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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고독한 미식가’부터 유튜버 ‘윤숙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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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live to eat, not eat to live.

 

고교시절에 배운 영어 교과서에 있던 to 부정사의 용법에 실린 예문이었습니다. 물론 이 예문은 당시 성문영어 시리즈 등 유명영어 문법서에도 실려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표현에 무척이나 거부감이 있었습니다. 하다못해 윷놀이에도 도, , , , 모라는 5가지의 경우의 수가 존재하는데, 왜 모든 사람은 단지 살기 위해서 먹는 것이 인생의 정답이고, 먹기 위해 사는 사람은 식충이라는 비난을 받아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식도락이니 미식가니 하는 말은 고사하고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속담을 어떻게 해석할지 아리송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일도양단식의 판단은 의문이 있습니다. 좋다, 싫다라는 감정의 영역에 있어서도, 정도의 차이라는 것이 있기에, 세분화된 감정의 영역을 구축합니다. 가령, 이효리를 좋아해도 헤비팬과 라이트팬이 있으며, 무관심한 사람도 있고, 싫어하는 사람 중에서 그 정도를 달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심지어 이효리 자체를 모르는 사람도 존재합니다. 이상하게도 먹는 것을 언급하면 뭔가 뒤떨어진 사람 취급하는 그 시절의 풍토는 유감을 넘어 짜증이 났습니다. 다행히도 요즘 유튜브에는 먹방이 하나의 장르(?)로서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이제 먹방도 하나의 취향 내지 개성으로 인정받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실은 웰빙의 개념에 먹는 것을 빼기 어렵습니다.

 

제 고교시절의 제2외국어가 독일어였는데, 대학시절에도 독일어에 매진을 했습니다. 슈피겔은 물론 브레히트의 원어를 줄줄 읽을 정도로 공부를 열심히 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독일어는 지적 호기심 충족 외에는 실리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늘그막에 배운 일본어, 중국어가 오히려 현실적으로 도움이 됐습니다. 한자에 나름 자신이 있었기에, 이들 언어를 이해하는 것은 쉬웠습니다. 일본어를 유튜브로 배우다가 발견한 것이 고독한 미식가입니다. 유튜브 알고리즘이 안내한 먹방이었습니다. 주인공 고로(五郎)상 역의 마츠시게 유타카가 성우출신으로 일본어가 정확하고 발음도 느린 편이라 일본어 공부에 목이 마른 저로서는 딱인 드라마였습니다.

 

하라가 헷타(った)로 시작하는 고로상의 맛집탐험은 무척이나 단순한 플롯이지만, 맛집을 찾아 홀로 맛있는 음식을 먹는 행복감이라는 이색적인 플롯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습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타인과 있는 불편함을 강하게 느끼면서 고독한 미식가가 추구하는 혼자서 식사하는 소박한 행복감에 깊은 공감을 느끼곤 했습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만남이란 대부분 돈과 직·간접적인 비즈니스와 연결되어 있기에 만남 자체가 피곤하고 부담이 있습니다. 그래서 여유롭게 홀로 식사를 하는 것이 일상에서 주는 소박한 즐거움이라는 극중 고로상의 독백이 남의 일같지 않게 느껴지기에 고독한 미식가를 마르고 닳도록 봤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OkLGpET35Fo

 

고로상을 우마이(うまい, , 맛있다) 아저씨라 부르는 유튜버 박가네의 일본인 처 츄미코의 설명이 인상적인 고독한 미식가의 해설도 꼼꼼히 봤습니다. ‘고독한 미식가의 열렬한 팬이기에, 설명도 꽤나 진지해서 반복해서 봤습니다. 맛집보다는 혼자만의 고독한 공간을 찾아 자기만의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 행복이라는, 뭔가 이색적이기는 하지만, 고로상이 바로 제 자신이라는 이상한 동질감을 저절로 느끼면서 몰입하여 봤습니다. 혼자는 고독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가스라이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걱정거리란 남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것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을 혼자 있는 경우에 깨닫게 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uGKzvflKpEg&t=599s

 

나홀로 먹방이라는 유튜브의 알고리즘은 윤숙희라는 분의 먹방으로 안내했습니다. 윤숙희는 나이를 약간(!) 먹은 싱글인데, 고로상이 오직 식사류로 일관하는 것과는 달리 소주와 막걸리를 즐기는 분이었습니다. 호화로운 메뉴가 아닌 평범한 메뉴를 안주삼아 맛나게 먹는 윤숙희는 고로상과는 다른 분위기로 묘한 동질감을 주었습니다. 직장생활의 애환도 없고, 정치적 의사표현도 없이 오로지 씩씩하게 먹는 것만으로도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하였습니다. 씩씩하게 먹는 여성 먹방 유튜버와 달리 1970 ~ 80년대의 여배우들은 먹는 것 자체가 대단한 흠인 양 깨작거리는 것이 드라마 공식(?)이었습니다. 당시에도 시청자들이 엄청나게 항의를 하였습니다. 먹는 것이 죄도 아닌데, 왜 그렇게 깨작거리는가, 하면서 항의전화를 방송국에 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7C1e6XRBN8g

 

먹방은 생존의 필수라는 사실을 넘어 먹는 것이 즐거움이라는 암묵적 전제로 성립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고교시절에 제가 품었던 의문에 대한 해답이기도 합니다. 먹는 것은 여러 가지 인생의 의미를 담고 있으며, 즐거움도 그중의 하나입니다. 단지 살기 위하여 먹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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