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 사이에서 저승사자로 불리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의사들은 대부분 ‘심평원’이라 부릅니다(다음 대법원 판례에서는 ‘심사평가원’이라 약칭을 하지만, 실제 심사평가원이라고는 잘 부르지 않습니다). 의사들치고 심평원에 대하여 좋게 말하는 의사들은 거의 없습니다. 비난이 대부분이며, 쌍욕을 박고 시작하는 의사들이 수두룩합니다. 그 이유는 결국 돈 문제입니다. 의사들이 청구한 건강보험급여 중 요양급여비용을 심평원이 깍거나 아예 지급을 거부하는 경우가 종종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요양급여비용청구를 기초로 심층조사를 하여 부정청구를 했다고 하여 거액의 과징금, 업무정지, 나아가 국세청통보 등의 무시무시한 권한을 의사에게(정확히는 의료기관에게) 행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의사들 사이에서 저승사자로 불리는 이유입니다. 흔히 말하는 사무장병원이나 탈세병원 등의 적발도 심평원의 심사평가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무척이나 많습니다. 이렇게 심평원은 일반인은 죽을 때까지 존재 자체를 모를 수 있지만, 의사들 사이에서 존재감을 넘어 공포감을 안길 수 있습니다.
○심평원의 법률적 근거는 국민건강보험법 제63조에 있습니다. 여기에서 정한 심평원의 역할 중 제일 먼저 등장한 것이 1). 요양급여비용의 심사, 2). 요양급여비용의 적정성 평가입니다. 요양급여비용이란 국민이 병원 등 요양기관에서 요양을 받을 때, 건강보험공단이 보험처리, 즉 급여항목으로 포함한 경우에 요양기관이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받는 돈입니다. 국민이 아프다고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는 경우에 모든 치료가 건강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동차사고를 당할 경우에 보험처리가 되는 가능항목과 불가항목이 있음을 연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심평원은 법문에는 명시를 하지 않았지만, 당연히 건강보험의 급여항목이 가능한가, 즉 보험처리가 되는가 여부를 심사할 수 있습니다. 그럼 여기에서 의문이 생깁니다. 누가 무슨 근거로 급여항목에 포함할 것인가, 그리고 포함한다고 하더라도 그 비용, 즉 건보수가가 얼마인가를 정하는가라는 문제가 바로 그것입니다. 심평원을 지휘·감독하는 보건복지부 장관이 바로 그 해결사입니다. 의사들에게 저승사자인 심평원도 보건복지부 장관 앞에서는 꺠갱하는 처지입니다. 보건복지부 장관은 정말 엄청 쎈 사람입니다.
○그러나 병원운영의 결정적 권한을 쥔 보건복지부 장관이 주먹구구로 요양급여비용을 정할 수는 없습니다. 급여항목의 포함여부, 나아가 그 비용여부를 정하여 수십조의 건보재정을 결정하는 기준을 주먹구구로 할 수는 없습니다. 객관적인 기준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보건복지부 장관이 고시의 형태, 즉 보건복지부령 형식으로 정한 ‘요양급여비용 심사·지급업무 처리기준’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기초 심평원장이 구체적으로 정한 기준이 진료심사평가위원회라는 기구를 통한 심의를 거쳐 정한 것이 ‘요양급여비용의 심사기준’입니다.
○‘요양급여비용 심사·지급업무 처리기준’보다 구체화한 기준이라 하더라도 의사 및 의료기관의 개별적인 진료행위가 급여항목에 해당하는가 여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개개의 의사의 진료행위 등은 의료법칙에 따라 어느 정도 정형적인 행위이지만, 천태만상인 의사의 진료행위를 일률적으로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환자의 상태에 따라 진료도 개별적으로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각각의 정석은 같아도 전체 바둑은 다른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대법원은 후술하는 사례에서 ‘요양급여비용의 심사기준’이란 ‘법령에서 정한 요양급여의 인정 기준을 구체적 진료행위에 적용하기 위하여 마련한 내부적 업무처리 기준으로서 행정규칙에 불과하다’면서 다음과 같은 판례이론을 제시하였습니다. 위 대법원 판례이론 자체는 법규성을 부정하는 행정규칙이라는 테마로 중요한 판례이론인데, 여기서는 생략합니다.
