용을 구체화하는 단계를 벗어나 새로운 입법을 하였는지 여부 등도 아울러 고려하여야 한다(대법원 2018. 8. 30. 선고 2017두56193 판결 등 참조). 3. 보조금 교부는 수익적 행정행위로서 교부대상의 선정과 취소, 그 기준과 범위 등에 관하여 교부기관에 상당히 폭넓은 재량이 부여되어 있다. 또한 보조금 지출을 건전하고 효율적으로 운용하기 위해서는, 보조금 교부기관이 보조금 지급목적에 맞게 보조사업이 진행되는지 또는 보조사업의 성공가능성이 있는지에 관하여 사후적으로 감독하여 경우에 따라 교부결정을 취소하고 보조금을 반환받을 필요도 있다. 그리고 법령의 위임에 따라 교부기관이 보조금의 교부 및 사후 감독 등에 관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이상, 그 교부결정을 취소하고 보조금을 반환받는 업무도 교부기관의 업무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대법원 2018. 8. 30. 선고 2017두56193 판결 등 참조). (대법원 2023. 8. 18. 선고 2021두41495 판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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