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격언에 ‘특별법은 일반법에 우선한다.’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원칙과 예외라는 법률의 원칙이 단행법률 또는 법조항 사이에서도 반영된 결과입니다. 현재 대부분의 시민들이 근로기준법 등 노동법률의 존재를 인지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노동법이 민법 등 사법(私法)의 특별법이라는 점은 인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근로기준법은 민법의 특별법입니다. 다음의 법조문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민법 제655조는 고용계약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근로기준법상의 근로계약의 원칙입니다. ‘고용계약’과 ‘근로계약’이 백두산과 한라산처럼 다른 것이 아닙니다. 표현을 달리한 것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고용계약이나 근로계약이나 모두 사법상 대원칙인 계약자유의 원칙을 전제로 합니다. 계약자유의 원칙이 생소한 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점심에 비빔밥을 먹을 것인가, 아니면 볶음밥을 먹을 것인가 등 일상에서 자유롭게 인생을 설계하는 것이 계약자유의 원칙입니다. 영화제작자가 정우성 아니면 이병헌을 캐스팅할 것을 결정하는 것이 계약자유의 원칙입니다. 아니면 오디션을 통해서 뉴 페이스를 찾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근로기준법은 원칙과 예외의 순서를 달리하여 규정하였습니다. 제4조가 계약자유의 원칙이고, 제3조는 예외에 해당하는 근로기준법상의 근로기준이 강행됨을 규정하였습니다. 왜 그럴까, 하는 의문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계약자유의 원칙을 이유로 노동착취가 행해진 역사적 배경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많은 시민들이 근로기준법 등 노동법의 원칙이 당사자의 의사에 우선하여 적용된다고 오인하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퇴직금중간정산과 DC형 퇴직연금의 중도인출입니다.
○퇴직금중간정산과 예전 대법원 판례(대법원 1992. 9. 14. 선고 92다17754 판결)에서 사용한 ‘중간퇴직’입니다. 위 판례를 읽어보면 양자는 완벽하게 일치합니다. 당사자가 자유롭게 퇴직을 합의하고, 퇴직금을 정산한 후에 신규입사를 약정하는 것도 계약자유의 원칙이 발현한 것입니다. 실은 이러한 것을 막는 노동법상의 제도도 없습니다. 퇴직연금제도의 퇴직연금보험료의 납부도 경제적 측면에서 보면 퇴직금의 선지급분할약정과 동일합니다. 그런데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퇴직급여법)상의 퇴직금의 중간정산과 DC형 퇴직연금의 중도인출이 무효라는 주장을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는 대법원이 ‘중간퇴직’의 이름으로 허용한 중간정산의 취지를 정면으로 부정할 뿐만 아니라 계약자유의 원칙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주장입니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사법상 무효 또는 취소의 체계를 무너뜨리는 주장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사법체계는 경제적 동기만으로 무효 또는 취소로 하지는 않습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비빕밥을 사 먹으라고 용돈을 줬는데, 군만두를 사 먹을 수는 있습니다. 이는 증여계약의 경제적 동기에 반하는 매매행위이지만, 취소할 수 있는 행위는 아닙니다. 경제적 동기를 이유로 법률행위의 효력을 부정하면 시장경제는 나락으로 갑니다.
○퇴직금중간정산은 이렇게 노사 당사자간의 합의에 의한 행위이므로 완전하게 유효입니다. 그런데 DC형 퇴직연금의 중도인출은 퇴직연금을 취급하는 금융회사에서 중도인출의 사유를 들어서 거절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은 고용노동부나 금융감독기관에서 시어미질을 하는 것을 회피하기 위함이지 사법상의 효력과는 무관합니다.