○심평원이 등장하는 이 사례는 심평원이 원고인 의료기관의 요양급여비용을 삭감하면서 시작했습니다. 원고는 ‘왜 요양급여비용을 깍느냐! 나는 너희들이 정한 ’요양급여비용의 심사기준’에 따랐을 뿐이다.‘라는 논거를 대법원에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본래 요양급여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의무기록, MRI촬영기록 등 각종 의료행위를 통한 증거로 심평원에 급여항목이라는 것을 모든 의료기관이 증명해야 하는 것인데, 정형화된 일부 요양급여행위만 증명책임을 면제해주는 것이고 나머지는 의료기관이 증명해야 하며, 심평원이 삭감한 것의 부당성은 너희 의료기관이 증명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일반적인 상품의 판매는 파는 사람과 가격의 결정권자가 동일합니다. 그래서 파는 사람의 마음대로, 즉 엿장수 마음대로 가격을 깍아서 팔면 됩니다. 그러나 건강보험의 요양급여는 가격결정권자는 보건복지부 장관이며 심평원은 그 가격에 해당하는 상품, 즉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요양급여인지를 확인하는 기구이고, 의료기관은 요양급여에 해당하는 상품을 소비자에게 판매한 후 그것이 정당한 상품인지 여부에 해당하는지 증명까지 해야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논거입니다. 대법원의 결론은 모든 병원에 대한 건강보험의 강제지정제를 취하는 한 필연적인 결론입니다.
<국민건강보험법>
제63조(업무 등)① 심사평가원은 다음 각 호의 업무를 관장한다.
1. 요양급여비용의 심사
2. 요양급여의 적정성 평가
3. 심사기준 및 평가기준의 개발
4. 제1호부터 제3호까지의 규정에 따른 업무와 관련된 조사연구 및 국제협력
5. 다른 법률에 따라 지급되는 급여비용의 심사 또는 의료의 적정성 평가에 관하여 위탁받은 업무
6. 건강보험과 관련하여 보건복지부장관이 필요하다고 인정한 업무
7. 그 밖에 보험급여 비용의 심사와 보험급여의 적정성 평가와 관련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업무
② 제1항제2호 및 제7호에 따른 요양급여 등의 적정성 평가의 기준ㆍ절차ㆍ방법 등에 필요한 사항은 보건복지부장관이 정하여 고시한다.
<대법원 판례>
[1] 요양급여비용을 지급받을 수 있는 적정한 요양급여는 법령에서 규정한 인정 기준에 맞는 경우에 한정되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사평가원’)이 요양기관의 청구비용 중 법령상 기준에 어긋나는 부분이 있다고 하여 일부에 대해서만 적정한 요양급여비용으로 인정하는 처분을 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는 요양기관이 이미 가지고 있는 급여비용청구권을 제한하거나 삭감하는 처분이 아니라 적정한 요양급여비용의 범위를 확인하는 의미를 가지는 것일 뿐이다. 따라서 요양기관이 국민건강보험공단(보험자)에 대하여 요양급여비용을 청구하기 위하여 심사평가원에 심사청구를 하는 경우 그 요양급여가 법령과 고시 등 법규에서 규정한 요양급여의 기준에 합치한다는 점은 이를 청구하는 요양기관이 증명할 책임을 진다.
[2]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사평가원’)의 원장이 보건복지부장관의 고시(‘요양급여비용 심사·지급업무 처리기준’)에 따라 진료심사평가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정한 요양급여비용의 심사기준 또는 심사지침은 심사평가원이 법령에서 정한 요양급여의 인정 기준을 구체적 진료행위에 적용하기 위하여 마련한 내부적 업무처리 기준으로서 행정규칙에 불과하므로, 그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하여 반드시 법령상 인정되는 적정한 요양급여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할 것은 아니다. 다만 그 기준이 국민건강보험법령의 목적이나 취지에 비추어 객관적으로 합리성이 없다고 볼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이를 재판절차에서 요양급여의 적정성 여부를 판단하는 세부기준으로 참작한다고 하여 하등 문제 될 것은 없다.
(대법원 2012. 11. 29. 선고 2008두21669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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