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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와 산업안전/산업재해보상

<‘업무’와 ‘근로’, 그리고 산업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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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만화의 걸작 머털도사의 주인공 머털은 머리카락을 세우는 동작이 도술의 알파이자 오메가입니다. 스승인 누덕도사로부터 배운 이 도술로 머털의 괴력은 완성됩니다. 그런데 머털의 이 도술은 아무래도 손오공이 원조가 아닌가 합니다. 석가모니의 10대 제자로 명성이 높은 수보리조사로부터 머리카락을 뽑아서 분신술을 배웠다는 포맷과 유사하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여의봉, 근두운과 더불어 손오공을 상징하는 머리카락 뽑기 분신술은 소설 서유기를 읽는 흥미요소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양 작품 모두에서 가장 기초가 되는 동작, 즉 머리를 곧추세우는 것(머털도사), 머리카락을 뽑는 것(서유기) 모두 중요한 가르침을 품고 있습니다. 그것은 가장 기초가 되는 동작이 실은 그 전부라는 것입니다. 과거 삼성은 그룹 이미지 광고에서 기초를 중시하는 삼성이라는 카피로 히트를 넘어 국민의 심금을 울린 적이 있습니다. 기초가 중요한 것은 인간사에 공통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기초가 튼튼해야 건물이 튼튼하고 기초가 튼튼해야 학업성적이 우수하고, 신뢰의 기초가 튼튼해야 기업의 근간이 튼튼합니다.

 

법률의 영역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초개념을 충실히 이해하면 이해도 빠르고 궁극적으로 훌륭한 법률구성도 가능합니다. 노동법의 영역에서는 단연 근로, 근로자, 임금 등 기초개념이 법률 전반에 걸쳐서 중요하게 작동합니다. 따라서 그 어떤 법률의 영역보다 기초가 중요합니다. 다음에서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법)의 기초개념인 업무와 근로기준법의 기초개념인 근로가 현실에서 적용되는 양상을 그리고 있습니다. 내용을 따라가다 보면, 기초의 중요성을 실천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산재법은 업무상 재해라는 개념을 사용합니다(산재법 제37). 근로기준법도 업무상 부상 또는 질병(근로기준법 제78)’라는 개념을 사용합니다. 근로기준법 전반에 걸쳐서 근로라는 개념을 쓰다가 재해보상의 대목에서 업무라는 표현을 쓴 것은 당연히 이유가 있습니다. 산재법 제37조 제1항 제3호는 출퇴근재해를 규정합니다. 대법원은 주44시간 시대는 물론 그 이전부터 현재까지 일관되게 근로시간이란 실근로시간을 의미한다고 판시(대법원 1991. 9. 10. 선고 915433 판결)했습니다. 출퇴근은 근로와 밀접한 행위이지만, 대법원 판례대로 한다면 당연히 근로는 아닙니다.

 

산재법과 근로기준법이 근로 외에 업무라는 개념을 도입한 것은 다 이유가 있습니다. 근로, 즉 실근로 중에 발생한 업무상 재해만을 산업재해로 본다면, 근로자의 보호에 미흡하기 때문입니다. 가령, 사용자가 주관하는 회식이나 야유회와 같이 사용자의 지배범위 내에 있는 경우에도 업무상 재해가 아니라고 판단한다면,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도입한 산재보상의 기능이 대폭 축소됩니다. 그리고 업무상 재해는 퇴직 후에라도(가령, 진폐) 발생할 수 있는데, 이렇게 근로라는 개념만을 전제로 한다면, 역시 미흡합니다.

 

그러나 산재보상의 실무에서는 업무 = 근로라고 보는 경향이 강합니다. 실은 산재보상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심혈관계 질환 중 과로의 영역은 대부분 그렇게 봅니다(대법원 1991. 9. 10. 선고 915433 판결 등). 과로라는 개념은 보통 근로를 전제로 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대리운전기사나 퀵서비스, 쿠팡배달원과 같이 항시 휴대폰을 주목해야 하는 근로자의 경우에는 휴식시간이 사실상 대기시간인 경우가 상례입니다. 늘 긴장을 해야 하는 직업적 특수성이 있습니다. 또한 당직의사와 같이 당직실에서 휴게를 취하더라도 언제든지 응급환자를 맞아야 하는 상황을 단순하게 휴식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실제로 모 아파트 경비원의 휴게시간을 대법원이 근로시간으로 본 사례도 있습니다.