<민법> 제655조(고용의 의의) 고용은 당사자 일방이 상대방에 대하여 노무를 제공할 것을 약정하고 상대방이 이에 대하여 보수를 지급할 것을 약정함으로써 그 효력이 생긴다. <근로기준법> 제4조(근로조건의 결정) 근로조건은 근로자와 사용자가 동등한 지위에서 자유의사에 따라 결정하여야 한다. 제3조(근로조건의 기준) 이 법에서 정하는 근로조건은 최저기준이므로 근로 관계 당사자는 이 기준을 이유로 근로조건을 낮출 수 없다.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제8조(퇴직금제도의 설정 등) ① 퇴직금제도를 설정하려는 사용자는 계속근로기간 1년에 대하여 30일분 이상의 평균임금을 퇴직금으로 퇴직 근로자에게 지급할 수 있는 제도를 설정하여야 한다. ② 제1항에도 불구하고 사용자는 주택구입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유로 근로자가 요구하는 경우에는 근로자가 퇴직하기 전에 해당 근로자의 계속근로기간에 대한 퇴직금을 미리 정산하여 지급할 수 있다. 이 경우 미리 정산하여 지급한 후의 퇴직금 산정을 위한 계속근로기간은 정산시점부터 새로 계산한다. 제22조(적립금의 중도인출) 확정기여형퇴직연금제도에 가입한 근로자는 주택구입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유가 발생하면 적립금을 중도인출할 수 있다. <대법원 판례> 가. 근로자가 자의로 사직서를 제출하여 중간퇴직한 이상 적어도 퇴직금 계산의 기초가 되는 근로관계에 관한 한 그때까지의 근로계약관계는 위 퇴직일로써 일단 종료되었다고 봄이 상당하고, 위 퇴직의 의사표시를 진의 아닌 의사표시로서 퇴직금 산정에 있어서 무효라고 볼 수 없으며, 중간퇴직을 할 것이냐의 여부가 기본적으로 근로자의 자유로운 선택에 맡겨져 있는 이상 이러한 근로자의 선택에 따라 근로자를 중간퇴직 처리한 뒤 그 중간퇴직금을 지급한 행위를 근로기준법상의 퇴직금규정에 위배되는 탈법행위로서 무효라고 할 수도 없다. 나. 퇴직금은 사용자가 일정기간을 계속 근로하고 퇴직하는 근로자에게 그 계속 근로에 대한 대가로서 지급하는 후불적 임금의 성질을 띤 금원이고 구체적인 퇴직금청구권은 계속근로가 끝나는 퇴직이라는 사실을 요건으로 하여 발생되는 것이므로 중간퇴직이 유효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위 중간퇴직으로 인한 퇴직금청구권과 그 후 재입사일부터 최종퇴직시까지의 근속기간에 대한 퇴직금청구권은 당사자만 동일할 뿐 계속근로의 기간과 퇴직의 시점을 달리하는 것이어서 별개의 퇴직금청구권이라 할 것이고, 따라서 이에 대한 소멸시효는 그 각 청구권별로 진행된다 할 것이며, 나아가서 이들 청구권의 실행을 위한 소송상의 청구도 독립된 별개의 청구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다. 근로자가 최초입사일부터 최종퇴직일까지 계속 근로하였음을 이유로 퇴직금의 지급을 청구하였으나 변론에서의 공방을 통하여 중간퇴직의 유효성이 인정되어 퇴직금 계산에 있어서의 근속기간이 단절되고 이로 인하여 당초 하나라고 주장된 퇴직금청구권이 법률상으로는 중간퇴직으로 인한 퇴직금청구권과 최종퇴직으로 인한 퇴직금청구권으로 나누어졌다 하더라도 그 퇴직금 지급청구에는 최종퇴직으로 인한 퇴직금의 지급은 물론 그 중간퇴직으로 인한 퇴직금의 지급도 함께 구한다는 취지가 당연히 포함되어 있다고 봄이 상당하다할 것이므로 위 중간퇴직으로 인한 퇴직금청구권에 대한 소멸시효의 완성 여부는 그에 대한 소송상의 청구를 하였다고 볼 수 있는 소제기일자를 기준으로 따져 보아야 한다. (대법원 1992. 9. 14. 선고 92다17754 판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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