 

대법원은 근로시간만을 업무로 보는 불합리를 배격하기 위하여 생체리듬이라는 개념을 통하여 과로가 아닌 경우에도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는 이례적 판결(대법원 1998. 12. 8. 선고 9813287 판결)도 있지만, 과로에 대한 주류적인 판례는 근로 = 업무로 봅니다. 물론 근로복지공단이나 인사혁신처도 그렇게 봅니다. 근로자의 재해보상을 위하여 도입된 산재보상제도가 업무를 곧 근로라 보는 불합리한 관행 때문에 그 빛이 쇠락하는 흠이 있습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37(업무상의 재해의 인정 기준) 근로자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유로 부상ㆍ질병 또는 장해가 발생하거나 사망하면 업무상의 재해로 본다. 다만, 업무와 재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相當因果關係)가 없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1. 업무상 사고
. 근로자가 근로계약에 따른 업무나 그에 따르는 행위를 하던 중 발생한 사고
. 사업주가 제공한 시설물 등을 이용하던 중 그 시설물 등의 결함이나 관리소홀로 발생한 사고
. 삭제 <2017. 10. 24.>
. 사업주가 주관하거나 사업주의 지시에 따라 참여한 행사나 행사준비 중에 발생한 사고
. 휴게시간 중 사업주의 지배관리하에 있다고 볼 수 있는 행위로 발생한 사고
. 그 밖에 업무와 관련하여 발생한 사고
2. 업무상 질병
. 업무수행 과정에서 물리적 인자(因子), 화학물질, 분진, 병원체, 신체에 부담을 주는 업무 등 근로자의 건강에 장해를 일으킬 수 있는 요인을 취급하거나 그에 노출되어 발생한 질병
. 업무상 부상이 원인이 되어 발생한 질병
. 근로기준법76조의2에 따른 직장 내 괴롭힘, 고객의 폭언 등으로 인한 업무상 정신적 스트레스가 원인이 되어 발생한 질병
. 그 밖에 업무와 관련하여 발생한 질병
3. 출퇴근 재해
. 사업주가 제공한 교통수단이나 그에 준하는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등 사업주의 지배관리하에서 출퇴근하는 중 발생한 사고
. 그 밖에 통상적인 경로와 방법으로 출퇴근하는 중 발생한 사고


<근로기준법>
78(요양보상) 근로자가 업무상 부상 또는 질병에 걸리면 사용자는 그 비용으로 필요한 요양을 행하거나 필요한 요양비를 부담하여야 한다.
1항에 따른 업무상 질병과 요양의 범위 및 요양보상의 시기는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대법원 판례1>
근로기준법 제42조 제1항에서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하고 1일에 8시간, 1주일에 44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그 부칙 제3조 제1항에서 제42조 제1항의 규정에 의한 주당 근로시간 44시간은 300인 미만의 사업 또는 사업장 중 노동부장관이 지정하는 업종에 대하여는 1991.9.30.까지, 그 이외의 사업 또는 사업장에 대하여는 1990.9.30.까지 46시간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바, 여기서 말하는 근로시간이란 근로자가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 근로계약상의 근로를 제공하는 시간, 즉 실근로시간을 말한다고 할 것이다.
(대법원 1992. 10. 9. 선고 9114406 판결)


<대법원 판례2>
망인이 사망 당시 현실적으로 작업에 종사중이 아니었고 또 망인이 담당한 업무가 비교적 힘든 일이 아닐 뿐 아니라 사망할 무렵의 작업시간도 보통평균인에게는 과중한 업무가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망인이 하기휴가를 갔다온 후 8일간을 매일 3시간씩 연장근무를 한데다가 그 후 2주일간은 매일 8시간씩 주간근무를 하고 그 후부터 사망시까지 1주일간은 매일 8시간씩 야간근무를 함으로써 이와 같이 주야간이 뒤바뀌는 근무형태로 축적된 피로가 망인의 건강과 신체조건으로 보아 과로원인이 될 수 있다면, 망인에게 근무 외에 과로원인이 될 만한 다른 사유가 인정되지 않는 한 망인의 사인인 급성심장사는 위와 같은 근무 형태로부터 온 과로에 기인한 것이라고 볼 여지가 있다.
(대법원 1991. 9. 10. 선고 915433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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